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의 전투 하이라이트는 적의 점상 저항이었다. 적들은 오늘 공격 첫날 모든 진지를 지키기 위하여 확고한 결심을 한 듯 보였다. 그러나 사단 우측면의 35연대는 8,000야드 진격했으며, 중앙 지점의 24연대도 별 저항 없이 우측면의 27연대의 먼 좌측면까지 진격하고, 오른쪽 측면의 27연대도 저항은 없었다. 의외였다. 단지 연대 맨 왼쪽 측면의 2대대는 굴을 파고 구축한 적군을 만나 남서쪽의 이동을 방해받았다. 적군의 1,500~2,000명 수준의 한 연대는 미군의 각 연대의 전위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충분하게 무장되지 않았다.
킨 25보병사단장은 모든 병력들은 전력을 다해 적이 완전하게 균형을 잃을 때까지 밀어붙이라고 명령했다.
27연대 1대대와 2대대는 강력한 전투 정찰을 이어갔다. 1대대 선발대는 정오에 얼마 전에 고립된 적을 소탕했던 고지로 향하여 1,000야드 진격했다. 다른 두 대대는 9월 21일, 12.30시 작은 저항을 만났으며 진격 행로는 험한 산악 지대이고 통과하기가 매우 어렵고 느린 행군이었다. 적은 전방에서 호를 파고 방어했으며 비행기가 지원했다. 모든 대대는 내일 아침의 공격을 위하여 정지하고 3,000야드 전방에 청음 포스트를 세웠다.
24연대 2대대는 06.00시 공격하기 시작하고 아침에 소화기와 저격수 공격을 받았다. 이곳 바로 오른쪽에서 35연대와 제휴했다. 1대대는 둔덕을 향하여 공격하고, 3대대는 강력한 정찰을 이어갔다. 정오에 적의 자동화기 사격을 받았으나 잃은 진지를 되찾았으며 산정에서 1개의 수류탄으로 14명의 적을 사살했다. 정찰부대는 좌측면에서 27연대 3대대와 접촉했다. 오후는 산발적 저항이 모두였으며 둔덕 도로를 확보하고 18.30시 마을은 안정을 되찾았다. 3대대는 계속 진격하고, 2대대는 전위에서 제법 강력한 자동화기와 경화기 공격을 받은 것이 모두였다. 모든 대대는 밤을 빈틈없이 준비한 후 내일의 공격을 위하여 휴식했다.
선인장 연대 35연대는 반복적인 소공격을 받았다. 1대대는 정오에 최초의 목표 지점을 확보하고, 2대대는 남서쪽을 공격했다. 아침에 거포 6발 공격을 받았으나 저항은 미미했다. 1대대는 험한 지역에서 능숙하게 싸우고 많은 것을 얻었다. 2대대는 정천리 동쪽 2마일 거리의 1125.1-1366.6 지점의 도로 교차점의 목표 지점을 확보했다. 3대대는 확보된 지역에 머물고, 1대대는 밤새워 공격을 이어갔다.
적은 달빛 아래 병력과 장비를 이동했다. 밤에 더 익숙하고 즐거운 듯했다. 적은 9월 22일, 날이 밝기 전에 24연대 1대대를 공격했다. 대대 CP는 요란사격으로 몇 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9시까지 전투가 이어졌으며, 14.00시 공격을 재개하기 전에 남은 성난 적군들을 쓸어 버렸다. 선두는 둔덕 남쪽 2마일 지점의 도로를 따라 나아갔다. 2대대는 11.45시 목표지점에 이르고 18.00시 적의 미미한 반격을 받았으나 대천리 동쪽 1130-1351 근방 고지의 두 번째 목표지점을 향하여 진격을 계속했다. 3대대는 옥동의 연대 CP 근방에 집결하고 1대대를 뒤따르고자 준비 했다.
오늘 적군은 작전이 완만한 듯했다. 전략이었다. 27연대는 9월22일, 05.45시 공격했으며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1대대는 고지의 요새의 적을 향하여 공격하고 진전면 곡안리 남서쪽 1마일 지점 1139.0-1344.8 으로 뻗으면서 섬멸했다. 중무장한 2대대는 진전 율티리 남방 1마일(1143.3-1343.7)지점 근방의 목적지와 고지대를 점령하기 위하여 진격 중에 박격포, 포격, 기관총, 소화기 공격을 받았다. 3대대는 이 지역의 적을 청소한 후 진전면 봉암리 근방의 1136.8-1342.1 지역의 고지대를 향하여 출발했다. I와 R의 소대는 남서쪽 산자락의 적을 소탕했다. 밤 동안 모든 지역을 장악했으며 다음날 새벽 공격을 위하여 휴식했다.
