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자 문화부장
세 명의 친구가 있다. 사이좋게 잘 지냈지만 그 사이가 점점 소원해져 버린다. 내가 저들을 왕따 시킨 것인지, 저들이 나를 왕따 시킨 것인지 알 수 없다. 사소한 원인이 사이좋은 관계였던 친구와의 거리를 멀게 만들어 버린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세 명 중 한사람이 원인 제공자인 거 같지만 곰곰 생각을 해보아도 이 친구도 아닌 것 같고 저 친구도 하닌 것 같다. 나 스스로 친구에 대한 왜곡된 생각이 시간이 흐를수록 두터운 벽처럼 쌓아져서 그런 것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사소한 생각의 차이에서 사건의 크기가 줄어들기도 하고 사건이 덮어져 버리게도 된다.
네덜란드 동화 속에서 한 소년이 제방 아래쪽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해수면 보다 낮은 지역인지라 시민의 안전을 위하여 제방을 쌓아 둔 것이다. 소년은 어디에선가 물이 졸졸거리며 흐르는 소리를 듣게 된다. 걸어가던 길을 주춤거리다가 소리가 나는 쪽이 어느 방향인가를 살핀다. 급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가 제방 아래쪽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 한다. 작은 구멍이라 예사로이 여기고 지나칠 수도 있으나 소년은 자신이 막아야겠다는 생각만 한다. 곧 손가락을 밀어 넣어보지만 금새 구멍은 더 넓어져 팔뚝을 밀어 넣어야만했다. 곧 온몸을 제방에 밀착시켰을 것이다. 팔뚝은 물과 제방에 밀착시킨 몸의 압력에 의하여 감각을 잃어간다. 그러나 팔을 빼 낼 수 가 없다. 누구에게라도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도 점점 지쳐 가는 자신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사람들이 달려올 때 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자신의 팔이 저리고 감각이 없어져도 견디며 안전을 위하여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동화 속에서 소년의 나라 사랑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주변에 이와 흡사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사람과의 사이를 두텁게 하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나만의 근시안적인 생각을 벗어날 때 더 많은 것이 보인다. 더 나은 생각을 가지게도 된다. 나눔도 베품도 이해도 배려도 태어나고 나보다 저들이 더 훌륭하다는 인식도 갖게 된다. 저들이 더 훌륭했던 것에 대하여 배 아파 하거나 질투하는 것들도 사라지게 된다.
포플리즘은 대중들의 신념이나 가치를 중시하고 지지를 얻고자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상대에 대한 이해도는 뒤로하고 상대의 단점과 실수만을 찾아서 상대가 작은 일이라도 행하게 되면 제 잘난 척 하기 위하여, 선심을 쓰기 위하여, 의식적인 베품을 위하여 가식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하는 것처럼 말을 하며 포플리즘이라는 말로 비아냥되듯이 말로써 공격하는 것이 요즘의 정치계 모습이다. 지나간 일들에 잘한 것은 칭찬해주고, 단점이 보여도 지나간 것이므로 부러 들추어 비난하지 않는 것이 잘해보겠다고 각오한 자세이다. 세 친구사이의 사소한 오해를 풀어버리고 발전적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가식 없는 대화가 필요하고, 소년의 희생적 자세는 모두가 하나 되게 해주는 귀감을 보며 우리사회에 적용시켜야한다. 포플리즘은 상대를 행한 공격과 비아냥 아니라 칭찬의 단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