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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7 12:22

  • 오피니언 > 고분군

해와 바람

기사입력 2023-05-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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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장 김양자


동화 중에 해와 바람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먼저 벗기기 게임을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람이 먼저 시작을 한다. 바람은 볼 가득 바람을 담고 나그네를 공격한다. 나그네는 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제 길을 간다. 바람은 다시 더 많은 바람을 머금어 공격한다. 그러나 바람의 공격이 강도가 높아질수록 나그네는 옷을 움켜잡고 바람의 공격을 피하는 자세마저 취하며 옷이 벗겨지지 않도록 한다. 바람은 심술이 더하여져 더 격렬하게 공격한다. 나그네와 바람의 대결은 나그네의 승이다. 바람이 포기를 하자 해가 나선다. 해는 미소를 머금은 듯하더니 곧 뜨거움의 강도를 조금씩 높인다. 내리쬐는 햇살을 피할 어떠한 것도 없다. 땀을 닦는다. 땀을 닦는 것에서 머무는가 하더니 곧 겉옷을 벗는다. 겉옷을 벗어도 땀은 계속 흐르고 닦아도 소용없다.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가 되어버린다. 겉옷을 내어던질 정도이다. 셔츠도 벗어버리고 속옷만 입어야 할 정도가 된다. 조금 후에는 지쳐서 걸을 수가 없을 정도가 되어버리고 그늘에서 쉬게 된다. 해가 승리한 결과다. 바람과 해의 대결은 극과 극의 모습이다.

지금 해와 바람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보아야 할 모습이 허다하다. 크고 작은 일에 상관없이 바람은 자기에게 거슬리는 것을 슬쩍 흘러듣기만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다. 고소와 고발과 압수수색과 손절과 융단폭격 같은 집중포화를 하여 숱한 사람들, 젊은 인생의 앞길을 차단해 버리고 말겠다는 듯한 공격을 한다. 공격은 큰 바위에 가려 지도 않고 바위마저 장풍으로 날려버리는 자세로 덤빈다. 바람을 피하면 이내 찾아오는 것이 드론으로 감시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단지 흘러가는 사연들의 곁에 있었다는 것이 이유가 되고 흘러 들었다는 것은 증거가 되고 정작 사연의 진위도 모르는 채 공격을 당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연좌제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곁에 있는 이들은 얼떨결에 당하는 바람의 공격 앞에서 황당함에 아웃 상태가 되어버린다. 슬쩍 흘러들은 것이 내게도 드론의 공격처럼 불시에 찾아올 것 같은 불안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의 회오리 속에서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회오리가 몰아치면 하던 일손을 그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하게 되지만 우울증이 함께 들이닥쳐 어느 곳으로 대피를 해야만 하는지 그 방향조차 상실하는 것 같다. 바람의 공격에 나그네가 제 옷깃만 여민 채 바람을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공격이 그치지 않는 이상 나그네는 바람의 힘에 밀려 구석으로 몰리거나 언덕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나그네는 이상기후의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므로 자신의 위치에서 움직일 수가 없는 항거불능에서 고뇌만 하고 있다. 마음속 염원은 바람이 그치고 제 자리를 찾아가던 길을 바로 가는 것일 것이다. 그즈음 햇살의 등장은 나그네의 지친 것을 제자리로 돌려주게 된다. 햇살의 따스함, 온화함, 부드러움, 등짝을 데워주는 친절함, 겉옷을 벗게 하는 여유로움은 햇살에 감사하고 싶은 편안함과 행복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햇살이 그립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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