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깊은 계곡 양지 쪽 언덕바지 마을이랍니다.
그 마을 뒷산에는 칡이 너무도 많아 칡넝쿨이 온산을 뒤덮고 있었어요. 금강산의 이웃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은 그 마을을 ‘칡마을’이라고 불렀어요. 칡넝쿨이 엉킨 언덕, 곰바위 아래에는 수정같이 맑은 샘물이 바위에서 퐁퐁 솟아났어요.
이 마을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뒷산의 칡을 캐어먹고 곰바위 아래 약샘의 수정 같은 샘물 먹고 자랐어요. 마을 아이들이 칡마을의 기를 받아서 체구가 크고 힘이 엄청 세었어요.
칡마을 아이들은 몸이 크고 힘이 세어서 금강산 이웃 마을 아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어요. 금강산 봉우리를 뛰어다녀서 동작도 빠르고 몸도 튼튼했었어요. 칡마을 아이들은 행동이 민첩하여 마치 호랑이가 달리는 것처럼 빠르고 용감했어요. 금강산 골짜기 마을 청년들 끼리 씨름 줄다리기 시합을 하면 언제든지 칡마을 청년들이 우승을 했어요.
그런 칡마을에 ‘덕쇠’라고 하는 체구가 크고 힘도 세며 동작이 아주 민첩한 청년이 있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그 청년을 장수라고 불렀고, 같은 또래 아이들도 그의 이름을 ‘덕쇠’라고 함부로 부르지 않고 ‘장수’ 혹은 ‘장수 형’이라고 불렀어요. 어떤 사람들은 덕쇠를 ‘장군’ 혹은 ‘대장’이라고까지 부르기도 했어요.
“우리 ‘덕쇠’ 장수는 동작이 너무 빨라서 금강산의 그 험한 봉우리들을 산토끼나 노루처럼 뛰어다니지.”
“그 뿐인 줄 아니? 그 산봉우리를 뛰어다니면서 창을 던지면 봉우리 마다 콕콕 정확하게 꽂히더라.”
“덕쇠가 활을 쏘면 달아나는 토끼, 노루를 정확하게 맞히지.”
마을 청년들이 모여서 덕쇠 자랑을 하자, 덕쇠 집 바로 옆집에 사는 청년이 무척 놀라운 말을 했어요.
“말도 마라. 덕쇠, 그 장수가 얼마나 힘이 세고 용감한지 몰라. 금강산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호랑이 새끼를 잡아와 집에서 강아지처럼 키우고 있다니까?”
“뭐? 호랑이 새끼를 강아지 기르듯이 집에서 키우고 있어? 호랑이 새끼를 가두는 우리도 없이 마당에서 키운다고?”
“그럼, 아침저녁으로 그 호랑이 새끼에게 쥐를 잡아주든지, 뒷산에 가서 토끼를 잡아다 먹인대.”
“아이고 무서워라. 덕쇠 집 근처에 함부로 가지 말아야지. 호랑이가 ‘어흥’ 하고 뛰어나오면 어떡하지? ”
이러한 덕쇠는 금강산 골짜기 이 마을 저 마을에 용감하고 힘이 센 장수로서 소문이 났어요.
어느 날, 봄이었어요.
덕쇠가 마을 앞 들판에 나가 마을 청년들 함께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부지런히 일을 했어요. 일을 잠시 쉴 즈음에 덕쇠가 밭 한 가운데서 밭에 씨를 뿌리면서 목소리를 크게 하여 친구들에게 노래를 한 곡조 불렀어요.
♬금강산 일만 이천 봉 봉우리마다 햇살 비추면.... .♫
덕쇠의 구성지고 우렁찬 목소리가 들판에 울려 퍼지자, 그 목소리는 금강산 골짜기를 우렁우렁 흔드는 듯했어요. 더구나 함께 일을 하던 처녀들은 그 우렁찬 덕쇠의 목소리에 얼굴이 바알갛게 달아올랐어요.
“와! 동작 빠르고 힘만 센 줄 알았더니, 목소리도 저렇게 우렁차다니!”
마을 앞 들판에서 일하던 친구들의 손과 발이 우쭐거려지며 춤사위로 흥겹게 흔들리고 여기저기서 호미로 장단을 맞추는 소리까지 났어요.
그 마을에 여름이 돌아왔어요.
초여름 어느 날, 마을에서 정보가 가장 빠른 ‘창수’란 청년이 숨을 헐떡거리며 급히 덕쇠를 찾아왔어요. 그는 무척 분개한 목소리로 덕쇠에게 말했어요.
“덕쇠 장수님, 큰일났어요. 우리 마을 앞 바다 멀리에 갈매기섬이 있지요?”
“그렇지. 그 섬에는 갈매기 떼들이 깃을 들이고 사는 포근한 섬이지. 그 섬에는 갈매기들만 사는 곳이지.”
