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보배이자 인류문화의 자산이며 유형의 문화재와 함께 무형의 문화재는 모두 민족·문화의 정수이며 그 기반이다. 더욱이 우리의 문화유산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재난을 견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는 일은 곧 나라 사랑의 근본이 되며 겨레 사랑의 바탕이 된다.
함안군이 보유한 위대한 보물인 대산리 석조 삼존상은 고려 시대의 불상으로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71호로 함안 대산리 석불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 함안 대산리 석조 삼존상으로 변경되었다.
현재 위치는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1139 번지 한적 즉 대사(大寺)라 전해지고 있는 이사지에는 모두 3구의 불상이 남아 있어서 하나의 석불군을 이루고 있으며 이 가운데 가장 완전한 상은 2구의 보살 입상으로 형식이나 양식이 흡사하여 좌 불상의 좌우 협시로 조성되었음이 분명하며 두 보살상은 타원형의 부드러운 얼굴이나 아담한 체구 그리고 8각과 원형의 2단 대좌 등에서 통일신라 초기 양식의 전통을 계승한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원통형의 높은 관이나 작달막한 체구 기하학적인 의문(衣紋) 한복식 옷 등의 표현은 고려의 지방 양식 석보살상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파괴가 극심하고 머리가 없어진 좌 불상은 비록 보존 상태가 좋지 않으나 양감이 풍부하고 세련미가 있는 조각으로 상당한 수준의 고려 시대 작품이며 광배 부분과 함께 고려 시대 불상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함안 대산리 석조 삼존상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71호로 지정되었으며 1985년 축대 보수, 안내판 설치 등의 정비가 이루어졌고 1995년 석불 주변 정비 이후 1996년 일제 지정문화재에 대한 재 평가가 실시되었고 2003년 석조 문화재 보존 관리 연구를 통해 풍화 상태, 생물 영향. 구조 안정성 등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2005년과 2007년에 석불 주변 정비 공사가 실시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또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마을 뒤 북쪽의 동지산 기슭에도 기와 편과 탑재가 발견되었으며 태풍 ‘사라’호 때 노출된 탑재의 일부를 함안 군청 화단에 놓아두었다고 하며 또 시주의 이름이 새겨진 법종은 부산의 범어사에 가져갔다고 한다.
이렇듯 사지와 관련된 지명과 전언이 있는 동쪽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금천(琴川)을 지나 함안천과 합류되고 있고 북·동·서 세방위가 낮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일찍부터 사람들의 생활 터전으로 삼기에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관계는 주변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 유적인 광정리 지석묘군, 삼국시대 유적인 금천리 고분, 괴산리 괴항 고분,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성으로 추정되는 성산 산성과 동지 산성 등이 유적들에서 잘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