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고성군에는 고려군이 주둔하고 있는 군사 본부가 있었어요. 요즘 말로 하면 동해안을 종종 침입하는 왜병들을 지키는 해군사령부이겠지요.
그 사령부에 급한 전갈이 날아들었어요. 회양 마을에 군사가 다급하게 숨을 헐떡거리며 사항을 전달했어요.
“아주 합니다. 회양 마을에 왜구들이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며 금강산 쪽으로 들어갈 형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고성에 주둔하고 있던 사령관은 즉시 전투 준비를 명령했어요. 왜구들의 침입을 몇 번 저지한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조금만 때를 놓쳐도 금강산 골짜기의 많은 양민들이 그들에게 죽거나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잘 알지요.
“비상이다. 회양 주민들을 구해야 한다. 그곳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전 군사들은 창, 칼, 활을 점검하여 전쟁준비를 한 후에 연병장에 모여라.”
고성 군사들은 전쟁 준비를 급히 하였어요. 간혹 일어나는 왜구들의 노략질을 대비해서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전쟁을 준비할 적에는 항상 긴장이 되었어요. 군사들은 완전 무장을 하여 준비가 완료되자, 회양 마을로 출발하게 되었어요. 사령관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걸음의 속도를 뛰다시피 빠르게 걷게 했어요.
“한 나절이 늦으면 우리 양민 100명이 피해를 보게 되고, 하루가 늦어지면 200명이 피해를 보게 된다. 최선을 다하여 빨리 걸어야 된다.”
군사들을 향하여 소리 지르는 사령관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다급했어요.
“온정리를 거쳐 온정천을 건너 만상계까지 가려면 이 정도 속도로는 어렵다. 조금 더 빨리 걸어라.”
군사들은 숨을 씩씩거리며 달리다시피 했어요. 양진까지 30리 길을 숨 가쁘게 달려온 그들은 다시 온정천과 그 상류 한하계, 만상계를 따라 가파른 산길을 숨 가쁘게 올라갔어요. 잠시의 휴식도 없이 가파른 산길을 뛰고 있는 군사들의 숨소리가 타는 듯했어요.
사령관이 고성 장병들을 이끌고 온정리 고갯마루까지 치달아 오르자, 오뉴월 뜨거운 태양이 하늘 가운데에서 지친 군사들을 내려다보고 쨍쨍 쪼이고 있었어요.
군사들이 고갯마루에 다다르자, 모두가 지쳐서 숨을 헐떡이며 여기저기 쓰러지기까지 했어요.
사령관은 온정리 고갯마루에서 잠시 숨을 돌리려는 군사들에게 호통을 쳤어요. 원군의 도움을 기다리는 회양 마을의 사정을 헤아리면 다급한 상황이었어요.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회양에 도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군령을 어기게 되고 전투업무를 계획대로 수행 할 수 없게 된다.”
사령관은 군사들이 고갯마루에서 잠시 숨을 돌리자, 앞장서서 붉은 깃발을 높이 흔들며 군사들의 행군을 독려했어요.
“모두, 전진!”
군사들은 잠시 숨을 돌린 기운으로 다시 함성을 질렀어요. 지친 몸으로 함성을 지르자, 숨이 더 가빠왔으나 군사들은 참고 걸음을 빨리 했어요.
온정리 고갯마루의 여름햇살은 유난히도 뜨거웠어요. 군사들의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했어요.
군사들이 숨을 헐떡이며 목이 말라 소리쳤어요.
“물! 물! 물! 목이 탄다. 물이 어디 있느냐?”
온정 마을 고갯마루에서 잠양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접어들자, 목이 타는 듯이 말랐어요.
그때였어요.
누군가 산골짜기가 떠나가라고 고함을 질렀어요.
“저기 물이다. 물동이다.”
멀리 점양 고을 앞으로 한 처녀가 마을 앞길로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이 보였어요. 모든 군사들이 그 처녀가 이고 가는 물동이를 보고 입을 다셨어요.
“와! 물이다. 제발 빨리, 빨리 가서 그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음껏 마셨으면 살 것 같다.”
처녀의 물동이를 본 후, 군사들의 발걸음이 엄청 빨라졌어요. 군사들이 아주 빠른 걸음으로 점양 고을 앞에 다다르자, 물을 이고 가던 처녀를 길가에서 만났어요.
