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일지(WarDiary,1950년 9월 1일~1950년 9월 30일)
▲미25사단전투일지(1950년 9월 7일)
날씨 : 서늘하고 구름 (사단 군사기록관 소령 잭 펜케이크)
25사단장 킨 소장은 마산의 필요한 근로자와 가족들, 철도 종사원, 고용 담당자, 경찰,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시민들을 피난시키라고 지시했다. 선박과 철도를 이용, 5일 안에 최대한 완료하라. 후송 시작은 근래 마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을 먼저 하고 다음은 부대 CP 근방에 거주하는 사람들 순서이다.
적군은 의령읍과 강둑 북동쪽에 모든 종류의 보급품을 쌓아가고 있었다. 트럭들이 하루 종일 분주하게 오가고 보급품은 비무장 지대 촌락의 산골짜기에 가득하고 위장되어 있었다. 남강 건너 미군 측 진지에서도 보였다. 포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좁은 골짜기에 쌓아갔다.
병력도 숱하게 보였다. 한낮에도 수송 트럭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제법 두터운 구름이 의령 지대를 뒤덮고 있었다.
적군은 간밤에 사단 주변의 모든 부대에 공격을 감행했다.
6일, 21.58시 5연대를 향하여 포격과 박격포로 선제 공격한 후 중앙으로 공격해왔다. 즉각 반격하고 밀어냈다. 다른 공격도 밤새워 산발적으로 이어졌지만 모두 물리쳤다.
65공병전투대대 A중대는 7일, 14.00시 35연대 1대대와 24연대 2대대 사이로 이동했다. 다소 지연되었으며 진지 주변의 지뢰 제거 때문이었다.
8군사령부로부터 구두 명령이 내려왔다. 8월 30일 명령한 5연대와 27연대 교대는 사단 존의 공격으로 인하여 당분간 연기한다. 27연대는 5연대와 교대하기 위하여 9월 9일, 마산 서남쪽에 집결하라.
5연대는 적의 포격과 박격포 공격을 받았으며 A, F, O중대가 아침 일찍 물리쳤다. 적군 단기통 비행기가 5연대 3대대 전방에 기총소사 해왔다. 지상에서 사격하여 적군 진지에 떨어졌다. 5연대는 전위와 후위 패트롤을 왕성하게 이어갔으며 낮 동안 전위는 조용했다. 적군은 23.15시 F중대와 G중대 사이를 소화기 공격했다.
24연대 CP와 1대대는 고성능 포탄과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 24연대 B중대는 박격포격을 앞세워 공격을 물리쳤다. 뒤이어 한국군 중대 측면을 공격했으며 24연대 K중대 후방을 통해서 진지로 침투했다. 한국군은 진지에서 후퇴하고, 대대 규모의 적군은 24연대 B, F, K중대 진지를 앗아갔다. 27연대 3대대는 B와 K중대와 합세하여 역공을 명령받고 1136.5-1359.5 근방에 있는 K중대의 잃은 진지에 이르렀으며, 오후에 강렬하게 저항 받았지만 별 문제없이 목적지 1138.5-1358.6 지점을 확보했다.
3대대가 빠진 27연대는 적군 지역의 소탕을 이어가는데 1대대는 안개 때문에 다소 지연되었다. 10.00시 1150.5-1372.5 지역에서 북쪽으로 공격을 이어간 후 낙동강에 이르고 서쪽으로 진격을 계속했다. G중대가 없는 2대대는 1147-1375 근방 북쪽을 공격했으며 저항은 가벼웠다. G중대는 35연대 2대대의 주 보급로를 지키기 위하여 2대대의 진지에 남았다. 3대대가 빠진 27연대는 35연대 2대대 후위의 낙동강의 적을 섬멸한 후 5연대와 교대하기 위하여 마산 근방으로 이동한 후 준비에 들어갔다.
35연대 3대대 CP는 서북쪽으로부터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G와 E중대는 진지를 확보한 이래 가장 강렬한 포격과 박격포 공격이었다. 적의 포격 속의 E중대는 전방의 강을 건너오는 적군이 바라보였다. G중대는 수를 알 수 없는 적군으로부터 후위와 우측방을 격렬하게 공격받았다. 바로 이어 2대대 후위와 전위의 전 지역에 또다시 포격과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 역공 포격이 명중하고 적은 물러갔다. I중대는 앞서 적이 발견되었던 1146-1370 지역으로 이동했으며 70명의 적군과 조우하고 35명을 사살하고 3명을 붙잡았다. 사라진 적을 확인하려는데 또다시 150명 이상의 적과 조우했다. 그 중의 몇 명은 7일, 06.00시~07.00시 사이에 64야전포병대대 진지 안의 G포대를 공격한 적들이었다.
적은 오늘 하루 300명의 사상자를 낸 후 물러갔다. 사단경비행부대는 14회 비행, 전투수색과 정찰 9회, 경비행대는 보급품을 공수하도록 사전에 포장하고 준비해 놓았으며 사단 비행장에서 언제나 응급 투하하도록 대기하고 있다. 실탄, 통신 장비, 1급 보급품, 구급낭 같은 것들이다.
제5전술공군은 10회 임무출격에 총 50대가 출격, 의령 북동쪽의 4대의 차륜 파괴, 다른 공격은 결과 미상. 해군함포사격은 19발 임무포격, 8발은 관측포격, 4발은 보급 및 탄약저장소, 1발은 장비 파괴, 2발은 적군 집결지였으며. 결과는 알 수 없음.
8야전포병대대 B포대는 27연대의 걸레질 작전을 지원했다. A포대는 24연대의 잃은 진지 되찾기를 지원했다. C포대는 555야전포병대대를 지원했음.
