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롱 논설위원
지금부터 약 100년 전, 1920년대 초 일제가 행정 개편 시 경상우도와 좌도를 경상남도와 북도로 나누면서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를 부산으로 옮기게 되니 경상우도 감영이 있었던 진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진주교 건설, 중‧고등학교 설립 등의 조치와 함께 마산과 진주를 연결하는 진주선을 1925년 개통하게 된다. 그리고 전란을 거쳐 1963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 지정되자 도청 이전(환원)이 대두되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 학교 다닐 때 길거리에 나붙은 펼침막과 담장 등에 찍힌 “도청은 마산으로!”란 구호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당연히 진주에서도 “도청은 진주로!” 등의 구호가 등장했으리라 믿지만, 1962년부터 17-8년간 계속된 양측의 이런 논란 속에서 대통령의 중재도 무시할 정도로 격화된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는 지리적으로 경남의 중앙인 함안(군북)으로 도청이 와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1981.3.31. 국가보위 입법회의 본회의에서 창원 신도시 내에 도청을 둔다는 요지의 ‘경상남도 사무소의 소재지 변경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어 도청은 당시 인구 38만인 마산(8위), 20만인 진주(23위)도 아닌 창원 신도시(80위 이하)로 옮기게 되었다.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는 일본의 대륙 침략의 토대를 위한 군사적 차원과 식민지 경제 수탈을 위한 경제적 차원에서 1899.9.18.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연장 33.2km의 경인선을 시작으로 1905년 1.1. 서울-초량간 445.6 km의 경부선이 개통되었다. 경전선은 경상도 경자와 전라도의 전자를 따서 명명하였으며 그 시초는 마산과 삼랑진을 잇는 마산선인데 이는 경인, 경부에 이어 우리나라 세 번째 철도이며 1905년 5월 26일 사철(私鐵)로 개통되었다. 이어 1925년 경남선(마산-진주), 경전남부선(1931), 경전서부선(1936)에 이어 1968.2.8. 진주-광양이 개통됨으로 경전선(삼랑진-송정)이 운영되어오다가 2023.6. 삼랑진-순천 전 구간 전철화 사업으로 함안 지역은 기존 노선 변경, 창원 죽암마을에서 함안 도림마을까지는 지하선로로 바뀌었다.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보국대로서 한내실 철도부설 사업에 동원되어 점심 식사 중 한 사람이 어느 사람이 씹고 있는 떡을 보고는 그 사람의 얼굴을 가격하여 입에서 튀어나온 떡을 주워 먹고 달아났지만 결국 얼마 못 가 발작을 하고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보국대란 이름으로 징발되어 고된 노역으로 인한 선조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들이 교각, 축대, 급수조 등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그중에서 신산리에 있는 일자형? 축대는 문외한이 볼 때 견고하고 아름다운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을 비롯해 함안에 산재해 있는 당시 건조물들을 조사 정리해서 함안의 근대 백년 문화유산으로 관리해 봄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철길보다 이 삼백 년 먼저 들어와 정착한 백성들은 언덕배기 황무지를 개간하여 일군 논 밭떼기가 철도로 인해 두 동강 나고, 교량으로 물길이 바뀌고 기찻길에 가축 및 인명이 다치는 등 인적, 물적 불이익을 당한 채로 근 백 년을 지내왔다. 근래에 경전선 노선 변경과 지하화로 인해 구 철길을 함안군에서는 아라깨비길로 명명하여 자전거 및 보행자 길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 철길 주변의 농지를 경작하고 있는 주민들은 농경지와 인접한 이 길의 일부분을 농기계가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신당굴(窟) 너머 창원 용담마을은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구간 약 150m는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폭 6m로 확 포장하여 주민들의 편리를 도모한 사례와 백 년 동안 재산권 행사를 못 한 그 보상 차원에서라도 주민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검토•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찻길 옆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중학교 가서 기차를 처음 본다는 동무의 말이 신기하기도 했었고, 추석 때는 북마산에서 걸어오거나 신당굴을 지날 때 찻간의 휴즈를 내려 몇 초의 암흑세상을 즐기고 복잡한 찻간의 감 함티 땜에 발목을 아파했든 일 년간의 짧은 기차 통학.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갈래 아지랑이 길이 역에서 합쳐지고 앞만 보고 달리던 철마도 마주 오는 상대 열차를 위해 역에서 피항, 대기하는 것처럼 하 수상한 시절에 우리 모두 하나 되고 상대를 배려하여 기다려주는 그런 평화로운 세상역(世上驛)은 없는지?. ‘기차 소리 요란해도 아기는 잘도 자고 옥수수는 잘도 큰다’고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