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일지(WarDiary,1950년 9월 1일~1950년 9월 30일
▲미25사단전투일지(1950년 9월 5일)
날씨 : 맑고 소나기 (사단 군사기록관 소령 잭 펜케이크)
9월 5일, 24.00시 29연대 1대대와 3대대, 35연대 3대대는 작전에 돌입했다.
29연대 1대대와 3대대는 9월 2일, 8군사령관 명령 49호에 의거 사단으로 예속되고, 27연대 3대대와 35연대 3대대는 29연대의 병력과 장비로써 더욱 활성화 되었다.
정보기관의 확성기 방송 횟수가 증가했다. 그러나 대민 공고 사항들은 지켜지지 않았다. 35연대와 5연대는 얼마간의 성공으로 만족했다. 105mm 포의 탄피가 빠지지 않아 멀리 있는 민간인들이 방송을 듣고 도와주었다.
사단후위의 적군 활동은 어제 밤과 오늘 크게 증가했다. 많은 적들은 그보다 더 먼 후방까지 침투했다. 마산 가까운 주 보급로와 북쪽 주 도로가 박격포와 소화기 공격을 받았다. 대낮에 불순분자들이 사단 CP와 전방 전선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24연대는 보고해 오기를 1,000명의 적군이 후방에 머물고 있으면서 한낮에 전선을 침투했다. 25사단 병사들은 24연대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적군과 맞서고 있다. 27연대는 CP 근방의 또 다른 적군 무리들이 포진하고 있었으나 완전하게 사살하고 포로로 잡았다.
적군은 5일, 03.00시까지 비교적 조용했다. 5연대가 소규모 사격을 받고, 24연대는 CP 후위에 요란포격과 차단포격을 보고해 왔으며, 35연대 1대대에 자주포 포탄이 떨어졌다. 그것이 모두였는데 새벽이 오기 전에 상황은 바뀌었다. 적은 늘 해오듯이 5연대 1대대를 그들 방식대로 공격해왔다. 아울러 24연대 1대대 후위에 1개대대 규모의 적군이 공격했다. 그러나 27연대 1대대가 명령받고 적군을 몰아냈다. 35연대도 포격을 받았다. 정오 조금 전에 200명의 적군이 35연대와 27연대 근무중대 사이의 주 도로를 차단했으나 5일, 16.00시 도로를 되찾았다. 27연대는 특별했다. 2대대는 보고해 오기를 주 보급로를 따라 사단과 2대대 사이 지점에서 20명을 포로 했다. 35연대 G중대는 이 시간 이후 계속 서쪽의 적과 대치하고 있었으며, 상황이 끝나갈 무렵, 35연대 A중대와 C중대 그리고 24연대 1대대와 3대대 사이에서 제법 큰 총격
전이 벌어졌다.
35연대 최전선 진지의 바로 후위 지역은 크고 잘 짜인 적군이 크게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전투가 크게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연대는 진지를 잘 지키고 적군은 사라졌다. 한편 함안군 칠원면 근방의 27연대 1대대는 35연대 2대대 후위의 적을 소탕하기 위하여 협동하여 북쪽으로 공격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27연대 1대대는 24연대 1대대와 2대대에게 주 방위선 진지를 인계한 후 35연대 2대대 지역으로 이동 준비하였으며, 이때 24연대 2대대가 공격받았다.
27연대 1대대는 24연대 2대대와 C중대와 합동하여 잃은 진지를 되찾았다.
27연대 3대대는 사가-함안-중리 삼각 지대를 완전하게 청소하기 위하여 24연대 1대대와 2대대의 지원을 요청했다. 27연대 1대대는 2대대와 링크하여 서쪽으로 공격하기 위하여 함안면 근방에서 칠원으로 이동했다.
5연대 1대대의 새벽 공격은 적을 물리쳤다. 3대대는 적의 포격과 직사포 요란포격을 받았으며 주 방위선의 모든 진지는 하루 종일 포격과 박격포격으로 가득 찼다. I와 R소대는 매복하면서 차륜 한 대를 잃었다. E중대는 이 곳 전선의 한 촌락으로부터 경화기 사격을 받았다.
적군은 24연대 후위에서 강력하게 포격했다. 함안면의 연대 CP는 포격과 소화기 공격을 받았다. 24연대 1대대는 9월 1일, 24연대 1대대와 2대대가 빼앗긴 진지에서 27연대 1대대와 교대했다. 27연대 2대대는 24연대 1대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진지 안에 있었다. 2대대 C중대는 크게 공격받고 진지를 이탈했다. 주 방위선 후위지역의 E와 H중대는 24연대 1대대의 지원 하에 있었으나 역시 후퇴했다. 그러나 27연대 1대대에 의하여 후퇴가 정지되었다. 24연대 2대대 C중대는 진지를 되찾고, 밤이 되자 A와 C중대는 진지의 공격을 받았으나 물리쳤다.
