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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2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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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저편을 지킨 사람들: 영화 ‘왕사남’과 엄흥도, 그리고 함부열

기사입력 2026-05-1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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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만보 : 소설가, 전 경찰서장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관객 수 1,000만을 돌파하며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 영화는 조선 세조 때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 단종과, 지방 관아의 아전 출신인 엄흥도라는 인물 사이의 애틋한 신의를 그린 작품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인 만큼 상당 부분 각색이 가미되었겠지만, 잊혔던 역사적 인물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열풍 덕분일까.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는 새삼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영화 속 주인공인 엄흥도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관심이 뜨겁다. 사실 기록상으로 단종과 엄흥도가 생전에 깊은 교우를 나누었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하지만 죽은 임금을 향한 그의 마음을 단순히 충성심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권좌에서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한 인간에 대한 지독한 연민이자 인간적인 도리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 묵직하고 충직한 행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든다. 엄흥도는 단종이 서거한 후, 서슬 퍼런 서세(時勢) 탓에 아무도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아들과 함께 장례를 치른 인물이다. 이후 보복이 두려워 고향을 떠나 은둔해야 했던 그는, 가문을 보존하기 위해 세 아들을 각각 예천, 군위, 울주로 흩어 살게 했다고 전해진다. 한 인물의 소신 있는 행동이 이후의 삶에 얼마나 큰 고초와 애환을 안겨주었는지 생각하면, 영화 이상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와 닮은꼴인 역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단종이 죽기 60년 전, 그의 고조할아버지인 이성계에 의해 고려가 멸망하던 시기의 이야기다. 당시 고려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제34대 공양왕은 조선 개국 후 왕에서 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삼척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3년을 지내던 그는 결국 고려 복권 역모에 휘말려 죽임을 당했다. 이때 공양왕의 곁을 굳굳이 지켰던 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함부열이다. 그는 귀양살이하는 왕을 보살피다 왕이 죽자, 시신을 거두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상황에서 몰래 장례를 치렀다. 흥미로운 점은 함부열의 형 함부림은 이성계의 총애를 받아 조선 개국공신 3등에 봉해졌고 훗날 형조판서까지 올랐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함부열의 후손들은 본관을 양근 함씨로 달리하여 지내며 조상의 소신을 지켰다. 현재 공양왕의 무덤은 경기도 고양시, 강원도 삼척시, 강원도 고성군 등 세 곳에 존재한다. 고양의 묘소는 공양왕 복권 후 제사를 모시는 공식적인 장소이며, 삼척의 묘소는 민간 설화로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나머지 한 곳은 함부열이 몰래 장례를 치른 곳이라 전해지는데, 함부열은 사후에 공양왕의 무덤 뒤쪽에 묻혔다고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묘소가 세 곳이나 되니 공양왕의 운명 또한 참으로 기구하다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양왕을 왕으로 복권하고 추증한 인물은 이방원, 즉 태종이다.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고려 멸망의 주역이었던 그가 다시 고려 왕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으니, 역사의 수레바퀴는 참으로 묘한 법이다.

영화 한 편을 통해 절대 권력자의 몰락과 그를 기리는 민초들의 지극한 정성을 보며 오늘의 현실을 되돌아본다. 낙엽이 지는 것을 보고 어찌 슬픈 눈으로만 바라보겠는가. 계절이 바뀌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듯, 이 고단한 시기가 지나면 또 다른 희망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그것이 바로 시대를 견뎌내는 우리 순박한 백성들의 마음일 것이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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