목이 몹시도 마른 사령관이 처녀에게 말했어요.
“아가씨, 물 한 바가지만 먹을까?”
물동이를 이고 가던 처녀가 우뚝 멈춰서 많은 군사들을 보았어요. 처녀가 입술이 하얗게 타들어가는 군사들을 보자, 처녀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물동이를 혼자의 힘으로 바닥에 내리더니, 자기의 윗도리로 벗어 물동이를 덥고 근처에 오지 못하게 단호하게 막아섰어요.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더니, 잠시 후에 그는 넓은 나뭇잎을 한 웅큼 따왔어요.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가득 떠서 그 나뭇잎 한 장을 띄워서 군사들에게 천천히 권했어요.
“바가지 물을 천천히 드셔야 합니다.”
군사들은 처녀가 공손하게 권내는 바가지를 받아들고 바가지 안에 동동 떠 있는 나뭇잎을 요리저리 밀치며 천천히 물을 마셨어요. 앞 쪽에 선 군사들 몇 명이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시면서 갈증을 면했어요.
처녀의 그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한 사령관이 처녀에게 다정하게 물었어요.
“아가씨, 목이 저렇게 마른 군사들에게 왜 그렇게 시간을 끌어 나뭇잎을 바가지에 띄웠나?”
처녀는 수줍은 듯이 고개를 돌리며 얌전하게 말했어요.
“이 물은 저기 보이는 저 향나무 밑에서 길어온 것입니다. 우물의 물은 한 여름에도 손이 시리어서 물을 호호 불며 마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위험하답니다.”
“그렇구나. 그 차가운 물을 급하게 마시면 숨이 막힐 수도 있고 체할 수도 있다는 말이구나. ”
사령관은 수줍어하는 아가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어요.
“아가씨, 감사해. 전쟁도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슬기를 모아 해야겠군. 그런데 아가씨, 우물 이름이 무엇인가?”
“찬샘이라고 해요. 우리 마을 이름도 ‘찬샘마을’이라고 불러요.”
사령관은 조금 높은 바위에 올라 모든 군사들을 향해 그들이 들을 수 있도록 아주 큰소리로 말했어요.
“지금 여러분 몇 명이 마신 물은 겨우 갈증을 면한 정도이다. 저기 마을 안쪽에 커다란 바위 아래에 있는 향나무가 보인다. 그곳에 가면 바위 아래에서 물이 퐁퐁 솟아난다. 그 우물에 가서 물을 마음껏 마셔도 좋다. 단 주의할 것은 물이 너무도 차가 와서 급히 마시면 숨이 막히거나 체하여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각별히 조심하여라.”
군사들은 향나무가 있는 샘터로 갔어요. 그곳에는 맑은 샘물이 바위틈에서 퐁퐁 솟아나고 있었어요. 샘터 앞에는 조롱박이 몇 개 동 동 떠 있었어요.
군사들이 질서정연하게 그 조롱박으로 돌샘에서 나오는 물을 한 족자씩 떠 천천히 마셨어요.
“어휴, 차다. 찬 얼음이다. 이빨이 시리다.”
샘물은 목마른 군사들에게 약수처럼 힘을 불끈 나게 했어요. 샘물을 마신 군사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힘을 내어 환호를 내었어요.
“영차! 힘내자! 왜병 이 놈들!”
군사들은 샘물 한 잔으로 힘을 얻어 다시 진군을 계속하였어요.
드디어 늦은 오후 정도 되어 고성 사령부의 군사들이 사기도 드높게 회양 땅에 도착했어요.
회양 땅의 상황은 일촉즉발의 위기였어요. 왜병들이 부녀자들을 인질로 잡아 끈으로 묶어 남자들을 위협하고 있었어요. 남자들도 많은 수가 그들에게 잡혀 손발을 묶인 상태였어요.
사령관은 회양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에 본부를 정하고 병사들이 완전무장을 하여 대기하도록 했어요.
사령관은 참모 장수들을 회양 고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모아 의논했어요. 장수들이 신속하게 본무 막사로 모였어요. 사령관이 회양 마을을 내려다보고 장수들과 이마를 맞대고 작전을 짰어요.
“지금은 한 시가 급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장수들 모두가 입을 꼭 다물었어요. 지금 이 상태에서 섣불리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항상 작전에는 특별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 노련한 장수가 말했어요. 그는 다른 장수들보다 키가 무척 큰 편이었어요. 그는 입술을 바르르 떨며 말했어요.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모든 장수들이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들여 쉬며 의아해 했어요.