35연대는 한밤에 진지를 포격 받고 200명의 적이 G중대 진지로 공격해왔다. 1개 소대가 진지에서 밀려났으나 곧 진지 가까운 곳에서 적을 밀어냈다.
주 저항선을 이은 진지는 전위와 후위의 요란사격을 잘 지키고 있었다. 1대대는 아침에 공격을 물리쳤다.
27연대 2대대는 포대가 있는 1144-1373 지역의 도로 교차 지점에서 적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장갑차가 보급하고 부상자를 후송했다. 27연대 1대대는 24연대 1대대와 2대대의 후퇴로 공격이 지연되었지만 35연대 2대대 후위의 적을 쫓아 북동쪽으로 이동했다. 적이 1159-1360 지역의 도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27연대 3대대는 함안면 북동쪽의 고립된 적을 제거한 후 24연대 1대대와 2대대를 지원하기 위하여 머물고, 3대대는 사단 예비대가 되었다.
25수색중대는 725병기중대와 함께 VHF통신대 근방의 적 수색을 계속하고 11공병전투중대와 정찰을 계속했다.
사단정찰기는 7번 임무비행하고 4회의 전투정보와 정찰을 했다.
보안 문제와 후방의 보급 시설이 어수선하다. 25정보중대의 활동으로 다소 진정되었으며 적군 활동이 감지되었지만 처음부터 청소해 버렸다.
흔하지 않은 어려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요할 때, 있어야 할 곳에 각종 탄환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다. 육군 탄약고의 재고와 비축량이 충분하지 않았는데, 원인은 부산으로 이동해 온 선적한 배가 하역이 불가능했으며, 이런 사유로 부산 군수사령부와 육군 간에 많은 시간을 전화에 낭비했다. 사단병참 트럭은 탄환을 싣고 재촉하듯 달려야만 했다.
35연대와 27연대의 흑인 병사를 부사감AG으로 오늘자로 발령했다. 27연대에 10명이 임명되었다.
제5전술항공대TAF는 4기의 작전비행과 2기의 임무비행 했다. 시야가 흐려 어려웠다.
해군함포는 어둠 속에서 요란포격과 차단포격했다.
54야전포병대대의 B포대와 8야전포병대대는 62발 발포하고, 25발은 어둠 속에서 요란사격, 차단포격했으며, 37발은 관측용. 결과는 탱크 1대, 포 1문 파괴, 180명의 확인된 적 사살. 부상자는 미상.
159야전포병대대 A포대와 8야전포병대대는 32발 발사하고, 13발은 어둠 속의 요란 및 차단사격, 19발은 요청포격 및 관측포격. 결과는 알 수 없음.90야전포병대대는 40발 발사, 28발은 요란 및 차단포격, 1발은 조명탄, 11발은 관측용. 결과 불확실.
555야전포병대대 C포대와 8야전포병대대는 총 80발 임무사격에 45발은
어두울 때 요란 및 차단사격, 35발은 요청과 관측포격. 결과는 박격포 3문, 포 1문, 트럭 2대 파괴, 수 미상의 사상자를 냄.
사진 촬영 주임장교가 엄호사격 중에 부상하여 입원했다.
▲미25사단전투일지(1950년 9월 6일)
날씨 : 따뜻하고 맑음 (사단 군사기록관 소령 잭 펜케이크)
중령 J.T. 콜레이가 24연대장으로 부임했다. 함안면의 전임 연대장 대령 알서 쳄퍼니는 작전 중에 크게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사단 인사처는 8군사령부 인사처에 24연대의 대대장 3명이 즉시 필요하다면서 요청했다.
적들은 사단 주변에서 작고 큰 공격을 일삼고 있다. 강력하게 패트롤하여 며칠째 진지를 차지하고 있는 많은 적을 몰아내는 작전을 전개했다. 16개조가 더 되는 적들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파괴하고 통로를 괴롭힌다. 한 포로는 근래 3,000명의 적이 아군의 진지로 침투하여 아군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했다. 적군 진지를 향하여 포격하고 도망가는 루트를 따라 포격하여 포로가 되거나 모두가 요절났다.
많은 적들이 능선을 따라 의령읍 근방으로 집결하고 있다면서 보고해 왔다.
마산전투 중 포로된 적군, 16세, 3일간 굶었다고 진술했음. 1950.9.6.
