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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1 15:45

  • 기획특집 > 마산방어전투

6·25전쟁 70주년 기념

미25보병사단 마산 방어전투 실화 번역집-마산 방어전투Ⅱ 26

기사입력 2023-02-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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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일지(WarDiary,195091~1950930)

25사단전투일지 (1950911)

날씨 : 따뜻하고 맑은 높은 구름 (사단 군사기록관 소령 잭 펜케이크)
 

조용하던 전방이 10, 21.15시 갑자기 소란하다. 7발의 자주포가 35연대 중앙에 떨어졌다. 전방에 녹색 화염이 자욱한 가운데 G중대는 알 수 없는 수의 적군이 공격해왔다. G중대가 공격을 물리치는 동안 피아간에 예측 못한 비극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적군은 팔다리를 잃고 사방에서 고통 받고 울부짖었다. 적은 재규합한 후 포격 지원을 받으면서 다시 공격해왔다. 이번의 두번째 공격은 포격반격으로 멈추게 했다. 적군은 11일 이른 아침, 진지의 우측후위와 전위로 연이어 공격하고 아군의 진지는 폭풍으로 휩싸였다. 아군은 가까스로 물리쳤으며 적들은 공격받고 드디어 지리멸렬한 채 그들의 전선으로 되돌아갔다. 늦은 아침의 섬광은 적들의 전선을 따라 뒤돌아가는 모습을 비추고, 적들의 불타는 시신들 속에서 실탄이 폭발하고 있었다.

방첩대는 2명의 아이를 붙들었는데 군 이동과 집결 장소를 적에게 제공했다. 12, 14살 아이들이었으며 정보를 마산으로 가지고 온 후 전선을 가로질러 인접한 적군에게 전달했다. 정보는 군시설에 고용된 주민 노동자들이 타고 다니는 미군 차에 승차하여 수집한 것들이며, 그 더럽혀진 손가락으로 적에게 전달했다.

25사단에 드나드는 한국 민간인은 미군 방첩대가 사전에 거른 사람들이며 걸렀다 하더라도 많은 고용인들이 적군 전선과 맞붙어 기거하고 있으므로 유념해야 한다. 정보요원들이 아무리 엄격하게 걸러낸다 해도 단편일 뿐이다. 첩자들이 24시간 정보를 얻으려 해도 그들은 민간인들이며 군 정보나 시설을 잘 알 수 없다.

마산 시민 6,100명은 11, 11.30시에 LST편으로 피난시켰다. 앞서 6,000명을 이미 피난시켰고, 부두에 남은 사람들은 11, 24.00시에 돌아올 LST를기다리고 있다. 피난민들은 진해 웅동면 안골로 피난시켰다. 35연대와 25수색중대의 정찰은 적들로 하여금 우왕좌왕하게 했다. 간밤의정찰 때는 몇 명을 포로하고 많은 적군들을 사살했으며, 2정의 기관총을 파괴했다.

27연대 3대대는 진동리의 5연대 1대대가 1116.00시 마산으로 떠나고 삼랑진으로 이동하는 일을 도왔으며 종결했다. 5연대 1대대는 마산의 마지막 기차 부대였다.

적은 아침 일찍, 24연대의 일부 부대를 탐침했으나 간단하게 처리했다. 모든 부대는 공격적이고 활동성 있게 정찰하고, 주 방위선 진지를 구축했으며, 24연대 3대대는 주 방위선의 진지를 더욱 굵게 구축하고 철조망과 지뢰를 매설했다. 적군은 전위에 산발적 포격과 박격포로 공격해왔으나 진지는 아무일 없었다.

25수색중대와 35연대 예비대는 고립된 잔여 적군을 쓸어버리는 일을 이어갔다. 많은 적군이 1143-1372 지역 능선에 진지를 구축하고 912일의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27연대 3대대는 11, 11.005연대 1대대 존을 인계 받았다. 적은 교대하는 동안 경무기와 기관총으로 진지로 공격했다. 연대의 모든 부대들은 주 방위선을 따라 진지를 계속 구축하고 존 정찰을 강화했다. 적군은 2대대 지역에 포와 박격포격을 해오고 있었다.

24연대 E중대는 11, 05.00시 소화기 공격을 받았으나 곧 뒤돌아갔다. 24연대 3대대는 방어 계획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주 저항선의 진지를재구축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연대 CP에 포격이 쏟아지고 E중대는 또다시소화기 공격을 받았으나 그것이 모두였다.

35연대는 11, 03.45시 수분 간의 소화기 사격을 주고받은 것을 끝으로조용했다. 중대 병력의 적이 11, 04.45G중대를 공격했다. 공격은 30분후에 끝이 났다. 자주포를 쏘는 적군도 물리쳤으며 중대 진지는 아무 일 없었다. 35연대 2대대는 낮 시간에 산발적 포격을 받았으나 강력하게 패트롤하여 후방의 고립된 적을 소탕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18명의 적이 G중대를 갑자기 공격했으나 즉시 물리쳤다. 2대대는 저녁에 박격포와 자주포 공격을 받았다.

