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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7 12:22

  • 오피니언 > 고분군

훈수

기사입력 2022-12-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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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지금의 방법보다 더 좋은 묘수를 귀띔해주는 것을 훈수라고 한다. 학생에게는 교훈이 있고, 집안에는 가훈이 있다. 사회 전반에 가르치는 훈, 훈수가 있어서 훈수에 귀 기울이다 모범적 생활을 하기도 하는가 하면 훈수가 지날 칠 때는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툼이 지나치게 되면 사이좋던 관계가 갈라지기도 한다. 주변에서 훈수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놀이가 있다.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이다. 정작 본인이 할 때는 좌와 우의 갈 방향에 침묵한 채 골똘히 생각하고 있지만 옆에서 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는 박사급 보다, AI보다 더 똑똑한 전문가가 되어 훈수를 하게 된다. 내가 할 때 어렵기만 하던 놀이가 곁에서 볼 때는 탄탄대로의 승리하는 길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기나 말기나 몇 블록을 지나야 길이 제대로 보이고 한 발짝만 움직여야만 보이는 길도 있지만 훈수가 길어지면 바둑이고 장기고 그 판을 엎어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된다. 예전 남존여비, 남성우월주의, 남자는 하늘이던 때가 있었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것마저도 거리를 두어야 했고 식사 시간도 달라야 했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될 경우 남자와 여자가 앉는 자리나 거리도 정해져 있었다. 식사자리에서 어른보다 말을 많이 해서도 안 되고 어른 먼저 수저를 들어서도 안 된다. 한 가문의 법도와 예절이 식사자리에서 전수되는 것이라 할 수 도 있다. 그 자리에서 가문의 어른이 일러주는 예법에 따르지 못할 경우 상판은 뒤집어 지고 예법을 모르는 자식들은 후레자식이 되어버린다.

이웃 지역으로 자전거로 달리다가 강변 아래로 가는 길을 따라 갈 때가 있다. 잘 정리된 강변 좌우는 자전거 전용 길이 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라도 안심하고 달릴 수 멋진 곳이다. 더 좋은 것은 강의 좌우를 이어주는 다리가 있다. 다리 아래는 무더운 여름날 나그네에게 에어컨의 역할을 해준다. 땀을 흘리며 달리다가 다리아래 그늘은 자전거라이더들에게는 생수만큼 좋다. 때로 예측하지 못했던 강풍이나 비를 만날 때는 임시 피신처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곳에 장기판과 바둑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맹추위가 오지 않는 한 그곳은 동네 어른들의 휴식처이며 사랑방이며 토론장이며 나라사랑과 내 고장 사랑과 발전을 위한 정견장이 되기도 한다. 지역에서 어른들을 위해 그려준 것인지, 토론장이며 휴식처에 모여든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것인지, 마음씨 갸륵한 청년단체에서 그려준 것인지 알 수 는 없지만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고 하여도 넉넉히 놀이를 할 수 있도록 그림이 여러 개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 새로운 모습이었다. 단순한 언쟁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해주려는 참신한 생각이다. 어르신들을 위한 자유의 시간, 그 시간을 속박하는 것이 훈수, 훈수의 지나침은 판을 깨어버리고,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주의 시대에서 집안 남자의 말 한 마디로 상다리가 부셔지고 상판이 날아가는 것처럼 지금 우리는 지나친 훈수의 홍수가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각기 할 일을 차근차근 하는 곳에서 어른이고 나이 많다는 것으로 함부로 훈수를 들거나 침을 튀기면 외톨이가 되는 길로 가버리게 된다. 훈수는 속으로 되 뇌이거나 묵언으로 할 때 더 효과가 있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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