“불을 질러? 어디에? 어떻게?”
그 상황에서 사령관이 나섰어요.
“불을 지르는 상황을 말해 보게나.”
그 작전을 말한 장수가 입술을 깨물고 아주 신중한 자세로 말했어요.
“제가 왜구들의 노략질하는 전쟁에 몇 번 참가했어요. 지금 여러분들이 저 회양 마을 북쪽을 바라보십시오. 저곳에는 그들이 노략질한 곡식, 귀금속 등을 모아 두고 천천히 배에 싣는 작업을 하지요.”
키가 큰 장수가 여기까지 말하고 숨을 돌리며 주변 장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었으나 아무도 입을 여는 장수가 없었어요.
키 큰 장수는 그 긴장되는 순간에 약간의 웃음을 머금고 말했어요.
“왜구들이 지금 마을에서 노략질을 하여 더 많은 귀금속 혹은 소 돼지까지도 잡아 갈 녀석들입니다. 이때, 우리가 저들이 노략질해서 모아둔 곡식, 귀금속 등이 있는 곳에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장수의 입에서 그 말을 하자 사령관이 나서며 말했어요.
“그러면 마을에 있던 모든 왜구들이 고함을 지르며 그곳으로 모여들어 불을 끈다고 야단법석이 되겠지. 그 상황이 되면 그들은 칼, 방패 등의 무기를 전부 버린 상태가 되겠지.”
그때, 한 장수가 나서며 다급하게 말했어요.
“왜구들이 노획한 물건에다 불을 지르면 아까운 재산을 불태우는 것이지요.”
그때 작전 참모 장수가 나서며 말했어요.
“그 점을 잘 짚어 주셨네요. 물건 가까이에다 몰래 짚동을 옮겨서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흡사 노획한 물건에 불이 붙은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사령관은 작전 참모 병사의 말을 듣고 모든 장수들에게 지시를 했어요.
“시간이 급하다. 작전 참모가 지시하는 곳에 군사들을 데리고 가서 전투에 임하라. 작전 참모는 볼모로 잡혀 있는 여자 남자들을 살려 낼 방안까지 치밀하게 짜서 나에게 말하라.”
잠시 후, 작전 명령이 내려졌어요. 모든 병사들이 장수들의 지시에 따라 은밀한 장소에서 각자의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어요.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즈음 회양 마을 뒷산에서 연기가 나는 화살이 하늘로 수없이 날아올랐어요. 그것을 신호로 하여 마을 북쪽 공터에서 화염이 시뻘겋게 타오르기 시작했어요. 그와 때를 같이하여 여기저기서 쾅쾅쾅 하는 무서운 폭음이 터졌어요. 회양마을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된 것처럼 보였어요.
왜구들이 다급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그들이 노획한 물건이 쌓인 곳으로 달려갔어요. 그곳이 시뻘건 화염에 싸이고 자욱한 연기가 앞을 보이지 않았어요. 이 때, 대기고 하고 있던 우리들의 군사들이 그 뒤를 급습하여 순식간에 왜구들을 일망타진하게 되었어요.
묶여있는 회양 마을 사람들이 풀리고 대신 왜구들이 포승줄에 꽁꽁 묶이게 되었어요.
횃불이 밝혀진 회양 마을 공터에는 꽁꽁 묶여진 왜구들이 벌벌 떨며 창백한 얼굴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어요.
고성 사령관이 높은 단위에서 엄하게 말했어요.
“오늘 우리 병사들 고생했소. 그리고 회양 마을 여러분 얼마나 긴장을 했겠습니까? 왜구들의 소행을 생각하며 즉시 이 자리에서 목을 벨 것이지만 그들에게도 처자와 자식이 있을 것이다. 저대로 꽁꽁 묶은 채로 배에 실어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게 하라.”
왜구들 중에 우리말을 알아듣는 왜구들은 사령관의 말을 듣고 감격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었어요.
그날 밤, 병사들은 아주 푸근하게 자고 다음날 고성을 향해 여유 있게 돌아오는 행군을 하게 되었어요.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찬샘마을’에 들러 찬샘 우물가에서 그 처녀가 말한 대로 족박에 나뭇잎을 하나 띄우고 시원한 물을 마셨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