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25사단전투일지(1950년 9월 1일)
날씨 : 온화하고 안개낌, 소나기 옴 (사단 군사기록관 소령 잭 펜케이크)
미25보병사단 편성표 정원--18,914명 (authorized strength)
현 병력 수---------------14,284명 (assigned strength)
적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포격과 박격포 포격을 시작했다. 매우 강력했다. 미군이 공격 준비한 포 종류, 강도, 양이 엇비슷했다. 적군은 증강된 4개 연대가 동시에 사단 전위를 공격했다. 미24연대와 35연대가 주 목표였다. 적들은 재보급이 필요 없을 만큼 풍족했다. 35연대를 더욱 맹렬하게 공격했다. 모든 진지에 포격과 박격포가 하루 종일 작렬했다. 24시간 동안 추산된 적의 사상자 수는 3,000명이었다.
적군 제6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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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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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25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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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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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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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연대, 35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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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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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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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 제7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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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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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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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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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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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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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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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 예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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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 제2노동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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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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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 제83기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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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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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공 적군의 대항부대
적군은 35연대 1대대와 2대대 사이의 한국군 진지를 관통한 후 24연대 1 대대와 2대대 진지를 공격하고, 두 대대는 완전하게 함안면 쪽으로 후퇴했다. 5연대와 교대 준비 중이던 마산 근방의 27연대도 공격받았다. 27연대 1대대는 24연대의 잃은 진지를 되찾고자 함안면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즉시 역공했다. 29연대 1대대는 35연대를 관통한 후 역습할 것이며, 모든 연대는 강력하 게 역습하여 더 이상 전선을 내어주지 말 것과 전선 후방의 고립된 적을 섬 멸할 것을 명령했다.
27연대 2대대는 함안군 칠원으로 이동하며 35연대와 합동하여 적을 섬멸 하라.
24연대 3대대의 함안면을 통한 보급 루트는 차단되었으며, 5연대 존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3대대는 보급로 확보를 위하여 1143.1-1338.4 지역의 도로 분기점을 확보하라. 65공병전투대대의 일부는 탱크부대의 한 소대의 지원을 받아 24연대와 35 연대 사이의 빈자리를 역공하고 확보하라.
159야전포병대대 C포대는 적들에게 꺾이고, 포대 밖으로 뛰쳐나왔으며, 79 탱크대대 A중대는 차륜과 포를 옮기는 일을 도왔다.
9월 1일, 10.45시 8군사령부 작전 부서의 전문이 도착했다. 27연대는 사단 영내로, 또는 사단 북쪽으로 이동시키고 사단 명령하에 두라. 포병은 27연대와 연합하여 사단 화력을 증강되도록 하고, 단지 어디로 이동하든 포상 설치는 연대와 함께하라.
5연대는 전 전선을 넘어 공격받았다. 1대대 영역은 1일, 06.00시까지는 조용했으나 2중대와 3대대는 저녁 늦은 시간에 강력하게 탐침받았다. F중대의 좌측 소대가 넘어가고 심각했으나 역공으로 잃은 땅을 되찾았으며 또 다시 포격과 소화기 공격을 받았다. 탱크대대의 한 소대와 5연대의 두 소대는 5연대가 확보해 놓은 1143.1-1358.4 지역의 도로 분기점과 24연대 사이의 북쪽의 적군을 서둘러 공격했다.
최초 적과의 조우는 24연대 2대대였다. 적은 대대 CP를 관통한 후 우측면을 점령했다. 1시간 후 대대 전체가 점령의 위기였다. E중대 우측의 한국군 2개 소대가 진지를 잃었다. 1일, 03.00시 대대 CP의 돌출부에 총격이 날아들고 적군은 후위를 포위했으며 06.00시까지 육박전이 벌어졌다. 대대 CP는 함안면 근처로 이동했다. 탱크가 부상병들을 후송하고 2대대의 남은 병력은 겨우 40명이었다. 1대대가 07.30시 진지를 되찾기 위하여 출동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며 두 대대는 한순간에 와해되고 함안면 동쪽 2마일의 한 고지로 후퇴했다. 24연대 CP도 1144.0-1363.3 지역으로 이동했다. 오늘 하루의 항공기 지원은 24연대 내의 적군의 재구성 작업을 저지했다.