“그래서 말인데요. 그 섬에 바다를 건너온 도적떼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갈매기 둥지를 뒤져서 수천수만 개의 갈매기 알을 긁어내어 삶아서 먹는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 놈들이 그곳에서 진을 치고 우리 금강산 칡마을을 쳐들어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덕쇠는 손을 바르르 떨며 바다 멀리 보일 듯 말 듯한 갈매기 섬을 바라보며 무겁게 말했어요.
“갈매기의 둥지를 뒤져서 알을 삶아 먹어? 그 불상한 갈매기들이 얼마나 끼룩거리며 바다 위를 헤매고 있을까? 그 놈들이 바다 건너에서 온 도적떼들이라면 왜구 놈들이구나.”
덕쇠는 먼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숨을 크게 들여 쉬고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왜구 놈들을 한 놈이라도 이 땅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된다. 갈매기 섬은 우리 땅이다. 그 섬으로 가서 그들과 싸워서 쫓아내어야 한다. 갈매기들의 보금자리를 찾아서 갈매기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
덕쇠는 분노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멀리 보이는 갈매기 섬을 바라보았어요.
“그 착하고 예쁜 갈매기 알들을 도적질해서 삶아 먹다니! 그 갈매기 알이 둥지에서 깨어나면 수천마리의 갈매기 새끼로 날 수 있는데 말이야, 나쁜 놈들, 우리 칡마을에 쳐들어오겠다고?”
덕쇠는 갈매기 섬의 왜구를 쳐 없앨 궁리를 하고 준비를 했어요.
“그 녀석들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고 오로지 칼과 창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어.”
덕쇠는 무서운 눈빛을 보이며 금강산 골짜기를 누비며 호랑이, 사슴을 사냥하던 활, 창 그리고 칼을 준비했어요.
“그 녀석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배에 돛을 달지 않고 내 손으로 저어서 가야지. 그것도 밤에 가야 그놈들을 쉽게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아.”
해질 무렵, 덕쇠는 칼, 활, 창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작은 배를 타고 갈매섬을 향해 포구를 출발했어요. 혼자서 작은 배를 용감하게 저어 갔어요.
이상했어요. 덕쇠가 배에 올라 노를 젖자, 그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엄청난 파도가 밀려왔어요. 덕쇠는 겁이 났지만 자기를 다스렸어요.
“괜찮아, 동해의 넓은 바다와 높은 금강산에 자란 사나이가 이쯤의 파도야 자신 있어.”
덕쇠는 작은 배를 저어 그 심한 파도를 헤쳐 가느라고 밤새 노를 저었어요. 동해의 아침 해가 뜰, 새벽 무렵이 되어서야 갈매기 섬에 닿게 되었어요.
갈매기 섬에 보초를 서던 왜구들의 초병이 덕쇠가 탄 작은 배를 보자, 적의 침입으로 보고 비상 나팔을 불었어요. 여기저기서 왜구들이 작은 배를 몰고 ‘와! 하고 고함을 지르며’ 덕쇠가 탄 배를 향하여 공격해 왔어요.
덕쇠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다가오는 왜구의 배로 뛰어 들어가 칼을 휘두르며 왜구들을 한 놈씩 베기 시작했어요. 힘차고 날센 덕쇠의 칼에 왜구들이 추풍낙엽처럼 바다로 철벙거리며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덕쇠는 왜구들의 칼 솜씨가 형편없는 것을 알자, 칼을 쓰지 않고 창을 휘두르고 이 배 저 배를 훌쩍 훌쩍 뛰어다니며 왜구들을 한 놈씩 바다에 밀어 넣었어요. 이제 덕쇠의 용감한 몸은 창도 필요 없이 맨손으로 왜구들의 멱살을 잡아서 바다로 첨벙첨벙 던졌어요.
덕쇠는 배에 붙어서 벌벌 떨고 있는 왜구들을 창으로 푹푹 찔러 바다에다 밀어 넣었어요. 작은 배, 큰 배를 뛰어다니며 왜구들의 멱살을 잡아 끌어 바다에 획획 던지자, 왜구들이 덕쇠를 피하기 바빴어요. 그 동작이 얼마나 민첩한지 주변의 왜구들이 벌벌 떨고 있을 뿐 대항할 엄두도 낼 수가 없었어요.
그때였어요.
왜구들의 여러 척의 배 중, 가장 큰 배에서 벼락같은 고함 소리가 났어요.
“이 놈들아, 지금 무엇을 하는 거냐?”
큰 배의 뱃머리에서 왜구 두목이 활을 들고 작은 배를 내려다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나 작은 배에 타고 있는 왜구들은 호랑이처럼 빠르고 힘찬 덕쇠를 당해낼 용기가 없어 벌벌 떨기만 했어요.
덕쇠가 숨을 식식거리고 창의 손잡이를 바투잡고는 왜구의 두목이 있는 곳으로 뱃머리를 돌렸어요. 왜구를 노려보며 왜구 두목의 배에 접근했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왜구 두목이 활을 덕쇠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조준해서 힘차게 당겼어요.
