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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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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금강산을 노래한 노래, 혜성가(彗星歌)

기사입력 2022-03-3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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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에 저녁노을이 잠잠히 내리고 있어요.

암자 이곳저곳에서 저녁 예불을 마치는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어요.

- - - ”

이때가 되면 황룡사의 융천 스님이 저녁 예불을 마치고 산 능선을 오르면서 시상을 가다듬는 시간이어요. 저녁 예불 마치는 종소리를 들으면 융천 스님은 그리움 같은 것이 노을처럼 자신의 마음속을 물들이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그에게는 불경을 읽는 것보다 시를 짓고 외우는 것이 훨씬 더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같았어요.

융천 스님은 노을이 물든 서쪽 산을 바라보면서 손에 든 향가집을 펴서 마음에 드는 향가를 찾아 노래처럼 읽고 있었어요.

예전 동해 물가 건달바(신기루) 논성을 바라보고....”

융천 스님은 승려로 불경을 외우는 것보다 자신의 갑갑한 마음을 한 줄의 시로 엮어내는 것이 새로운 마음의 생기를 찾는 것 같았어요.

시인, 문장가 그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불경에서 얻은 평화보다 또 다른 어떤 영역의 정서가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것은 웬일일까?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은 저 머-언 하늘나라로 날아오르는 것 같아.”

노을 진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향가를 읊조리는 융천 스님의 머릿속에는 시상이 샘물처럼 퐁퐁 솟아올랐어요.

융천 스님이 저녁노을이 서산마루를 붉게 물들이면 습관처럼 뒷산을 오르다 그 노을이 울음처럼 사그라지고 나면 산을 내려오는 것이 매일 습관처럼 되었어요. 오늘도 그는 향가집을 들고 산마루를 오르고 있어요.

스님이 밋밋한 산을 오르고 있는데 앞 쪽 멀리 고갯마루에서 젊은 청년 세 사람이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있었어요.

스님이 멀찍이서 그들의 동태를 살폈어요. 그들은 무엇인가에 골몰해서 목소리를 높여 다투느라 융천 스님이 그네들 가까이 가도 기척을 느끼지 못하였어요.

그 세 청년은 저희들 끼리 무언가 깊은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주면에 사람이 가도 전혀 몰랐어요. 그 청년들은 손짓 발짓을 하며 자기들의 의견을 주장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스님이 그 청년들에게 큰소리로 말을 걸었어요.

그네들은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이오? 어디로 가는 길인가요?”

비로소 청년들이 토론을 멈추고 스님의 말을 받았어요.

저희들은 화랑입니다. 원대한 꿈을 품기 위해 금강산으로 갈려다가 불길한 일에 잡혀 서로 의논을 하고 있습니다.”

? 화랑? 이 나라의 든든한 기둥들이군요. 더구나 금강산으로 간다니 무척 축복 받은 사람들이군요?”

융천 스님의 입에서 축복이란 말이 나오자, 화랑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벌컥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했어요.

무슨 축복인가요? 모든 것이 우리들을 막고 있어요. ”

어허, 젊은이들 꽤 성미가 급하시군. 그래서 그 일에 열중하느라 내가 가까이 가도 몰랐군. 내가 그 연유를 들어도 되겠소? ”

화랑들은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스님이 고맙기도 해서 물었어요.

스님,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시는가요? ”

어허, 그렇군. 내 소개가 늦었군. 나는 요- 아래 황룡사에 있는 승려로 융천이라고 하오.”

스님의 입에서 융천이라는 말이 나오자, 세 화랑이 펄쩍 뛰며 바른 자세로 크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어요.

융천 스님이라면 시를 짓고 문장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신 분이 아니신가요? 우리 화랑들도 스님의 시를 읽고 모두 존경하지요.”

고맙군요. 나의 시 세계를 알아주어서요.”

스님, 오늘 뵈온 것이 영광입니다. 저희들에게 많은 지도를 해주십시오.”

, 지도랄 것이 있나요? 조금 전에 그대들이 다투며 의논 하던 일을 알아도 될까요?”

