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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1 15:45

  • 오피니언 > 금강산이야기

99. 금강산 만낭골 할아버지

기사입력 2023-03-1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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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은 워낙 골짜기가 많고 깊어서 그곳에 깃을 들이고 사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 많은 골짜기 마을 중에 한 작은 골짜기 마을이 있었어요. 작은 마을, 어느 지주의 집이랍니다. 허름한 머슴방에서 거처하던 할아버지가 이 것 저 것을 챙기며 눈물을 방울방울 흘렸어요. 별스레 챙길 것은 없었지만 일생 동안 누워 자고,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생활한 방이라서 차마 떠날 수 없었어요. 스무 살의 나이에 이 집 머슴으로 들어와 이제 백발이 되어 나가려고 하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어요.

할아버지는 옷가지를 챙긴 후, 마지막으로 주인어른에게 인사를 하러 대청마루 앞으로 갔어요. 대청마루에는 주인이 긴 담뱃대를 재떨이에 통통 두들기며 머슴 노인을 맞이했어요.

어허! 자네가 우리 집에 온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구나. 이제 자네도 고향에 돌아가서 편히 쉬게나.”

어르신 내외분 편히 사십시오. 그런데.....”

? 뭐 할 말이 있는가? -. 한평생을 살았는데 마지막 용돈이라도 달라는 것인가? 금강산 마을의 지주들끼리의 약속이네. 평생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는 것으로 일생 동안의 품삯을 대신하기로 했네. 편히 가게나.”

할아버지는 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금강산 골짜기 마을의 모든 지주가 모두 꼭 같은 말을 한다니 어쩔 수 없었어요. 할아버지는 평생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하고 빈손으로 집을 나가야 했어요.

할아버지는 하늘 아래 갈 곳이 없었어요. 일가친척 한 사람 없는 그에게 반겨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는 망설이다가 어릴 적 놀던 고향이 생각났어요. 그곳에 가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것이지만, 앞산, 뒷산, 시냇가 그리고 아름드리 정자나무만은 자신을 반겨줄 것 같았어요.

할아버지가 며칠을 걸려 걸어서 고향 마을에 돌아왔지만 아무도 할아버지를 반겨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는 빈 담배쌈지를 털털 털며 마을 뒤쪽 산 아래, 허름한 움막에 자리를 잡았어요. 며칠을 걸려 그 움막집에 이것저것 챙겨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했어요.

할아버지가 그 움막에 자리를 잡고 누워 눈과 귀로 주변을 살펴보았어요.

세월은 지나도 이 맑은 공기, 새소리, 저 푸른 하늘, 논귀마다 개굴거리는 개구리소리는 여전하구나.”

다음날, 할아버지는 아침나절이 되자, 조상들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인사드리러 뒷산으로 올랐어요. 어릴 적에 갔던 조상들의 산소가 아슴하게 떠올랐지만 키보다 높게 자란 풀, 떨기나무들이 앞을 가려 산을 오르기가 무척 힘이 들었어요.

선조들의 산소가 관음폭포 윗 쪽에 있었는데 너무 오래간만이라서 찾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관음폭포 골짜기를 올라가고 있는데 너무 힘이 들었어요. 워낙 골이 깊고 숲이 무성한 비탈이어서 갈수록 숨이 차기 시작했어요. 가까운 밤나무 그늘에 앉아 한동안 숨을 돌리고 있는데 목이 말랐어요. 바로 옆 골짜기에서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할아버지는 숲을 헤치고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그 골짜기는 사람이 다니지 않아 풀 넝쿨, 작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앞을 가렸어요. 할아버지가 한 걸음, 한 걸음씩 천천히 조심스럽게 걷다가 풀 넝쿨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어요.

어이쿠, 아야.”

할아버지가 앞으로 넘어져서 숨을 헐떡거리며 일어나서 어디에 걸려 넘어졌는지, 주변을 살펴보았어요. 할아버지가 주변을 살피다가 눈망울이 커졌어요.

아니? 이것은 풀뿌리치고는 아주 크고 보통의 뿌리는 아닌 것 같아.”

굵직한 뿌리가 땅 밖에 나온 것이 예사로 볼 수 있는 풀뿌리가 아니었어요.