179량의 철도 화차는 모든 종류의 보급품을 탑재한 채 창원역과 마산역에서 하역을 기다리고 있으며, 12량을 하역 완료했다.8군사령부는 사단에 3대의 M-39 무장 장갑차를 장비하게 하고 연대작전과 전술항공지원 때 사용하면 적합하다고 추천했다.

1169.8-1378.5 지점의 보행 육교다리를 11, 06.00시 철거하고, 1178.0-1370.4 지점의 교차로를 폐쇄한 후 차륜만 통과하게 했다.

비상식량 레이슨이 턱없이 부족했다. 5-1형 레이슨으로 대치했다. 이 레이슨은 ‘A’ 혹은 ‘B’ 레이슨 보급이 불가능할 때 사용되는 레이슨이다. 5-1형 레이슨을 보급 못할 때 C-레이슨을 보급한다.

의회, 종교 단체, 병사 부모, 사회단체로부터 좋지 않은 일 하나가 전달되어왔다. 군인들에게 맥주 지급은 추천할 만한 물건이 아니며, 많은 양의 맥주는허용될 수 없다는 여론들이었다. 맥주를 구하기 위하여 적절한 돈을 내는 것은 말릴 수 없다. 차후로는 개인이 돈을 지불하고 맥주를 구하는 방식으로나아가야 하며 사후교환제도post exchange system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사단정찰기가 15회 비행, 10회의 전투수색 정찰.

5전술항공타격은 47기가 출격, 2대의 탱크와 트럭을 파괴, 기총소사하고, 사상자 미확인.

해군함포 지원은 야간에 6발의 요란 및 차단포격, 11, 23.00시 조명탄 1, 2발은 요청포격, 인명 피해 보고 없음.

8야전포병대대는 26발 발사, 11발은 요란 및 차단사격, 3발은 재원기록사격, 관측용 12, 박격포 1문 파괴, 적군 집결지에 많은 전상자를 냄.

64야전포병대대는 47발 발사, 33발은 요란 및 차단사격, 14발은 관측용, 1문의 포와 박격포 파괴, 군 집결지에 많은 사상자를 냄.

90야전포병대대는 24발 발사, 20발은 요란 및 차단포격, 4발은 요청포격,자주포 1문 파괴, 많은 사상자를 냄.

159야전포병대대는 24발 발사, 요란 및 차단 5, 관측용 10, 1문의 기관총 파괴, 기관총, 박격포, 1문 무력화, 적의 집결지에 1발 포격. 많은 병력들사상.

1야전포병관측대대 A포대는 레이더가 있는 박격포 진지 뒤쪽에 자리 잡았으며 전방 뒤쪽에 2개소의 포진지를 찾아냄.

8군사령부로부터 사단 CP의 항공 촬영물을 전달받았다. 사단은 공병 위장장교 감독 하에 방어소대가 사단 CP를 위장하도록 했음.

육군성 외과부서로부터 공식 축하 서한이 도착했다. 한국전에서 의료인들의 의료 서비스가 매우 우수하며 임무 수행에 만족한다는 치하의 서신이었다.

25사단전투일지 (1950912)

날씨:따뜻하고 대체로 맑고 오후에 구름 (사단 군사기록관 소령 잭 펜케이크)

 

한국군 500명이 배속되어왔다.

24연대

125

27연대

150

35연대

150

25수색중대

25

25포병대대

50

 

포로를 심문했다. 적군 6사단과 7사단 일부 부대가 아직도 우리들의 섹트안에 있다. 적군은 오늘 35연대 G중대를 탐침했다. 11, 21.30시 박격포와 포탄 20발이 G중대 진지에 떨어지고, 소대 규모의 적군이 공격해왔다.

G중대는 잘 무장되어 있으며 포격이 멈춘 후 11, 23.00시 간단하게 해치웠다. 이런 식의 공격이 밤을 새우고, 12, 05.00시 가까스로 끝이 났다. 적은 후위지역으로요란차량 부대를 보내고 159야전포병대대 3개 포대를 노리고 있었다.

적군은 아직껏 강점은 지니고 있다 : 국지전을 이어 갈 수 있고,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했으며, 사단 섹트를 증강하고, 사단 공격 시 상호 협조 전투능력을 지녔다.