64야전포병대대는 9월 6일, 아침 포격하여 사살 300명, 포 1문, 탱크 1대, 몇 기의 박격포 파괴. 부상자 수는 미확인.
159야전포병대대는 낮 동안 방어와 준비포격. 두 곳의 박격포 진지를 무력화.
90야전포병대대는 두 곳의 박격포 진지를 파괴.555야전포병대대는 두 곳의 포병대 진지를 무력화하고, 1문의 박격포 파괴. 확인 사살 95명, 부상자 수는 미확인
▲미25사단전투일지(1950년 9월 8일)
날씨 : 구름많고 소나기 (사단 군사기록관 소령 잭 펜케이크)
강물은 간밤에 수위가 낮아지고 적군은 남강을 건너 또다시 공격해왔다.
아침이 되자 강물이 불어나고 도강이 어려워졌다. 강 동쪽 근방의 적을 향하여 포격했으며 결과가 좋았다. 적군은 강둑으로 병사와 보급품을 계속 실어오고 밤에는 전조등을 끈 채 계속했다. 미해군 함정 도열Doyle호가 적군의 남강 강둑을 따라 포대, 보급품 더미, 차륜, 병력 집결지에 포격했다. 사단포대가 관측했으며 전과가 우수했다.
적군 패트롤은 박격포와 소화기로 사단 전위를 따라 공격해왔다. 사단 북쪽 측면으로 평사포격이 날아왔다. 5연대 B와 C중대도 8일, 06.45시 공격받았지만 피해는 별로였다. 북쪽의 35연대는 적군이 1147-1380 지역의 낙동강 다리를 폭파하려 한다고 보고했다. 그들 패트롤의 일부는 미군이 설치해 놓은 다리 보존용 와이어를 절단하려 했으며, 전원 사살되었다. 그들로부터 회수한 많은 미군용 폭약은 35연대 E와 F중대의 폭파조가 폭발시키고 다리는 건재했다. 야간에 자주포가 포진지를 옮겨가면서 날아왔다. 오후에 1136-1373 지역의 강을 건너는 수송 보트를 발견하고 포격하여 뒤돌아갔다.
25수색중대는 35연대 2대대 지역 내의 여러 곳의 요란사격하는 적군을 소탕할 것을 명령했다. 그곳은 27연대와 5연대가 교대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곳이다.
27연대 3대대의 공격은 짙은 안개와 폭우로 지연되고 24연대 3대대의 진지로 되돌아갔다. 적은 이곳 정상을 차지한 채 완강하게 저항하면서 포격과 박격포격하여 미군은 사상자가 많이 났다. 험한 산악 지대와 적의 완강한 저항이 미군의 전진을 멈추게 했다. 적은 8일, 18.30시 공격해왔으나 물리쳤다. 전선의 24연대의 다른 부대들은 방어진지 구축을 이어갔다.
사단의 우측면의 한 지역은 미보병2사단이 떠남으로써 노출되었다. 8군사령부는 1148-1360 지역에 철조망으로 제한점 수립을 서둘렀다. 이 명령은 8일, 09.20시 전송되었으며 2사단과 25사단은 접촉하고 협동할 것을 명령했다.
마산방어전투 중 피폭된 소련제 트럭, 주행계기는 1,000km를 가리키고 있다
한국군은 낙동강 1145-1379 지역 근방의 강둑에 진지를 구축했다. 그곳은 2사단의 새로운 제한점과 맞닿고, 35연대 F중대와 35연대 오른쪽 전위 사이의 빈자리 지역이었다.
65공병전투대대 C중대는 24연대와 접속하여 주 저항선의 한 지역을 방어하도록 했다.
적군 정찰대는 8일, 08.00시 5연대 1대대와 2대대와 조우한 후 우측면 중대를 공격했으나 포격으로 쫓겨났다.
3대대를 뺀 27연대는 5연대와 교대하기 위하여 마산으로 접근했다. 27연대 2대대는 8일, 16.00시 5연대 3대대와 교대를 완료하고 27연대 1대대는 5연대 2대대와 교대 준비를 이어갔다.
35연대 E와 F중대는 적군이 반복해서 침투해왔지만 물리쳤다. 35연대 K중대 전위의 강 서쪽의 적을 향하여 박격포 포격했다. 35연대 I중대는 K중대와 합세하여 1146-1369.8 지역을 정찰하고 적군을 찾아 격파했다. 8일, 12.00시 1146.3-1571.8 지점의 미군 트럭을 박격포와 자동화기로 공격했으나 피해는 경미했다. 4척의 적군 보트가 강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으며, 15명을 태운 보트 한 척이 35연대 F중대의 75mm 무반동포 1발을 맞고 침몰했다. 1142.6-1321.9 지역이었으며 1,500야드가 넘는 거리였다.
사단경비행부서의 정찰기는 4회 비행, 1회는 정보와 정찰.병기부서는 포획한 병기를 점검반이 순회하면서 수리, 점검, 유지, 관리했다.
미해군 도열(Doyle)은 떠나고 스엔슨(Swenson)호가 취역했다. 두 함정은 60발을 포격했다. 11발은 포병이 관찰한 바 보급 더미, 포진지, 병력 집결지이며 전과는 만족했다.
64야전포병대대는 8발은 보급소와 적군 집결지, 결과는 불확실.159야전포병대대는 28발 발사에 역습준비 포격과 차단포격, 적진지 포격했으며, 적군 사상자를 알 수 없음.90야전포병대대는 박격포, 병력, 포진지에 2발 포격, 박격포 2문 무력화, 3문의 포진지 파괴, 적군 사상자는 알 수 없음.
555야전포병대대는 박격포, 차륜, 병력 쪽으로 19발 발사, 박격포, 자동차 각각 1대 파괴, 70명의 확인된 사상자와 더 많은 사상자를 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