사단 섹트의 중앙 지점인 35연대와 24연대 사이의 한 포로는 적군 9사단 병력들의 집결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적군들이었다. 적군 6사단의 포로들은 24연대의 남쪽 측면과 5연대의 북쪽 측면에서 포로 되었으며, 83기계화부대 포로들은 남쪽 섹트에서 잡혀왔다. 포로들의 정보와 잡혀온 지점으로 보아 적군 사단들은 의령읍 근방에 주둔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9사단 병사들의 한 포로는 부대로부터 미아가 되어 헤매고 있었다.
후위에 침투한 적들의 활동은 전위나 후방을 공격하기 위함이며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포로들은 줄곧 탄약이 부족했다고 말하지만 적군들의 사격 양이 줄어들지 않고 탄약 부족의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부대는 적군이 동쪽으로 이동 못하게 주 저항선 진지를 굳건히 하라는 지시를 반복했다. 부산은 50km 거리의 1시간 거리이다. 65공병전투대대 A중대는 35연대 1대대와 24연대의 간격 지점으로 접근한 후 1139.5-1364.3 지역 근방의 주 저항선의 진지를 굳건히 지키고, 77공병전투중대는 24연대를 지원했다.
적군 대부분은 35연대 2대대 후방 지역에 머무르고 있다. 27연대가 소탕할 것이며 요란포격으로 적군이 더 이상 아군 진영을 통하여 증원받지 못하도록 했다. 27연대 2대대는 1146-1370 지역에서 이동하여 1146-1370 지역의 고원 지대에 진지를 확보하고 있는 적을 소탕하라.
24연대는 존을 정찰 했으며 의외로 조용했다. 아침에 포탄이 후위에 떨어진 것이 모두였다. G중대는 전방 능선의 적을 발견한 후 E중대와 C중대와 연합하여 박격포와 소화기로 공격하여 물리쳤다. 남은 오후는 진지를 구축하고 재구성하고 공격적 패트롤을 이어갔다. 2대대 일부는 후위의 저격수와 부랑자들을 손보았다. 패트롤은 35연대, 27연대, 35연대 CP 사이, 35연대 3대대와 27연대 2대대 사이를 계속했다. 저격수 총격이 35연대 CP와 27연대 1대대에 날아왔다.
35연대는 후위의 고립된 적을 응징하기 위하여 강력하게 준비했다. 27연대 1대대는 27연대 CP를 공격한 대대 규모의 적을 북쪽과 서북쪽에서 공격했다.
탱크가 정면으로 진격하여 직사포격으로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 냈다. 연대 CP는 저녁 때에 공격 받았으나 안전했으며, 35연대 2대대 후위를 더욱 깨끗하게 소탕하기 위하여 낙동강을 따라 북쪽으로 진격을 준비했다. 이 준비는 27연대 2대대와 협동하여 주 보급로를 확보하고 북쪽으로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27연대 3대대는 마산-사가-정리 삼각 지대에서 저항하는 대대급 적을 소탕한 후 차편으로 1146-1370 지역 높은 산에 굴을 파고 숨어 있는 대대급의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또다시 준비했다.
적군은 아침에 35연대 G중대를 공격했으나 물리쳤다. 이 적군은 얼마 후 E중대를 공격했다. E중대와 G중대는 포격했으며 적군은 침투하지 못했다. 35연대 2대대 CP가 공격받았으나 27연대 1대대가 물리쳤다. 35연대 3대대의 패트롤은 남쪽의 27연대 2대대와 링크했다. 한 포로는 사단 후위에 적군 3개 대대가 있으며 포병 납치 임무 중에 있다고 했다.
적의 요란포격이 아침 일찍 5연대 전방에 떨어지고, 일부 적군이 I와 G중대를 공격했으나 박격포 포격으로 물리쳤다. 5연대는 모든 주 저항선의 진지를 하루 종일 보강했다. 전방 적군 집결지에 포격했다. 6일, 20.30시 5연대 A중대를 공격해왔으나 물리쳤다. F중대에도 22.00시 비슷하게 공격했으며 뒤돌아갔다. 적군은 아군 진지에 포격을 계속하고 있다.
사단경비행기는 13회 비행하고 7번은 전투 정보와 정찰 비행.
사단포병대대들은 우정 어린 보병들이 자리를 되찾도록 포격을 이어갔다. 159야전포병대대는 적의 공격을 1회 멈추게 하고, 3대의 탱크를 무력화시키고, 수 미상의 사상자를 냄.
90야전포병대대는 적 탄약고를 폭파. 남은 다른 포대는 요란과 차단포격을 계속했음.
국군 방어선 사수. 고성 대가면 저수지(안재철). 19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