그 중에서 나이가 많은 화랑이 나와 분한 듯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어요. 그 화랑은 숨을 식식거리며 분이 풀리지 않다는 듯이 말을 했어요.

스님, 저희들이 금강산 산행을 가려는데 두 가지가 저희들을 막고 있습니다.”

스님은 그의 말을 아주 진지하게 들었어요.

두 가지라? 무엇인가요?”

스님, 지금 저 하늘의 이상한 별 하나를 보십시오. 살별이라고 하지요. 저 별이 나타나면 불길한 일이 생길 징조이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는 말이지요. 저희들이 금강산 산행을 중지하라는 말이지요?”

화랑이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스님 앞에 자기들의 불만을 토해내자, 스님이 싱긋이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화랑에게 넌지시 물었어요.

두 번째 걱정은 무엇이오?”

화랑들 중에 키가 큰 화랑이 나서며 분해 하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스님, 지금 저 하늘 멀리를 보십시오. 바닷가 봉화대에서 봉화를 올리는 불꽃이 계속 오르고 있지요. 왜구들이 노략질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님은 화랑들의 귀담아 듣고 나서 목청을 높여 껄껄 웃었어요. 마치 어린 아이들을 다루듯이 화랑들을 다독이며 말했어요.

그대들이 두 가지 일로 여태까지 논쟁을 한 것이군. 그 중에서 왜구가 걱정 된다는 것은 화랑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충분히 걱정을 해야 할 일이지요.”

화랑들은 스님이 자기들의 의견에 걱정을 함께 해주는 것이 감사했어요. 더구나 시인 스님이 자상하게 자기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준다는 것이 무척 고마웠어요.

스님과 화랑들이 산 능선에서 도란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자, 서녘의 노을빛이 붉게 타며 그들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 따뜻하게 보였어요.

스님은 세 화랑들을 자기 앞으로 가까이 불렀어요.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부르는 것처럼 자상한 손길이었어요.

그대들이 걱정하는 것 중에서 왜구들의 노략질로 저렇게 봉화가 오르고 있는 것은 정녕 걱정할 일이지요.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저 일은 자주 있는 일이지요. 저 정도의 노략질은 우리 군사들의 힘으로 충분히 격퇴 시킬 수 있는 일이지요.”

화랑들은 스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듣고 스님의 다음 말을 들었어요.

그대들이 말하는 살별이라는 것과 불길한 일은 한 마디로 허무맹랑한 일이오. 저 것은 작은 별이라고 보면 되오. 나는 이 나이까지 저 별을 종종 보아왔지만 살별이 그 불길하다는 그 말은 우리생활의 길흉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오. 저녁 하늘에 저렇게 붉게 노을이 끼이는 자연 현상과 꼭 같은 것이오. 내가 이 나이 되도록 관찰한 것이오.

---. 살별이 불길한 징조라는 것은 누군가 거짓으로 지어낸 말이오. 그냥 떠도는 별, 혜성이라고 보면 되오.”

화랑들이 처음에는 스님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 했지만 스님의 말이 너무도 조리 있고 진지해서 믿고 싶었어요. 더구나 융천 스님은 서라벌에서 유명한 승려 시인이 아닌가!

그가 일생 동안 관찰한 천체의 비밀을 보는 것 같았어요.

융천 스님은 화랑들이 너무 천진스럽고 사랑스런 아들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에게 참다운 철학, 향가의 아름다움으로 천체의 비밀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대들이여, 내가 그대들의 마음을 담은 시를 노래처럼 불러보겠네. 들어주시려나?”

세 화랑들은 너무도 고마웠어요. 서라벌의 유명한 스님 시인이 자신들을 위한 시를 노래로 들려준다고 하니 얼마나 감동적인지 춤이라도 추고 싶었어요.

융천 스님은 시를 노래로 불러 살벌에 대한 화랑들의 미신적 생각을 그들의 머리에서 깨끗이 씻어주고 싶었어요.

나라의 기둥 화랑들에게 맑고 건전한 철학을 심어드리겠네요.”

유천 스님은 목을 가다듬고 별이 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청아한 목소리로 시의 가사를 노래로 불렀어요.

