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북출신 전 장유초 교장
“아가씨!”란 말,
갓 피어난 꽃봉오리라 해야 하나, 5월의 신록이라 해야 하나, 너무나 아름답고 싱싱한 느낌이 떠오른다. 불러보면, 무척 다정해 보이고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며 부르는 사람도 기분이 좋다. 정확히는 말하기 어렵지만, 아마 5ㆍ60대 이상의 나이 정도가 되는 사람이면 보통의 젊은 여자를 부를 때 흔히 쓰는 익숙한 말로 보아진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말을 정작 아가씨들은 듣기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이다. 온라인상에 ‘아가씨라고 말했다가 우리 아빠 욕먹음’이란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오늘 고깃집에서 가족끼리 밥 먹는데 20대 초중반쯤 돼 보이는 여자 알바생한테 아빠가 ‘아가씨 주문 좀 받아주세요’라고 했다”며 “그런데 알바생이 엄청 기분 나쁜 티를 내면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라고 적고 있었다. 이 글은 SNS를 통해 퍼져나가 댓글이 4,600여 개나 달렸고, 이어 여러 매스컴에 보도되기도 했다.
아가씨의 뜻은 3가지다. 첫째, 시집갈 나이의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아가씨는 여기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둘째, 손아래 시누이를 이르거나 부를 때 해당된다. 즉 남편의 여동생을 말할 때 쓴다. 이것은 아가씨가 결혼을 해도 그냥 아가씨다. 셋째, 예전에 미혼의 양반집 딸을 높여 이르거나 부르는 말인데 지금은 쓰지 않는다.
‘아가씨’는 ‘아기씨’에서 유래되었다. 아기씨는 ‘아기’에서 존칭어 ‘씨’가 붙은 말이다. 19세기까지 아기씨라 불렀고, 20세기부터 아가씨로 사용되고 있어 아가씨의 사용 역사가 그렇게 길지도 않다. 아가씨를 한자로 쓰면 ‘양(孃)’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姓)과 함께 A양, B양이라 많이 불렀지만 이 호칭마저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가씨와 유의어는 소녀, 색시, 낭자, 규수, 소저, 시누이, 아씨, 처녀, 처자 등이 있는데 소녀, 처녀, 시누이 등은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다. 처녀는 아가씨와 매우 유사한 개념이지만 호칭으로는 아가씨보다 적게 쓰인다. 소녀와 소년, 처녀와 총각, 아씨와 도련님, 아저씨와 아주머니, 시누이와 시동생 등 대부분 서로 상대되는 말이 있지만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아가씨와 분명하게 상대되는 말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은 아가씨와의 대등한 가치로 겨룰 만한 상대가 없는 것에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가씨의 위상을 전통 가요의 노래 제목으로 알아보자. 전통가요는 그 시대의 대중 정서를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제목에 ‘아가씨’가 붙은 노래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비롯하여 경상도아가씨, 삼천포아가씨, 울산아가씨, 흑산도아가씨, 서울아가씨 등 지명에 아가씨만 붙이면 노래 제목이다. 남일해의 빨간구두아가씨를 비롯해서 꽃집아가씨, 목화아가씨, 홍콩아가씨 등 아가씨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아가씨를 대신할 수 있는 ‘처녀’ 노래를 보자. 함안의 노래 처녀뱃사공을 비롯하여 소양강처녀, 영산강처녀, 개나리처녀, 봄처녀, 처녀농군, 낭주골처녀, 뽕따는처녀, 목화따는처녀, 앵두나무처녀 등 끝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총각’노래는 대머리총각 하나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이처럼 아가씨(처녀)는 인기 독점에다 총각의 애간장만 태우는 연모의 대상이었다.
이래도 아가씨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복에 겨워서인가. 현실적으로 조직체 속에서 직책이 있으면 아가씨 소리를 하지 않는다. 간호사라는 명칭이 있는데 간호사 아가씨라 하면 싫어한다. 여군을 여군 아가씨라 하면 싫어한다. 유흥업소 아가씨에게 하는 호칭과도 같다. 그들만이 떳떳한 호칭을 갖고 싶어 한다. 그게 이유다. 뚜렷하게 어떻게 불러달라는 말도 없다. 신문에서는 여기요, 저기요 등으로 하는 호칭도 제시한다. 아무런 편견 없이 아가씨 호칭에 길들여진 사람은 앞으로 아가씨 앞에서 말문이 막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