풀뿌리라면 먹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몰라.”

할아버지가 괭이로 풀뿌리를 파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들어갈수록 굵어지는 것이 그 깊이가 아주 깊었어요. 할아버지가 목이 말라 바로 옆 냇가에 내려가서 목을 축인 후 다시 힘을 들여 굵고 긴 뿌리를 캐었어요.

그 뿌리를 캐어내어 요모조모 살펴본 할아버지는 그것이 예사로 볼 수 있는 뿌리가 아님을 알았어요. 길고 굵은 무보다는 엄청나게 크게 보였고 그 색깔도 희뿌연 것이 아주 귀한 약초로 보였어요.

그때였어요. 산 위에서 사람들의 이야기소리가 도란도란 들리더니, 약초를 캐는 서너 사람이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어요.

그 약초꾼들이 할아버지가 캐어 놓은 약초를 보자 모두가 깜짝 놀라며 할아버지를 부러워했어요.

어르신, 이것 어디서 캐었어요. 이렇게 큰 산삼이라면 적어도 백 년은 넘었을 것입니다.”

저도 산삼을 캐어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큰 산삼은 처음 봅니다.”

어르신 엄청 큰 행운입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자신이 귀한 산삼을 캐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조상들의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하면서 생각해도 자신이 백 년 묵은 산삼을 캐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그날 저녁, 할아버지는 자기가 거처하는 움막으로 들어와 호롱불 밑에서 산삼을 요모조모 살펴보았어요. 뿌리의 생김새, 잎 모양, 줄기 모양을 자세히 보았어요.

삼삼이란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다음날, 움막에 혼자 살고 있는 할아버지가 엄청나게 큰 산삼을 캐었다는 소문이 온 금강산 골짜기에 퍼졌어요. 신기한 산삼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할아버지 동네로 모여들었어요. 할아버지가 사는 움막 앞에는 산삼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한 마디씩 했어요.

야야, 저게 산삼이라는 것이구나!”

나도 저런 산삼을 한번 캐어 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 산삼을 임금님에게 바치면 큰 상을 받을 거야.”

마을 사람들 중에는 할아버지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평생 머슴살이를 해서 처자식도 없는 사람이 늦게나마 이런 행운을 산신령이 주셨구먼.”

이 할아버지의 산삼 소문이 마을을 건너 이웃 마을 아주 멀리까지 나가게 되었어요. 이제 그 산삼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한 둘 찾아오게 되었어요. 한약방을 하는 의원들도 돈 주머니를 들고 할아버지와 흥정을 시도했어요.

어르신, 금강산 산삼은 약효가 뛰어나 값을 많이 쳐드립니다. 무게를 달아보니 천 냥은 드릴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한 의원의 말을 듣고 고개만 끄덕일 뿐 일체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다른 한 의원들도 와서 천 냥을 주겠다고 거래를 시도했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이었습니다.

그다음 날은 한양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찾아왔어요. 그 부자는 옷도 아주 값나가는 비단옷을 입고 왔어요. 그는 할아버지를 아주 치켜 새우고 더니, 거래를 시도했어요.

어르신, 대단하십니다. 이런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습니다. 어르신은 금강산 산신령이 돌보신 것입니다. 이런 귀한 산삼을 함부로 취급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한 한양의 부자는 할아버지의 손을 따뜻이 잡고 말했어요.

어르신, 보아하니 사시는 것도 어려우시네요. 제가 어르신을 도와드리는 적선의 의미를 더해서 산삼을 만 냥에 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양에서 온 부자의 말에 귀가 솔깃했어요. 만 냥이라면 할아버지가 평생 손에 쥐어볼 수 없는 돈이라서 못 이긴 체 승낙을 했어요.

만 냥? 그렇게 하시구려.”

한양의 부자는 그 자리에서 즉시 하인을 시켜 만 냥의돈 다발을 할아버지에게 전했어요.

할아버지가 그날 밤, 만 냥의 돈뭉치를 이불속에 묻어두고 여러 가지를 깊이 생각했어요.

이 많은 돈으로 무엇을 할까?’

논밭을 많이 사서 농사를 지을까?’