적군은 의문의 여지없이 방어력을 증강했으며 위력공격을 이어갈 수 있다.알려진 바와 같이 병력 규모가 커졌다. 한 곳이 취약하면 다른 곳을 더 보강했으며, 후방 어느 지역에서나 모병할 수 있고 증강을 완료했다. 그들은 서울을 점령한 후 숱한 노력 끝에 이곳 진동·함안 지역까지 내려왔으며 지금 이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의 전선 마산에서 부산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적들은 지금까지도 점령을 자신하고 있다.

우리 사단과 맞서고 있는 적은 몇 개의 작은 것을 제외하고는 처음 우리들의 진지를 공격했을 때와 같은 수준의 힘을 지니고 있다.

적은 최근 공격을 통해서 보여주었듯이 선점을 찾기 위하여 6사단, 7사단,23기계화연대는 사단 존 안의 병력 정수를 최근 크게 강화했으며, 더불어 안전요원 부대인 104연대 2개 대대가 독립적으로 후위에 정열하고 있다.

적군의 작전은 6사단은 남쪽으로 우회 작전side-slip하고 2연대는 북쪽에서 예비대로 한다. 통영에서 한국 해병대와 접전한 83기계화연대의 한 대대는 북쪽으로 이동한 후 본대와 합류하여 현 위치를 지키고, 104안전연대 1개 대대는 기계화연대를 지원한다.

적은 계획된 대로 합동하며 사단 전위를 따라 공격해왔다. 하지만 별것 아니었다. 한순간에 10%가 사살되고 뒤이어 40%가 부상을 입었으며 도망병과처형된 병들 10%까지 합치면 더 많다.

남은 적들은 83기계연대를 제외하고는 25사단 전위지역에 머물고 있다. 기계화연대는 포를 끌고 전선에서 후퇴했으며 재충전인지 재보급인지 알 수가없었다. 기계화연대는 처음은 미해병대에게 거칠게 난도질 당했으며 뒤이어 한국 해병대와 5연대가 다시 한 번 더 큰 망치로 내려쳤다.

6사단은 적군의 등뼈이다. 근래 병력과 장비를 크게 보충했다. 자주포,76mm , 경포로 또다시 무장하고, 지난주부터 모든 포부대에 박격포를 필수로 배치했다. 현지인들을 탄약 운반수 또는 고정요원으로 동원하여 넘쳐흐르고 있다. 6사단은 진전면 둔덕과 함안군 군북면 오곡의 폐탄광을 오랫동안 보급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 폐광은 숨고, 가리고, 보급창고로서 유용성은 대단하다. 그들은 비록 작은 공격마저도 보급품을 위장할 수가 없고 낭비가 많던 참이었다. 적군 군량미는 현지 식품으로 조달하고 충분하다.

포로들은 레이슨이 충분치 못하다고 불평하지만 유능하고 잘 싸우는 포로들은 음식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고집스럽게 레이슨을 거부했다.

포격과 비행기 공격 때에 느끼는 것은 적들은 신체적 허약함과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신병들이 더 그러했다. 적군 포로들은 미군의 포격과 항공기가 누구 없이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했다. 그들은 그나마도 노련한 전투 전문가가있으므로 우수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여기고 있다. 현재 적군 6사단의 정예는약 6,000명 선이다.

적군 7사단은 19507월 초에 서울에서 만들어지고, 곧장 마산으로 향했다. 3연대(77연대)는 경상남도 고성과 통영에서 한국 해병대에게 크게 당하고 많이 포로가 되었다. 전투 첫 경험이었다. 이후 3연대는 7사단 본부 의령으로 돌아갔다. 의령은 우연하게도 91일 이후 35연대와 대치 중인 지역이다. 7사단은 훈련되지 않은 신병들뿐 고참병이 없었다. 중공군들이 있었지만,베테랑이 아니며 그것마저 숫자가 적었다. 적군 사단 안에 포병들은 없다. 연대에 배속된 포병들이 지원한다. 포로들 정보는 포병은 남강과 낙동강 연결지점 서쪽 후방에 따로 주둔해 있다. 항공정찰 결과 발견되지 않았다. 사단의3개 연대는 미친 해마처럼 싸운다. 어떤 장애에도 어떤 화력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7사단은 6사단과 같이 엄청난 사상자가 났다. 30퍼센트가 경험 있는군인들이며 나머지는 강제 징집된, 능력 면에서 의심스럽다. 그러나 진격했다하면 쓰러질 때까지 싸운다. 추산 병력 7,000명이다.

삼천포 근방 해안선에 포대가 포진해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적군은 한 개의 항구는 장악할 만하다. 그러나 104안전요원연대 14대대가 삼천포 가까운지점에 진주하고 있었으며 포대는 무장하지 않았다.