24연대 3대대는 작은 규모의 적 공격을 받았을 뿐 전투산 고지의 진지를 지키고 있었으며, 그러나 보급 루트가 차단되어 있었다.
27연대 1대대는 함안면 근처로 달려가고, 24연대 1대대와 연합하여 24연대 2대대의 잃은 진지를 되찾기 위하여 항공기와 포격 지원하에 16.00시 공격 개시 하였으며 18.25시 함안 서쪽 500야드 거리의 능선을 되찾았다. 24연 대의 두 대대는 27연대 1대대의 후위와 측면을 방어하기 위하여 재편성한 후 진지 뒤에 있는 27연대 1대대를 따라갔다. 27연대 1대대는 24연대 2대대 일부 병력과 함께 목표지점을 잠시 장악했으나 적의 진지는 강력했으며 역공은 진지를 뚫지 못했다.
35연대 1대대는 크게 공격 받고 일부 진지를 잃었다. 그 후 진지를 되찾았으며 적은 엄청난 사상자가 났다. 이어 많은 적군이 군북면 중암리-마산 간 도로 북쪽의 진지를 공격했다. 이때 한 중대는 좌측면을 포위하기 위하여 남쪽으로 진로를 돌렸다. 1대대 C중대는 탄약이 고갈된 B중대를 지원했으며 항공기, 포격, 박격포, 소화기로 물리쳤다. 2대대는 연대 규모의 적에게 공격받았다. 1130-1572 지역의 한국군은 침투당했으며, C중대는 완전하게 무너지고 부상자로 넘쳐났다. 적은 발 빠르게 지원받지 못한 빈자리 지대를 공격하고 점령했다. 침투한 작은 무리의 적들이 이 지역의 도로를 차단했다. 2대대 예비 대가 오후의 G중대의 또 다른 공격을 뿌리치기 위하여 지원했다. 29연대 1대대는 한국군 진지를 되찾기 위하여 남쪽에서 적군 첨병부대를 공격했다. 그 러나 얻은 것이 없었다. 27연대 2대대는 침투한 적을 타격하기 위하여 칠원 근처로 이동했다. 이때 35연대 자리의 C중대를 향하고 있는 적군과 조우했다.
미군은 현재의 방어진지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적군을 차단하기 위한 작전을 이어갔다. 24연대 존의 잃어버린 자리를 되찾고, 35연대 존의 적군 첨병을 격파하고, 남강변 남쪽의 고립된 적을 걸레질했다.
포부대가 총동원하여 전방부대를 지원했으며, 가능한 모든 장비를 운용하여 적의 강력한 공격에 맞섰다. 제5전술공군은 19회 임무출격에 총 67기가 참가했으며, 3대의 탱크와 20대의 차륜을 파괴하고, 사상자는 확인할 수 없었다.
사단경비행기는 사단작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38회 임무비행하고, 15회의 정보 수집과 정찰을 했다.
24연대와 35연대의 주 보급로를 방어하는 병력들은 적군에게 무너지고, 35 연대 B와 C중대에 공수 보급했다.
탄약 지급 수
M-1 소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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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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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구경 경기관 총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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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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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빈 소총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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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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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mm 박격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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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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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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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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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 의료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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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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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공수 형태의 재보급은 매우 유용하다. 위급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는 필요하지도 공수하지도 않는다. 35연대 몇 개 중대의 S-3보급은 진지를 지키게 했으며 적군으로 하여금 물러서게 하는 힘이 되었다. 의약품 공수보급은 후송 불가능한 전상자의 생명을 구하며, 의료 기구도 포함되어 있다. 보급은 수량적으로 현재는 충분하다. 필요하면 공중보급을 계속 받을 수 있다.
병참 트럭 대부분은 연대 보급용 탄약과 보급품들이었다.
정관 제47호 문서가 도착했다 : 사병 전역, 보충병, 병역 근무 연장 대상자 들을 통지해 왔다.
