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만보 작가
전 경찰서장(총경)
개전 초기 안우와 이방실의 군사는 산발적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상대로 승전하였다. 적이 박주, 태주, 개주 3개 마을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고 있을 때 이방실의 군사가 공격하여 100명이나 죽였다.
안우와 이방실은 적들이 대규모로 공격해올 것에 대비하여 조정에다 추가 병력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방실이 지휘하는 서북면의 군사들은 다 끌어 모아봐야 1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고려가 지금 상대하는 적은 홍건적 뿐이 아니었다. 1차 홍건적을 퇴치했어도 고려는 여전히 왜구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었다. 왜구는 삼남 지방에 시도 때도 없이 침입하여 노략질을 자행하고 있었지만 고려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왜구가 개경의 인근 강화도 교동현까지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였다.
형편이 이러한데 남쪽의 군사를 빼서 북쪽으로 돌릴 여력이 없었다. 부족한 병사를 백성에서 충당을 하여야 하는데 백성 중에 전쟁과 함께 반복되는 홍수와 가뭄이 들어 기근으로 고향을 떠나 유리 걸식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자가 많았으므로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나라에서는 징발령을 내리는 한편 당근 정책도 함께 폈다.
군역에 동원되는 백성에게는 향리 등 지방의 벼슬을 내려주고 비록 노비일지라도 양민으로 승격시켜주고 논과 비단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하여 전국에서 2만의 군사를 모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평생 병장기라고는 손에 대본 적이 없는 잡졸들이었다.
이방실은 청천강을 배경으로 진을 쳤으나 적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했다. 적은 그 동안에 소규모로서 고려군과 전투를 벌여 본 결과 고려군이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일부 정예 군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민병으로서 병장기 다루는 법이 서툴고 명령 체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우왕좌왕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홍건적은 개미가 꼬리를 물고 이어오듯 줄기차게 고려군을 공격해왔다. 안우와 이방실의 군사는 필사적으로 이를 막아내고자 하였으나 결국 방어막이 뚫리고 말았다.
왕이 개경을 버리고 피난을 가야 하는지를 두고 문신과 무신 간에 패가 갈려서 설전이 벌어졌다.
문신들은 왕이 하루빨리 개경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난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백성들의 피난 행렬이 큰길을 가득 매우고 있으니 더 이상 늦으면 길이 막혀 행차에 방해가 될까 우려가 됩니다. 속히 서두르시오소서.”
이에 대하여 무신들은
“상(임금)께서 개경을 지키셔야 일선에서 싸우는 군사들이 힘을 내어 사력을 다 할 것이 옵니다. 백성들 또한 임금을 믿고 동요를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하고 극력 반대를 하였다.
왕의 피난을 반대하는 무신은 김용과 최영, 안우, 이방실이었다. 안우, 이방실은 전투 중임에도 반대하는 장계를 올렸던 것이다.
조정에서 임금의 피난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상원수 안우의 패전하였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안우 이방실이 지휘하는 군사가 박주와 개주에서 적도 150명을 베었는데 안주에 이르러 갑자기 적의 습격을 받아서 패하였다는 것이다. 이 전투에서 고려군은 상장군 이음과 조천주가 전사하였고 도지휘사 김경제가 포로로 잡혔는데 김경제가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아군에게 항복을 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조정 신하들은 전장에 믿고 내보냈던 장수가 항복을 하고 되려 적의 편이 되어서 아군을 공격하는데 앞장을 서고 있다는 보고를 받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저런 쳐죽일 놈!”
“배신자, 그런 놈의 가족들을 당장 붙잡아다 목을 베야합니다.”
임금은 당장 김경제의 가족을 붙잡아와서 본보기를 보이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안우 이방실은 안주에서 패하고 절령까지 밀렸다. 공민왕은 절령을 지키내기 위하여 밀직제학 정사도를 보내어 지원토록 하였으나 한번 밀리기 시작한 고려군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새벽에 철기를 앞세운 적도 5천이 한꺼번에 목책을 밀고 들어오니 군사들은 풍비박산이 나고 군사를 지휘하던 안우, 이방실, 김득배는 단기로 도망쳐서 겨우 몸을 보전 할 수 있었다.
절령에서 안우의 군사들이 대패했다는 보고를 받자 공민왕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를 계기로 파천(播遷)파들의 주장이 다시 설득력을 얻었다.
왕의 피난 행렬이 급하게 꾸려졌다. 그래도 왕의 행렬인지라 왕과 왕비는 연(輦)을 탔으나 다른 사람은 대신이라 할지라도 왕의 측근 수행원만 빼고 걸어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