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장 김양자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설화적인 동화 중의 장화. 홍련전이 있다. 장화. 홍련을 낳은 엄마가 죽은 뒤 아버지는 새로 아내를 맞아들인다. 외모는 내세우지 못할 정도였으나 두 딸을 잘 키워주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맞아들인 것이다. 새 엄마는 아들을 낳게 된다. 아들을 낳고 기세가 등등해진 계모는 그 때부터 전처의 두 딸을 구박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화의 혼사가 진행 될 무렵 혼수에 대한 재산의 손실을 막으려는 계교를 꾸미게 된다. 장화가 잠들었을 때에 이불속에 죽은 쥐의 껍질을 벗겨 몰래 넣은 뒤 낙태를 한 것으로 소문을 퍼뜨리고 아들에게 시켜 장화로 하여금 연못에 빠져 죽게 만든다. 홍련은 계모 아들로부터 언니의 이야기를 들은 뒤 언니를 따라 연못에 투신을 한다. 원귀가 된 자매는 새로 부임해오는 사또에게 호소하여 원수를 갚게 되고 계모는 사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세 번 째 부인을 맞이하고 전처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쌍둥이 딸을 낳게 되자 장화와 홍련이라 이름을 지어서 아름다운 결말을 맺게 된다.
미국의 실화다. 흑인 소년이 거리를 방황하고 비 내리는 날에도 반팔셔츠 하나만 입은 채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모르는 듯 머뭇거리는 것을 지나던 차에서 한 가족이 바라보게 된다. 스쳐 가버리는가 하던 차는 후진을 하더니 멈추어 흑인 소년을 차에 태우며 갈 곳 없으면 같이 가자고 하여 자신의 집에 데려가게 된다. 흑인 소년의 가정사를 듣게 된 후 돌봐주게 된다. 어른의 두 세배 만큼이나 큰 덩치이지만 마음만 착할 뿐 학업도 사회흐름도 거의 제로 상태에 가까운 아이를 백인가족은 아무런 거리낌도 차별도 없이 돌보아준다. 이웃과 친구들의 가치 없는 뒷담화마저도 상처받지 않고 흘러버리고, 법적 후견인을 자처한 백인가족, 풋볼선수가 되어 대학을 보내기 위해 가정교사를 초빙한다. 가족들의 노력으로 대학을 가게 될 때 대학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조합에 대한 의구심과 법적후견인까지 하는 것에 대하여 심사를 위한 질문을 한다. 흑인소년은 예상 밖의 질문에 상처를 입고 나온다. 얼마 후 혼자서 대학의 사전질문자를 찾아간다. 질문은 똑 같았다. 소년은 망설임 없이 의구심을 사라지게 하는 명답을 한다. ‘나의 가족이 다녔던 대학이므로 나도 가는 것이다’ 라고. 비오는 날 우연한 만남이 흑인소년을 건강하게 자라도록 해 주었을 뿐 아니라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준 것이다.
근래 뉴스를 통하여 계모. 계부의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을 보게 된다. 부모의 조건을 외형상 갖추어 놓는다 하여 아버지도 어머니도 되지 않는다. 말은 없어도 따스함이 오가며, 행동은 없어도 눈빛만으로 풍족함을 누리게 되고, 힘껏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벅차오르는 것이 사랑이다. 장화. 홍련과 풋볼선수로 성공한 흑인소년의 모습이 저절로 비교가 된다. 베푸는 것이나 사랑은 조건이 없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나보다 연약하고 어렵고 힘들고 홀로서기 어려운 것을 보거나 듣고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은 단순하다. 단순함에 이끌리고 인간본연의 성선설이 잠재되어 있다면 베푸는 것도 단순하게 펼쳐진다. 사랑은 계산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