104안전요원연대는 1950724일 서울에서 창군되었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되었으며 장교들과 준사관이 지휘하고 요원들은 별도로 모병했다. 간단한 신체검사 후 무기 없이 서울을 출발했다. 이들은 별도의훈련하거나 강력한 군대일 필요가 없다. 4개대대의 연대와 본부요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1개대대원은 약 500, 총 병력 2,000명이며 철저한 공산주의자들이다.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소총과 기관총, 압류한 2.36인치 로켓 발사기로 무장했다. 박격포가 있는데 83기계화연대가 북쪽으로 가면서 두고 간 것들이다. 포로나 사상자는 드물다. 그들은 강력한 군대가 될 수 있다.

도망 나온 적군 장교는 말한다. 그가 포로로 잡은 한국군 신병들은 참신하고 전투 의지가 강하고 도덕적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깊게 침투되어 있었으며 북쪽 군인이 되면 곧장 말과 행동으로 옮긴다.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학생도, 전쟁을 싫어하는 학생도 북쪽 군인들에게 매료된다. 이런 사실들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원병이 되게 했다. 군인이 되면윤리 도덕 관념은 없어진다.

모든 부대는 스스로의 방어진지를 견고하게 손질했다. 27연대 2대대 정찰대는 새벽 전까지 1143.0-1345.8 지역은 적과의 접촉이 없었다. 27연대 3대대 정찰조는 주 방위선 진지 중앙 150야드 거리에서 강력한 소총 사격을 받았으나 적군 진지는 포격 받고 돌아갔다. 오후에 적의 자주포가 G중대 진지에 떨어졌다. 어두워지고 K중대 진지가 적 정찰대 공격을 받았으나 즉시 물리쳤다.

이른 새벽, 24연대가 있는 함안면 서쪽 도로에 차단포격이 날아오고 정찰대가 전위를 탐침했으나 별 것 아니었다. 모든 부대 주 방위선은 보강되어 있으며, 더욱 견고히 하고 후위는 적군의 흔적을 없애버렸다. 낮 동안 3대대에소규모의 산발적 공격과 박격포탄이 날아왔다.

35연대 G중대는 새벽이 오기 전에 4차례 공격을 받았다. 처음은 2개 소대 규모였으나 마지막 12, 04.15시 더 많은 적이 공격해왔다. G중대는 야드 이상 후퇴한 후 06.00시 반격하고 밀어냈다. A중대는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 1145.5-1364.5 지역의 159야전포병대대 3개 포대는 06.0030명의 적으로부터 소화기와 수류탄 공격을 받았다. 새벽에 공격받은 G중대 부상자를위하여 의약품을 항공 투하했다. 적은 주 방위선에 요란사격을 계속하는 가운데 트럭 1대가 대인지뢰에 피습되었다. 65공병전투대대 B중대는 25수색중대 지원을 받아 후방 지역의 적을 쓸어버리는 일을 이어갔다. 위의 두 부대는1143-1372 지역 근방의 능선에서 적과 교전하면서 천천히 나아갔다. 35연대I중대는 위의 두 중대와 연합하여 35연대 2대대장 지휘 하에 2대대 후위의침투한 적을 분쇄했다. 어두워지자 G중대는 격심한 포격, 박격포, 소화기 공격받았으며 포격과 반격으로 물러갔다.

사단경비행기는 20회 비행, 10회는 전투수색과 정찰, 탄약과 의료품을 35연대 G중대에 공수.

포획한 무기와 실탄은 통영에 주둔 중인 한국 해병대가 인수하여 안전을도모했다. 해병대는 사단 좌측면의 진지들을 맡고 있다.

전문이 날아 왔다. 항공보급품 투하 시 판넬 표시 방법과 보급낙하산 처리에 대하여 지시했다.

미해군함정 엔디콧트Endicott호가 진동만의 도열Doyle호와 교대했다. 도열함은 13발 중 6발은 요란 및 차단포격, 1발은 조명탄, 6발은 적군 보급창고,사상자는 알 수 없음.

5전술공군타격대는 20기 출격, 적 포대, 차륜, 병력 집결지 타격, 결과는미상.

8야전포대대는 14발 발사, 요란 및 차단포격 7, 시사 1, CP 요청에 의한 관측포격 5. OP 2곳 무력화, 다른 1발은 많은 사상자를 냄.

64야전포병대대는 16발 발사, 3발은 요란 및 차단, 13발은 요청포격, 3문의포 파괴, 많은 차륜과 사상자를 냄.

90야전포병대대는 34발 발사, 22발은 요란 및 차단, 12발은 요청포격, 1문의 자주포와 많은 사상자를 냄.

159야전포병대는 14발 발사, 8발은 요란 및 차단, 6발은 요청포격, 1개소의보급소 파괴, 많은 사상자를 냄.

1관측포병대대 A포대는 포착한 적 포병대에 64포병대대가 포격했음.화학부서는 35연대를 지원하기 위하여 6문의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연대에서 나온 8명이 작동법을 가르친 후 발사했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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