해군 함정은 함포 7발을 발사, 4발은 차단포격.
159야전포병대대는 32발 발사, 20발은 적군 집결지에 포격.
제11해병포병대 1포대는 32발 발사, 적군 집결지 16발 포격, 결과 불확실. 다른 야전포병 포격, 결과 불확실.
사단과 통신하는 24연대 초고주파 팀이 중화기와 박격포 공격을 받았으며, 대원 절반은 기관총에 매달리고 다른 절반은 안테나를 손보고 통신이 가능해졌다.
▲미25사단전투일지(1950년 9월 2일)
날씨 : 10시까지 안개, 따뜻함, 오후에 갬(사단 군사기록관 소령 잭 펜케이크)
포로 신문팀IPW은 적군이 포로로 된 장소와 시설 등을 알아낸 후 보고했다.
적군은 남쪽으로부터 세 방향으로 5연대를 공격해왔으나 성공적으로 물리쳤다. 적군 83기계화연대가 5연대를 공격했으며, 1143-1349 지역과 1143-1352 지역은 대대급 또는 그 이상의 적군에게 공격받고 매우 어려웠다.
27연대 1대대는 중간 섹트의 적군을 강력하게 공격했으며 적은 후퇴하는 듯했으나 잃은 진지를 되찾기 위하여 더욱 강력하게 공격해왔다. 1대대는 침투되고 관통한 적군을 청소하지 못했으며, 적들은 아직도 함안면의 도로를 장악한 채 오가고, 성가신 정찰대가 후위를 폭넓게 누비고 있다.
35연대에 침투한 적군은 한 지역을 차지했다. 그러나 곧 밀어냈다. 고립된 적군이었으며 전위지역에서 소탕되었다. 적군 7사단 2연대는 35연대 C중대를 완전 포위했으나 35연대와 27연대가 역공하여 물리쳤다. C중대는 진지 내에 지원 사격을 요청한 후 적군은 물러가고, 35연대 E중대는 1개 대대 규모의 적군을 물리쳤으며 적들은 장비들을 버리고 달아났다.
적군병력
6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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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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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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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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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기계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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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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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기갑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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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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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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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은 진동, 함안 전투를 위한 병력이 충분하다. 개개인이 무기를 소지하지 못했으며 유니폼이 일정하지 않다.
적들은 막사를 보존하고 포진지 구축을 위하여 재정비했다. 65공병전투대대를 실전에서 제외시켰으며 요란사격하는 후방의 고립된 적군과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함이다.
27연대 3대대는 마산 중리 근방의 24연대 CP, 포대, 보급 시설을 공격한 적을 섬멸하도록 명령했다.
대대 정보 연락장교는 2명의 한국군 연락장교를 대동한 후 중리 근방의 부랑자들을 걸러내는 일을 시작했다. 부랑자들은 경찰과 군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군 주둔지 근방을 배회하고 있으며, 전투가 있기 전에 연대는 지정한 장소로 보내도록 했다.
각 부대에 ‘화력지원 협동센터FSCC’의 목적과 개요를 전달했다. 화력 지원의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하기 위하여 협조하는 것이다. FSCC는 야전포병 지휘센터, 전술항공 연락센터, 비행연락부서, 해군함포 지원부서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포병, 해군함포, 항공기의 작전개시 전에 발령될 수 있다.
모든 군은 상실된 진지를 되찾기 위하여 공격적 역공을 이어갈 것이며, 지역 안의 침투한 고립된 적을 말끔히 소탕하라.
1개대대의 적군이 2일, 08.00시 5연대 3대대를 공격했다. L중대의 한 소대가 반자이 특공대에게 패하고 2대대 진지도 공격받았다. C중대의 지원 아래 F중대와 십자사격하여 적군을 물렀다. 항공기와 포격이 L중대 진지의 한 부분을 되찾기 위한 역공을 지원했다. 2일, 14.05시 A중대는 2개 중대로 추산되는 적군 공격을 받았으나 적군은 많은 부상자를 낸 후 물러갔다. 어두워지자 적은 1대대 섹트를 공격해왔다. 밤이 깊어가고 A중대 섹트로 번져갔다.