 

예전 동해물가 건달바의 논성을랑 바라보고

왜군도 왔다고 붕화를 든 변방이 있었다

삼화의 산구경 오심을 듣고 달도 부지런히 등불을 켜는데...

하략 (양주동 역)

 

향가로 된 이 시가는 우리말로 옮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향가의 내용은 결국 살벌에 대한 미신적 생각을 버리고 건전한 생각을 가지라는 뜻이지요.

 

융천 스님이 부르는 시 노래를 듣고 화랑들은 여태까지 자기들의 생각을 훨훨 털어버리기라도 하듯이 가벼운 마음이 되었어요.

그들 중에 의심이 화랑 한 사람이 나서며 융천 스님에게 어려운 질문을 드렸어요.

스님께서는 진정으로 저 별이 아무런 불긴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달이 떠서 달 둘레에 하얀 테가 둘러진 것처럼 보이면 며칠 뒤에 비가 온다는 것도 자연 현상이지요. 그때 하늘이 구름이 많다는 것이지요.”

화랑들은 스님의 해박한 천체 지식에 고개를 숙이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어요. 융천 스님을 그들 앞에 인생의 큰 스승처럼 생각하며 스님의 말을 들었어요.

자네들이 별에서 이상한 빛을 뿌린다는 것도 모두가 자연적인 현상이지. 그게 인간에게 길흉화복을 주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겠나?”

이 말을 마친 융천 스님은 인생의 나이 많은 선배로서 자식을 훈계하는 목소리로 화랑들에게 아주 준엄하게 말했어요.

화랑이란 이 나라의 기둥이라네. 근거도 없는 별빛 하나에 동요되어 갈팡질팡하여 행동의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이 나라의 앞날에 걱정이 되오.”

융천 스님의 말이 자기 화랑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것 같아 정신을 바싹 차렸어요. 화랑들은 하늘에 이상한 빛을 내고 있는 살별을 올라다보았어요.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융천 스님에게 자신들의 경거망동한 태도를 빌었어요.

스님, 용서하십시오. 오늘 저녁 스님을 뵈옵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은 살별에 대한 허무맹랑한 미신 때문에 인생에 큰 것을 잃을 번했습니다. 더구나 우리들의 원대한 꿈을 피울 금강산 산행도 놓칠 뻔했습니다.”

융천 스님은 그런 화랑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어깨를 다독여 주며 부드럽게 말을 했어요.

자기 잘못을 고집하면 그것은 죄가 되지만 오늘처럼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바른 길로 간다는 것은 앞으로 큰 사람이 될 것이라오. ”

융천 스님이 화랑들의 잘못을 다독이는 말을 하자 화랑들은 감동이 되어 고개를 숙여 흉천 스님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어요.

융천 스님은 화랑들의 손을 잡아 끌며 다정하게 말했어요.

오늘은 밤이 깊어 가니, 내가 거처하는 암자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금강산 산행을 떠나도록 하게나.”

화랑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융천 스님의 뒤를 따라 황룡사로 천천히 내려갔어요. 그들은 산 능선을 내려가면서 이상한 빛을 내는 살별을 보고 싱긋이 웃었어요. 하찮은 별빛 하나에 인생의 큰길을 놓칠 뻔한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준 융천 스님이 인생에서 큰 스승으로 모시는 것 같았어요. 화랑들은 황룡사에서 융천 스님과 하룻밤을 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가벼웠어요.

그 날 밤, 융천 스님과 화랑 세 사람은 황룡사 조용한 방에서 밤이 늦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대들의 원대함 꿈을 키워올 금강산 탐방은 정말 잘 결정했어요. 나도 금강산 산행을 몇 번 했지만 그곳을 갈 때마다 기분이 달라요.”

스님, 오늘 정말 저희들에게 큰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불러 주신 향가의 뜻을 오랫동안 저의들의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황룡사 조용한 방에서 그들이 나누는 토론은 밤이 깊어갈수록 도란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익어갔어요.

융천 스님은 금강산의 아름다움도 말해주었어요. 화랑도들은 그날 밤 융천 스님이 들려준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꿈속에 그리며 잠이 들었어요.

조현술 논설위원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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