할아버지가 밤새 한 숨도 자지 않고 생각을 깊이 했어요. 다음날,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가장 큰 대궐 같은 집을 한 채 사서 그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며칠이 걸려 집이 정리된 다음날, 할아버지는 착한 머슴을 한 사람을 두었어요.

할아버지가 그날부터 머슴에게 하루하루 품삯을 쳐주자, 머슴은 할아버지를 아버지처럼 모시고 일했어요.

머슴에게 밥을 먹여주고, 잠만 재워주어도 감지덕지인데 하루하루 품삯까지 쳐주시다니!”

할아버지는 주인 행세를 하지 않고 항상 머슴과 함께 일을 했어요. 마을 뒷산에 작은 과수원 하나를 일구었어요. 그 과수원에 여러 가지 과일도 심고 그 과수원 아래 밭에는 수박, 참외도 심었어요.

할아버지와 머슴은 그 과수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했어요.

초여름이 되었어요.

할아버지는 마을 앞 커다란 정자나무 아래에 작은 가게 같은 것을 차렸어요. 차도 마시고 과일도 먹을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가게였어요. 할아버지와 머슴은 며칠을 걸려 그 가게 같은 것을 차리느라고 땀을 뻘뻘 흘렸어요.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와 머슴이 하는 일의 모양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어요.

저 어르신이 평생 머슴을 살다, 만 냥의 돈이 생기더니, 이제는 정자나무 아래서 장사를 하려고 하는구먼.”

그것도 나쁘지 않지. 평생 자기 물건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양반이 장사를 하여 돈을 불리는 것도 좋지.”

아니야, 할아버지가 돈이 필요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거야.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을 만나 세월을 낚시하려고 그러는 걸 거야.”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그런 소리를 듣고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묵묵하게 정자나무 아래에 작은 가게 같은 것을 차렸어요.

드디어,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에 아담한 가게 같은 것이 차려졌어요. 마을 사람들이 와서 앉아 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과일도 먹을 수 있으며 술도 한 잔 나누고 가벼운 차도 마실 수 있게 준비했어요.

할아버지는 과수원에 나는 과일들, 밭에서 재배한 참외, 수박을 잘 익은 것만을 골라서 가게를 차렸어요.

할아버지가 가게를 처음 여는 날이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한 사람도 오지 않았어요. 마을 사람들은 과일, 술 등의 가격이 어떤지 궁금해서 멀리서 살피고만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마을 앞을 지나는 나그네들이 먼 길에 휴식을 취할 겸 정자나무 아래에 와서 과일을 먹고 차를 마셨어요. 나그네가 과일값 찻값을 물으면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손사래를 치며 말했어요.

나그네 양반, 내가 돈이 궁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그리워서 정자나무 아래에 왔구려. 나와 이야기 나눈 것이 술값, 과일 값이구려. 허 허 허. ”

이런 소문이 마을에 천천히 퍼지게 되자, 마을 장자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놀러 와서 할아버지와 세월을 낚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놀았어요.

할아버지는 그 정자나무 아래에 차린 가게에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세상을 사는 일이었어요.

그 앞을 지나는 나그네들은 한 번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면 그 평화롭고 인자한 모습을 꼭 기억했어요. 그래서 금강산 골짜기를 오가는 나그네들은 금강산 골짜기 만낭골 할아버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어느 날, 할아버지는 자신의 기력이 쇠하는 것을 스스로 느꼈어요. 자기의 손발이 되어서 일하는 머슴을 자기 방으로 불렀어요.

덕쇠야, 거기 편히 앉아라.”

, 어르신!”

덕쇠야, 너도 나이가 스물이니 짝을 지어야겠구나.”

머슴인 제 주제에 무슨.... .”

아니다. 내 기력이 쇠하여 움직이기가 어렵구나. 네가 참한 색시 감을 얻어 나를 대신해서 이 집을 맡아라.”

어르신, 제가 비천한 머슴의 몸으로 감히 어르신을 어떻게 모시겠습니까?”

덕쇠는 할아버지 말을 듣고 감동하여 목이 메었어요. 자신이 머슴으로서 하루하루 품삯을 받아가는 것만으로도 은혜로운 일인데 할아버지의 대를 있는 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덕쇠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만낭골 할아버지를 아버지처럼 모시고 살았다고 해요.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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