24연대 섹트의 3대대는 조용했다. 적군은 이른 아침 짙은 안개 속에서 함안면 서쪽의 27연대 1대대 진지를 공격했다.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27연대 1대대는 24연대 1대대와 2대대의 일부 병력과 함께 24연대 대대들의 잃은 진지를 되찾았다. 아군은 느리게 그러나 강력하게 반격했다. 1144.6-1364.5 지역의 24연대 CP는 박격포와 자동화기로 공격받고 동·서·남에서 공격받은 후 진지가 매우 위험했다. 많은 차량이 부서지고 CP의 병사들이 크게 다쳤다. 27연대 3대대는 북쪽 산꼭대기의 CP를 되찾으려 했으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적군은 아군의 능선을 장악하고 있으며, 항공타격이 적군들을 머물지 못하도록 지원했다. 대대는 5,000야드 나아갔을 때 어둠이 찾아오고 적은 더욱 완강하게 저항했다. 35연대의 주 전투장은 공격이 미미했으며 2대대 진지의 공격이 모두였다.
27연대 2대대는 고립된 적으로부터 크게 공격받은 후 35연대 G중대와 링크하기 위하여 이동했다. 보급이 위험할 정도로 좋지 않았으며 많은 전상자가 치료받지 못한 채 고통 받았다. 항공기와 포격 지원으로 격전을 치르면서 목적지에 가까스로 닿을 수 있었다. 적군 침투병의 숫자는 알 수 없었다. 64야전포병대대 A포대 진지에 박격포 탄이 날아오고, 침투병이 진지로 다가왔다.
상황이 위급했다. 다른 포격수들의 지원과 증강으로 가까스로 적을 몰아냈다. K중대의 왼쪽 소대는 한낮에 진지를 공격받았으며 역공하여 진지를 되찾으며 많은 양의 장비들을 압류했다. 29연대 1대대는 북쪽으로 공격하여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잃어버린 진지와 차단된 주 보급로를 확보했다. 적들의 저항은 강력했다.
모든 연대의 전황을 분석한 결과 진지는 아직 확보되지 못했다. 아직도 전위 진지와 주 보급로 확보에 전투가 격렬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적군의 저항에 그런대로 대처하고 있다. 잃어버린 진지를 되찾기 위한 쓰라린 전투를 이어갔다.
11개의 포부대가 역공 받는 진지의 방어와 부대를 위하여 지원했으나 전방의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135기의 비행기 출격, 2,000~3,000명의 적을 공격했으며, 탱크 8대, 포 10문, 차륜 10대, 3곳의 탄약 저장소 파괴.사단경비행기는 22회 임무를 완수했고, 6회는 전투 정보와 정찰 비행했음.
항공보급을 했다. 35연대 G중대는 의약품, M-1소총 실탄을 보급 받았다.
부대의 재보급은 적군의 주 보급로의 위협사격 속에 짧은 시간 이루어졌다. 모든 부대는 후위지역의 가능한 적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의 적합성과 후위지역의 근무병과 보급 시설을 점검했다. 추가적으로 28명의 한국 해병대를 창원 소재 외과이동병원 경비에 배치했다. 앞서 50명의 해병대가 경비를 하고 있었다. 725병기중대는 또 다른 안전이 필요했으며, 55탄약중대는 추가적인 안전을 위하여 탄약보급소ASP를 제6지구로 이동했다.
보급부서는 35연대의 식료품과 탄약을 9월 2일, 23.30시 재보급했으며 몇 개 부대는 제외되었다.
군수 지원 병력 수
사단 현 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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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6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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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속 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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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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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한국 전투경찰 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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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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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간인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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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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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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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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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7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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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군사령부의 실천해주기를 바라는 전문이 도착했다. “아래 사항의 실천을 요구한다. 장교는 개인 식기 등을 사병에게 시키지 말고 통조림, 육고기류, 포크, 나이프, 스푼 등을 가지고 오라 가라 등을 시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