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일지(WarDiary,1950년 9월 1일~1950년 9월 30일)
▲미25사단전투일지 (1950년9월13)
날씨:맑고 시원하고 바람 (사단 군사기록관 소령 잭 펜케이크)
마산 시민 6,670명을 피난시키고 총 31,992명을 피난 완료했다. 현재로서는 더 이상 피난시킬 사람이 없다. 사단특수근무대는 8군특수봉사부서의 전문을 수취했는데, 피난민은 접시, 화로, 오락거리, 읽을거리들을 준비하라고 확성기로 방송했다. 8군은 용량이 큰 확성기를 사용하도록 했다. 포로수가 날로 늘어나므로 방송을 중단했다.
적군의 근래 공격은 35연대에 집중했다. 적은 G중대 진지를 향하여 산발적 포격과 박격포격에 이어 소대 규모에서 중대 규모로 탐침해왔다. 35연대후위 지역의 고립된 100~300명의 적을 35연대장 휘하의 특수임무부대 35연대 I중대, 65공병전투대대 B중대, 25수색중대가 소탕 명령을 받았으나, 소탕하지 못했다. 27연대 K중대는 12일, 20.00시 소대 규모의 공격을 받았으며 20.40시 물리쳤다.
8군의 작전 계획 제10호가 11일, 사단에 전달되었다.
1. D-day H-hour에 적군과 대항하여 진지를 지키고 D+2는 통제선을 안정 시킨다.
2.성공적인 통제선 확보를 위하여 오른쪽의 2보병사단 일부와 합동하여공격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일차로 존 안의 적을 격파한다.
3.무제한 목표공격을 준비하라.
4.사단은 임무가 끝나면 육군 예비대가 된다.
킨 사단장은 다가오는 공격을 위하여 CP에서 연대장과 작전 관계관 회의를 하고 존의 책임 영역, 진격 루트 등을 책임지었다. 위의 구두 공격 명령은 작전명령 제11호에 의거하여 실시한다.
모든 부대는 13일, 20.00시 지정된 지역을 공격하고 D+2 때는 존에서 적을 분쇄한 후 통제선을 확보하고 계속 공격하기 위하여 준비한다. 그 후 사단 명령 하에 무제한 목표 공격을 준비하라.
사단전술부대에 무전 메세지가 전달되었다. 탱크는 포격용으로 동원하지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모든 부대는 전선에 공격적 패트롤을 투입하고 즉시 선점하라.
27연대의 수색패트롤은 1145.4-1341.5 지역의 북동쪽의 중대 규모의 적군을 향하여 포격과 박격포 공격을 개시했다. 13일 새벽이 오기 전에 G중대 전위 1,000야드 지점에 포탄이 작렬하고 수도 없는 오렌지 불빛이 번쩍였다. K중대는 높은 산의 제한목표점 공격을 개시했으며 잘 구축된 적의 포상을 공격하고 16.00시 목표 지점을 확보했다. 산발적 소화기 공격과 박격포가 낮 동안 3대대에 날아오고 저녁 때까지 이어졌다. 모든 대대들은 공격적 정찰을 이어갔다.
24연대는 정찰로 하루를 보냈으며 주 방위선 진지를 튼튼히 했다.
늦은 저녁 K중대에 간헐적 포격이 있었다.
35연대 G중대는 13일, 한 시간 간격으로, 05.00시까지 집중적 포격과 박격포격을 받고 05.05시 절정에 이르렀으며 1개 소대가 공격해왔다. 05.30시 포격으로 물리친 후 M-39 장갑차가 재보급하고 지뢰 부상병을 후송했다. 어두워지자 몇 발의 평사포격이 1대대로 날아오고, F중대는 03.35시 가볍게 공격받았다.
35연대 2대대장 명령하의 특수임무대는 35연대 후위 능선의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비행기와 포격 엄호 하에 13일, 11.00시 공격 개시선을 넘었다. 적의 깊고 잘 구축된 진지로부터 포격과 박격포 공격을 받으면서 900야드를 진격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정지하고 이 지점에 진지를 구축하고 다음날 아침의 공격을 계획했다.
모든 지원부서 요원들은 보급품 유지 관리는 물론 재빨리 지원하기 위하여 동원되었다. 특히 강조된 것은 현시점에 필요한 것을 확보하는 일이며, 둘째로 허가받은 식품, 휘발유, 탄약들을 제때에 얻어내는 일이다.