35연대는 야간 이동을 계속했다. 도로는 파이고 부서진 다리와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다. 공병은 후퇴하는 적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길을 정리했다. 연대는 진주 동쪽 고지의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이 산 벨트는 중요한 도로 분기점과 철도 분기점이 있으며 적군은 방어해야 할 결정적인 보루였다. 선두부대는 대대 병력으로 추산되는 적군이 구축해 놓은 철통같은 진지가 가로놓여 있었으며 1,000발의 포격과 박격포가 연대 진지로 날아왔다. 선두부대는 적군과 아주 근접했다. 선두차가 진행하는 바로 전방의 도로와 다리가 한순간에 폭파되면서 화약과 먼지층이 도로를 뒤덮었다.
전투정찰대는 9월 23일, 06.00시 27연대의 공격주력부대를 뒤따라갔다. 모든 대대들은 공격을 이어가고 1대대는 백천리 남쪽으로 이동했을 때 광범위한 지뢰지대를 만났다. 2대대는 마을 남서쪽으로 전진하고 두 대대는 그 자리에 머물렀다.
27연대는 연대의 남쪽과 서쪽을 공격하기 위하여 공격 선두부대를 구성했다. 진격은 시작되고 연대는 1개 대대를 사단 우측면인 남강 전선의 OP로 보냈다. 3대대는 18.30시 사가로 접근했다. OP를 즉각 설치하고 9월 24일, 이른 새벽에 남강의 북쪽을 쓸어버리기 위하여 준비했다.
톨맨전략부대가 구성되었다. 전략적 돌파를 완벽하게 꾀하고, 적의 균형을 완전하게 파괴하며 진지방어전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전략무장군이며 편성을 완료했다. 25수색중대, 79탱크대대 A중대, 위생병, 공병과 전술항공지원 부대로 구성했으며 일차로 고성군 배둔을 경유한 후 빠른 시간에 고성과 사천을 점령하기 위함이다. 톨맨특수임무군은 18.10시 27연대를 관통하고 시간당 20마일을 달렸다. 임무대는 20.15시 어떤 저항도 없는 가운데 고성에서 사천으로 향했으며 적의 조급한 후퇴 징후가 역력했다. 짐을 실은 트럭과 전투 장비들을 내버렸다. 무거운 포차가 다리의 부실로 사천 전방 8마일 거리의 오산리에 멈추었다.
한편, 24연대의 모든 대대는 전진을 이어갔다. 1대대는 다천리의 길을 따라 남쪽으로 진격했으며 가벼운 공격이 전부였다. 적군은 지뢰를 매설하고 다리를 파괴하여 차륜 이동을 방해했다.
적군 저격병이 신산리 근방에서 35연대 차륜을 공격했으나 아무 일 없었다. 낮 시간에 1대대, 3대대가 진행하는 동안 계속 저항받았으며 아침때는 박격포와 자동무기 사격을 받았다. 1대대가 16.00시 정천리에 이르렀을 때 중대규모의 적이 짧은 시간 공격했으며, 강력한 포격이 연대에 날아왔다. 3대대는 도로가 파이고 다리가 부실하여 진격이 지연되고, 2대대는 정천리 북쪽 근방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전진했다.
25사단 작전 지휘부는 8군의 지시에 의거, 9월 23일, 14.00시 8군사령부 산하 제11군단 예하로 흡수되었다. 사단의 임무와 책임은 제11군단장에게로 넘어갔다.
톨맨임무대는 오산리의 다리가 부서져 진군이 지연되었으나 9월 24일 이른 새벽 고성-사천간의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밀어 붙혔다. 15명을 포로 했으며, 12.15시 사천에 이르고 산발적 저항을 받았다. 사천에서 북쪽으로 진격하면서 적군들이 도로를 차단하고 대열이 정지되었다. 즉시 전술 비행기가 지원되었으며 300명의 적이 죽거나 산속으로 흩어졌다. 선두는 16.00시 진주 남동쪽 3마일 지점의 도로 교차점에 이르고, 서쪽 야산으로부터 가벼운 사격을 받았다. 탱크와 항공기가 산속의 고립된 적을 포격했다. 돌출부 전역에서 밤새 적군과 크지 않은 전투가 이어졌다.
27연대 1대대는 정찰을 계속했다. 고성 배둔의 남서쪽을 차단했으며, 한 정찰대는 적군의 무기 저장소를 발견했다. 3대대는 추가적인 OP를 설치하고 사단 존의 북쪽 섹트 안쪽의 적의 남강 도하를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K중대는 25-30명의 적을 사살하고, 적은 20-30개의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다. 공병정찰대는 강을 건널 적당한 장소를 찾고 있었으며 저격수와 차단된 도로는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다. 2대대는 즉시 사단 주 보급로를 따라 남쪽과 북쪽을 정찰했다.
