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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1 15:45

  • 오피니언 > 황진원 칼럼

오형(五刑)

기사입력 2023-03-3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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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황진원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어느 신문에 기고한 감동을 주는 양형(量刑)’의 글이 눈물겹다. 그가 젊은 판사 시절에 선고한 사건이다.

15세 소년이 부모ㆍ동생과 살며 공장에 다니면서 가정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 어머니도 노동을 했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소년과 어머니의 돈을 빼앗아 술을 마시고 가족을 때리거나 동네 사람들에게도 행패를 부렸다. 사건 당일 소년이 직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와 동생을 피신시켜 놓고 있었다. 소년은 어렵게 아버지를 방으로 끌어넣자 아버지는 잠이 들었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으면 세 식구가 단란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하는 생각에 허리띠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만다. 울면서 밤을 새운 소년은 새벽에 돌아온 어머니와 경찰서로 가서 자수를 한다.

소년은 아버지를 죽인 자기를 죽여 달라고 소리치며 운다. 법정은 울음 바다였다. 동네 사람들도 소년의 관용을 바라는 탄원서를 냈다. 방청석에서도 눈물바다가 되었다.

김황식은 그가 판사 때의 인간적인 고뇌를 이렇게 회고한다. “소년을 어머니 품에 돌려보내고 싶었습니다그러나 형법은 존속을 살해하면 더 무겁게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감경을 거듭하여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김황식은 지금도 그 사건을 생각하면서 몹시 가슴아파하고 있었다.

곽상도 전 국회의원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받은 50억 퇴직금이 무죄인 것에 국민의 분노가 끊이지 않는다. 윤미향 국회의원의 위안부 관련 8가지 혐의 중, 7가지가 무죄가 된 것도 국민은 깃털같이 가벼운 처벌이라고 울분을 토한다. 아직 1심 재판 이지만, 국회의원 신분을 가진 힘 있는 자에게 주는 사법부의 판결이 국민의 법 상식과 너무 동떨어져 분노하고 있다.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른다. 지금은 죄의 정도에 따라 벌금ㆍ과태료, 집행유예ㆍ징역 등이 금액이나 기간으로 양형(量刑)이 정해진다. 옛날에는 범행의 정도에 따라 구분된 오형(五刑)’이 있었다.

조선시대는 태형(笞刑), 장형(杖刑), 도형(徒刑), 유형(流刑), 사형(死刑)이 있었다. 태형은 가벼운 죄가 있을 때, 볼기(궁둥이)를 치는 형벌이다. 장형은 태형보다 큰 형장으로 볼기를 치는 형벌이다. 보통 사극에서 보이는 곤장 치는 모습은 장형이다. 도형은 비교적 중한 죄를 범한 자를 관에서 붙잡아 놓고 중노동을 시키는 형벌인데 지금의 징역형과 비슷하다. 유형은, 죄는 무거우나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대신 죽을 때까지 귀양살이를 시키는 형벌이다. 사형은 가장 무거운 형벌로 교수형과 참수형이 있다. 사약도 이에 해당되는데 가장 예우를 갖춘 방법이다. 조선시대 오형은 중국의 오형을 도입한 것이다.

중국의 오형에는 묵형(墨刑), 의형(劓刑), 월형(刖刑), 궁형(宮刑), 대벽(大辟)이 있었다. 묵형은 죄인의 살에 먹실로 죄명을 써 넣었다. 가벼운 형벌이지만 지울 수 없는 죄인의 낙인(烙印)이 신체에 찍힌다. 의형은 죄인의 코를 베어버리는 형벌이다. 용모의 손상으로 심적인 고통이 더 컸다. 월형은 발꿈치를 베는 형벌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불구가 된다. 궁형은 생식기를 없애버리는 형벌이라 자손의 대를 끊어버리는 의미가 있었다. 대벽은 사형이다. 참수형을 비롯하여 일일이 나열하기가 끔찍하다. 조선시대의 형벌보다 중국의 형벌이 훨씬 잔인해 보인다.

노인의 오형도 있다. 젊었을 때보다 신체 기능이 저하되니 형벌이라 할 만 하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목형(目刑)이다. 귀가 들리지 않으니 이형(耳刑)이다. 이가 빠지고 음식을 잘 씹지 못하다 보니 치형(齒刑)이다. 다리가 힘이 없고 잘 걷지 못하니 각형(脚刑)이다. 생식기 기능도 예전 같지 않다. 중국의 오행중 하나를 본떠 궁형(宮刑)이라 한다. 늙는 것도 죄인가.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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