25,000파운드의 얼음을 부산에서 보급 받았다. 1인당 1파운드 보급되었다.
사단이 9월 13일, 16.00시-9월 20일, 18.00시까지의 허가 받고 배정받은 탄약.
카빈 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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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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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박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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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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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박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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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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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인치 박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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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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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박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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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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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박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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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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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약 소모 권장량-105mm 포탄 1일 포당 25발, 81mm 박격포 15발, 4.2인치 박격포 10발.
오늘의 전략적 상황은 별 일 없었다. 후위는 조용하고, 연대 보급 루트는지금 현재 열려 있다.
사단정찰기는 14회 비행, 8회의 전투수색과 사단작전을 위하여 관측했음.
제5전술항공대는 13기 출격, 칠원 지역의 차륜과 병력 집결지에 폭격,
차륜 8대 파괴.
해군함정포격은 요란 및 차단포격 6발, 관측포격 4발, 1개 포대 파괴, 사상자 알 수 없음.
8야전포대대는 요란 및 차단 25발, 결과는 알 수 없음. 요청포격 16발, 기관총을 파괴하고, 사상자는 알 수 없음.
64야전포병대대는 39발 발사, 요란 및 차단포격 10발, 요청 관측용 19발, 결과 알 수 없음.
90야전포병대대는 99발 발사, 요란 및 차단사격 25발, 조명탄 2발, 요청 포격 5발, 포 1문 파괴, 사상자 미상.
159야전포대대는 18발 발사, 요란 및 차단포격 7발, 요청 관측 11발, 많은사상자 발생.
제1관측포병대대 A중대는 적군 포격 장소를 알아낸 후 84야전포대대가 포격.
레이몬드 W. 브리스 소장의 서신이 도착했다. 이동외과병원의 한 외과 의사는 괌도의 월트리드 병원의 한국전에서 후송된 병사들을 방문했는데 모두는 치료 경과가 양호하다는 서신이다. 2차대전 때와 비교하면 월등하게 양호하다. 영양도 좋고 상처는 놀랍도록 잘 나아간다. 골절은 회복 속도가 빠르며 정신 상태도 건강하다. 초기 치료가 잘 되고 빠른 후송 결과였다. 한국 전쟁터의 의사들에게 감사한다.
▲미25사단전투일지 (1950년9월14일)
날씨:시원하고 맑음, 약간의 구름(사단 군사기록관 소령 잭 펜케이크)
적군은 35연대 후방에 집결한 후 진지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자동무기로 무장했다. 확언하건대, 이런 곳은 탄환으로 결코 적들을 죽일 수 없다. 적은 한낮에는 참호 안에서 완강하게 저항하고 낮 시간의 공격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작전한다. 낮은 사상자가 늘어나니 밤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고립된 적의섹트는 예상컨대 1143-1371 지역이다.
산발적 포격과 박격포가 저녁에 전 전선에 떨어지고 한동안 계속되었다. 35연대 지역 안에 오래된 G중대의 진지가 언제나 공격 목표였다. 이곳 진지들은 지금은 F중대가 점하고 있으며, 적은 포격과 박격포 지원을 받으면서 공격해왔다. 14일, 02.00시 알 수 없는 수의 적군이 24연대 L중대를 공격하고한 소대가 진지를 내어주었다. 포로들 말로는 500명의 대대 병력이라 했다. 적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진지를 되찾지 못했다. 한편 포격과 박격포 지원 하에 150명이 27연대 L중대를 공격해왔으나 희생자 없이 적을 물리치고 땅도잃지 않았다. 적은 수의 적들이 예고 없이 사단의 전위를 탐침했으며 미군 진지의 허약한 지점이었다.
35연대는 수도 없는 자동무기와 잘 구축된 진지의 적을 강력하게 공격했으며 마지막 공격은 다음날로 미루었다.
낮 시간은 모든 전선은 산발적 요란포격과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
27연대 L중대는 하루 종일 이어졌으나 진지를 지키고 있었으며 1중대의 한 소대와 약간의 한국군이 증원하여 포진했다.
24연대 3대대는 이른 아침에 공격받았다. L중대 왼쪽 소대가 진지를 떠난후 K중대가 역공하여 진지를 되찾았다.
항공기가 24연대와 27연대를 공격한 적군을 공격했으며, 35연대의 특 수임무대는 능선의 적을 공격했다.