톨맨특수임무대는 24연대 존에서 공격을 이어가기 위하여 다시 자동차 기동화와 항공기 지원 공격을 재구성했다. 여기에 24연대 3대대, 82탱크대대 D중대, 77공병전투중대의 한 소대, 중박격포중대의 한 소대, I와 R소대, 159야전포병대대의 한 포대로 편성했으며, 24연대 1대대를 통과하여 남쪽과 서쪽으로 공격했으며, 남서쪽으로 진격하여 사천까지 21마일을 나아갔다. 적군 저항은 가벼웠으나 부서진 다리가 지연을 초래했다. 24연대 1대대와 2대대가 뒤따랐다.
35연대 3대대는 적의 가벼운 공격을 받고 9월24일, 03.00시 끝이 났다. 1대대와 3대대는 도로를 따라 진주 남동쪽 7.5마일 거리의 도로 교차점으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서 톨맨임무대와 상봉하고 적의 산발적인 공격이 있었다. 2대대는 24일, 21.15시 진주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고지에 이르기 위하여 남강으로 향하는 북쪽 도로를 공격했다.
11군단사령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적군은 스스로 공격함으로써 스스로가 더욱 자멸하게 된다.” “적은 방어 의지를 잃었다. 계속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깊게 침투하여 파괴하고, 임무를 완수하라.” 작전 지시는 병력 모두에게 전달되었으며 “진격을 계속하여 한반도 서쪽의 군산까지 밀어붙이라”고 명령했다.
또 다른 돌격 선두부대-돌빈특수임무대를 구성했다. 89탱크대대의 일부, 35연대 1대대, 공병 1개 소대로 구성하여 적군을 완전하게 괴멸함이 목적이다. 이 부대는 진주와 이령 근방의 남강 지역에 집합했으며 서북쪽으로 공격을 이어갔다. 27연대 역시 사단 존의 우측면인 강의 동쪽을 쓸어버리는 일을 계속했다.
톨맨특수임무대는 밤사이에 진주 북쪽의 적군 진지로부터 포격, 박격포, 소화기 공격을 받았다. 진주의 적들의 마지막 공격인가, 적군 300명과 교전했으며 50명을 포로 했다. 톨맨부대는 아침 시간에 진주에 위치한 다리에서 서북쪽으로 밀어 붙였다. 적은 진지를 잘 구축해 놓았으며 진주시를 탈환하기 위한 가열찬 전투가 24일, 15.30시까지 이어졌으며, 시내를 둘러싼 산을 공격한 후 탱크포격 엄호 하에 제1차로 남강을 건넜으며 시의 남쪽과 북서쪽을 걸러 냈다.
35연대는 톨맨임무대와 함께 진주 공격을 이어갔다. 적군은 남강 도하를 막으려는 격렬한 포격과 박격포격으로 진지는 회반죽이 되었다. 2대대는 25일, 02.00시 진주 북쪽편의 남강을 도하했다. 한 중대는 진주 서북쪽의 고지대를 확보하고, 두 번째 중대는 강을 건너 서쪽을 최초로 확보했으며, 세 번째 중대는 톨맨부대와 진주 시내를 공격하고 확보하도록 했다. 적은 강둑을 따라 완강하게 저항했으며 수류탄, 대검, 소화기로 육박전을 벌리면서 대항했다.
3대대는 진주행 도로 교차점을 가로질러 갔으며 1109.4-1355.9 지점 근방의 진주가 내려다보이는 산을 확보했다. 공병은 파괴된 다리의 동쪽 강여울 지점에 200야드 샌드백 다리를 만들었다. 1대대는 3대대 뒤를 따라 강을 건너고, 그곳에서 돌빈특수임부대와 상봉했다. 35연대 일부는 진주시를 확보했다. 많은 장비와 탄약을 노획했다.
돌빈임무대의 궤도 차륜이 진주강을 도하한 후 다른 차륜들을 끌어 올리는 작전이 16.30시부터 시작되었다. 20.30시 강 흐름의 먼 한쪽에 마지막 팀이 도강했으며 최후의 일격을 가할 통합병력들은 진주 북쪽 마루에서 야영했다.
24연대 3대대는 사천 비행장 확보를 도모하기 위하여 사천 남서쪽을 걸려낸 후 진지를 구축했다. 2대대는 진주 도로 교차점 근방의 진지에서 주 보급로를 통제하기 위하여 진지를 구축하고, 문산 대천리를 확보한 후 사천동쪽으로 이동하여 진지를 구축했다.
27연대 3대대 선발대는 25일, 06.00시 남강로 청소를 위하여 출발했다. 강북 서쪽의 얼마 안 되는 적과 자주포 공격을 쓸어버리기 위해서였다. 강 남동쪽의 고립된 적의 저항은 강력했으나 별것 아니었다. 샌드백 다리를 건너는 지역을 통제하는 수색부대가 공격받았으며 27연대 1대대와 2대대는 26일, 04.00시 이령 지역의 강을 건너기 위하여 강변을 따라 다른 대대 뒤편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