“아앗!”
왜구의 두목이 쏜 화살이 날아와 덕쇠에 오른 쪽 어깨에 정확하게 꽂혔어요.
덕쇠가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에 손을 올려 화살을 잡어 빼자, 벌써 피가 흥건하게 흘러 옷깃을 적시고 뱃전에 흘러내리기 시작했어요.
덕쇠는 힘을 모아 왼손으로 창을 들고 왜구의 두목을 노려보고 힘차게 던졌어요.
왜구의 두목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창을 오른손으로 재빠르게 잡더니 그 창을 마치 수수깡을 꺾듯이 꺾어서 바다에 던져버렸어요.
덕쇠는 그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내 어깨 상처만 아니면 적수를 만난 것 같은데, 한 판 해볼 만해.”
덕쇠가 한 마리 호랑이처럼 펄쩍 뛰어 왜구가 있는 큰배로 올라갔어요. 어깨에 흐르는 피를 생각하지도 않고 용감하고 아주 힘차게 왜구의 두목 앞으로 달려갔어요. 왜구의 두목 근처에 있는 졸개들을 발로 공을 차듯이 힘차게 차버리자, 졸개들이 바다로 첨벙첨벙 빠져버렸어요.
덕쇠와 왜구의 두목이 마주 보게 되었어요. 왜구 두목이 덕쇠의 멱살을 잡기 위해 손을 벋어오자, 덕쇠는 기다렸다는 듯이 왜구 두목의 목을 끓어 안고 배 안에서 서로 뒤엉겨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여 엎치락뒤치락 했어요,
얼마 후, 덕쇠가 힘이 센 왜구의 몸 아래 깔리게 되었어요. 어깨의 상처에서 흘린 피로 덕쇠가 힘을 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왜구의 무거운 몸에 몸을 깔리게 된 덕쇠가 숨을 식식거리며 자기 배위에 웅크리고 있는 왜구를 보았어요. 왜구도 힘에 부친 듯 식식거리며 덕쇠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덕쇠는 가빠오는 숨을 식식거리며 마지막으로 칡마을의 뒷동산을 생각했어요. 맑은 샘물, 칡 내음이 코에 물씬 몰려왔어요. 금강산 봉우리를 뛰어다니던 힘이 다리와 팔에 전해왔어요.
덕쇠는 칡마을의 힘, 약샘의 힘이 팔과 다리에 전해오자, 숨을 크게 들여 쉬고는 마지막을 다하여 왜구 두목의 가슴을 치고 벌떡 일어났어요. 왜구의 두목이 당황하여 옆으로 엎어지자, 덕쇠는 재빨리 왜구 두목을 들어 바다에 ‘첨벙’ 던져버렸어요.
덕쇠가 왜구 두목의 몸뚱아리가 바다에 빠지는 ‘첨벙’하는 소리를 듣고는 정신을 잃고 기진맥진하여 배 바닥에 쓰러졌어요. 배가 주인을 잃고 바다에서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갔어요.
이때였어요.
어디서 날아왔는지 수천수만 마리의 갈매기들이 까맣게 바다를 덮으며 날아왔어요. 그 수많은 갈매기들이 날개로 힘을 모아 쳐대는 바람이 대단했어요. 바다와 하늘을 까맣게 덥고 있던 갈매기들 모두가 날개를 힘차게 파닥이며 바람을 일이키기 시작했어요.
“쏴아.- 쏴아-”
갈매기들이 날개로 바람을 일으키자, 먼 바다로 정처없이 떠가던 배의 방향이 갈매기 섬으로 서서히 돌려지기 시작했어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배가 갈매기섬 쪽으로 방향을 돌려지자, 배가 바닷물과 함께 가볍게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어요.
제법 오래 동안 배가 바닷물을 따라 흘러 갈매기 섬에 닿았어요. 배가 갈매기 섬의 커다란 바위에 ‘툭’ 소리를 내며 닿자, 덕쇠가 긴 잠에서 깨어나듯이 부스스 눈을 떴어요.
배 바닥에 누워 눈을 뜬 덕쇠가 정신을 차려 하늘을 보자, 하늘에는 수도 없이 많은 갈매기들이 까맣게 떼를 지어 끼룩거리며 날고 있었어요.
덕쇠가 배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나자, 갈매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덕쇠의 몸 주위로 날며 끼룩거렸어요. 어떤 갈매기는 덕쇠의 볼과 이마를 스치기도 했어요.
덕쇠는 그런 갈매기를 바라보며 눈시울이 뜨거웠어요.
“말 못하는 갈매기이지만 저들의 보금자리를 지켜준 은혜를 잊지 않는구나. 갈매기들아 고맙다.”
덕쇠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덕쇠가 칡마을에 돌아와 정신을 차리자, 마을 사람들이 사흘 동안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