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만보 작가
전 경찰서장(총경)
왕은 대신들에게 명하여 각 가문에서 보유하고 있는 말과 무기와 식량을 내놓도록 했다. 왕은 전투 경험이 없는 이들을 모아서 영호루(映湖樓)에서 훈련을 시켰고 왕은 자주 영호루에 나와서 이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한편 궐기한 백성들이 복주에 모여서 훈련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나니 전장에서 흩어졌던 병사들이 속속들이 임금이 있는 복주로 모여들었다. 안우와 이방실 김득배도 복귀하여서 자신들이 군사를 잘못 지휘하여 임금이 이토록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군사를 지휘한 원수(元帥)들이 모여서 패인을 분석하였는데 이번 전쟁은 한두 장수의 잘못이 아니었다. 병력의 수도 모자랐거니와 1차 홍건적의 침입을 입고서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한 것이었다. 홍건적은 당초 고려를 목표로 공격을 해온 것이 아니었다. 원나라를 목표로 하여 상도를 공격하였다가 패주하는 과정에 고려를 공격한 것인데 원나라와 전쟁 초기에 협력을 하였다면 일이 이렇게 까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성도 나왔다. 공민왕은 기철 일당을 척결한 후에 원나라와 관계를 끊고 지냈던 것인데 원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관계 회복을 도모하고 같이 협력하여 홍건적을 공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원나라가 홍건적의 후방을 공격하고 고려가 밀고 올라가면 충분히 적을 격퇴 시킬 수 있다는 안이었다.
“속히 원나라에 사신단을 보내서 지난 날에 있었던 오해를 풀고 홍건적을 몰아낼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좋겠나이다.”
“원나라 황제는 고려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을 터인데 쉽게 고려를 도우려고 하겠는가?”
“원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것은 일방적으로 고려를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원나라 역시도 홍건적과 전쟁을 하는 과정이니 두 나라가 같이 협력해서 싸우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면 원나라도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사 사절단을 꾸려서 원나라로 보냈다.
한편 개경이 적도의 손에 함락된데 대하여 총병관 김용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문제도 거론이 되었다.
응양군 상장군 정세운이 나서서 김용에 대하여 질타를 했다.
정세운은 김용이 총병관의 직에 있으면서도 적을 무찌르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하면서 그 행적을 비판했다.
정세운의 말을 전해들은 장수들도 김용이 원래부터 남을 헐뜯기를 좋아하고 왕의 총애만 믿고 횡포를 부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두 정제운을 지지하였다.
왕은 여러 장수들의 의견을 듣고 총병관을 갈아치웠다. 김용을 대신하여 새로운 총병관으로 정세운을 임명하였다.
개경 수복 작전
정세운은 개경을 탈환하기 위하여 모은 근왕병 20만을 각각의 원수들 산하에 배치하였다. 이방실은 자신이 지휘하던 군사들과 근왕병을 합한 일만의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진격해 갔다. 개경에는 안우, 이방실, 김득배가 지휘하는 20만 군사 외에 얼마 전 오차포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친 최영과 동북면 병마사 이성계가 지휘하여 온 가병 1500명도 같이 모였다.
정세운은 개경 도성이 바라보이는 송학산 언덕에 올라가서 적진의 동향을 살폈다. 도성은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성은 허물어진 채였고 군데군데 불에 탄 잔해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무엇을 태우는지 아직도 연기가 뭉실거리며 타올랐고 매캐한 냄새가 이곳 송악산 기슭까지도 번졌다.
척후로 보낸 군사가 와서 보고를 했다.
“적도들은 지금 임금께서 도성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고 좋아하며 자기들끼리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도성이 함락 된지 20일이 넘었는데 온 거리가 술에 취한 적도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경계는 어떠하던가?”
“경계하는 군사도 술에 취하여 경계를 하는 듯 마는 듯 하고 있습니다. 우리 병사들이 쉽게 도성을 드나드는데도 전혀 경계를 하지 않는 듯 하옵니다.”
홍건적은 오랜동안 전쟁터로 돌아다니면서 피로에 지쳐 있었다. 그들은 고려에서 멀리 떨어진 강남이나 사천 등지에서도 참전을 하여 수차례에 걸쳐서 전투를 치루었고 내몽골 상도까지 진격하였다가 쫓겨가던 중에 고려를 공격하였던 것인데, 뜻밖에 고려왕이 쉽게 도성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도주를 하였으니 그들은 승리감에 취하여 긴장이 풀어졌던 것이다. 왕과 귀족들이 경황없이 피난을 가면서 남겨둔 식량과 고기와 보물이 가득 찬 창고는 그들에게 좋은 선물이었다. 그들은 굶주린 야수들이었다. 적도들은 장수고 병졸이고 할 것 없이 주인 떠난 빈집에서 술과 고기를 들고나와 술판을 벌이며 전쟁터의 피로를 풀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