적의 박격포가 14일, 03.30시 27연대 3대대 I와 K중대 진지로 떨어지고 소대 병력의 적군이 03.30시 공격해왔으나 진지를 잘 지켰다.06.00시 L중대는몇 발의 평사포격과 소화기 공격을 받았으며 L중대는 4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L중대의 한 소대와 한국군이 지원하기 위하여 L중대 진지의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했다. 육박전이 벌어지고 가까스로 물리쳤다. 오후의 항공지원으로 C중대 진지를 되찾았다. 적군의 포격과 박격포가 연대 전 전선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요란포격이 이른 아침부터 24연대 2대대로 날아 왔다. F중대는 강력한 박격포격 받았으며, 3대대의 공격받고 L중대 왼편 소대가 진지를 잃었다. 강력한 정찰대가 진지를 되찾고자 나아갔지만 적의 자동화기 앞에 몸을 돌렸다.
K중대가 잃은 땅을 되찾기 위하여 역공했으며, 왼쪽 소대가 적이 밤새 파놓은 진지의 목표지점에 이르고, 중대의 남은 병력들은 15일 이른 새벽에 선두소대와 합류했다. I중대는 14일, 16.00시 또다시 공격받았으나 5명을 포로 했다. 연대는 정찰을 계속하면서 대열을 정비하고 균형을 잡았다.
35연대 P중대는 남강변의 G중대의 진지와 교대했다.
그곳은 연대의 중심지역이며, 중대 병력의 적군이 오른쪽 측면을 공격하고 있었으며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14일, 04.00시 적군의 요란사격이 2대대에 날아오고 있었으며, 6조의 패트롤이 주 저항선으로 나아갔으며 결과가 좋았다. 2명을 포로하고, 탄약고 폭파, 병기 노획, 많은 적을 사살했다.
적은 1143-137.5 지점의 능선을 강력하게 요새화하고 중자동무기를 발사하면서 고립된 진지를 지키고 있었다. 35연대 I중대는 왼쪽 측면으로 200야드 나아가고, 65공병전투대대와 25수색전투중대는 진지의 북쪽과 북서쪽으로 느리게 전진했다. 적은 매우 험난한 절벽에서 자동화기로 계속 저항했다. 적에게 매우 유리한 고지였다. 근접항공타격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후늦게 중대들은 후위에서 공격하여 목표지점을 포위했다.
많은 적군이 죽고장비를 버리고 도주했다. 특수임무부대는 9월 15일, 마지막 목표물을 향하여공격을 개시했다.
540수송중대가 사단을 지원하기 위하여 마산에 도착했다.
탄약과 레이슨이 태부족이었다. 사단이 계획했으며 임무 수행에 부족함이많았다. 탄약은 재고가 없고 사격을 제한했다. 효과적인 수송지원이 절실했다.
15일,18.00시~20일,18.00시연대별수령탄약수량:
사단정찰기는 19회 비행, 13회는 전투수색과 정찰했음.
제5전략공군은 38기 출격, 2문의 포 파괴, 트럭 4대, 1개소 탄약고를 폭파.
81㎜ 박격포 1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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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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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박격포 1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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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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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인치 박격포 1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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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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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곡사포 1개 포병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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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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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포 1개 포병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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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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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구경 총탄 1개 연대 및 사단포병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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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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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로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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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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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함정은 6발의 조명탄, 2발은 적군 집결지에 포격. 결과 미상.
8야전포대대는 요청임무 포격 관측용observed on call mission 19발, 박격포 4문, 2문의 포 파괴, 자주포, 기관총, 트럭, 포 각각 1문 파괴, 많은 사상자를 냄.
64야전포대대는 21발 발사. 요란사격 1발, 20발은 요청 임무포격 및 관측용 포격, 기관총 1정 파괴, 2회의 적 공격 차단, 많은 적을 사살함.
159야전포대대는 51발 발사, 13발은 요란 및 차단, 8발은 요청포격, 탄약저장소와 기관총 1정 파괴, 적 집결지에 많은 사상자를 냄.
90야전포대대는 40발 발사, 24발은 요란 및 차단포격, 16발은 요청 임무포격 및 관측용, 1문의 기관총 파괴, 사상자 수는 미확인.
제1관측포대대 A포대는 4곳의 포진지를 추적, 90야전포대대가 포격하고결과가 좋았음.
치료소를 설치했다. 주로 포로들 대상이며 의료 시설의 종사원들을 차출하고 사단의 본부요원들이 보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