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원(논설위원)
군북출신/전 장유초 교장
신정 지나고 설날 지나고 이젠 완전히 한 살 먹었다. 성질 급한 사람은 동지를 지나면 한 살 먹었다고 한다. 아무리 일찍부터 나이 계산에 들어가도 설날을 넘기지 않으면 완전하게 한 살 늘어난 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나이 문화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설날 명절을 쇠야 한 살 더 먹기 때문이다. 신정 쇠었다고 한 살 많게 나이를 말하면, 듣는 사람은 한 살 오른 나이인지 오르기 전의 나이인지 분명한 인식이 안 된다. 우리나라 나이는 신정과 설날을 놓고 적용 시점도 까다롭다.
세계에서 나이를 세는 방법이 가장 헷갈리는 나라가 한국이라 한다. 총 3가지 나이 셈법이 있다. 출생 때 1세가 되고 새해가 되면 동시에 한 살씩 늘어나는 ‘세는 나이’, 출생 때를 0세로 하고 1년이 지나 생일이 되면 한 살씩 더하는 ‘만 나이’, 출생 때를 0세로 하되 해가 바뀌면 한 살씩 더하는 ‘연 나이’가 있다. 이 중 세는 나이가 가장 많이 쓰인다. 한국인의 82%가 세는 나이를 쓴다는 통계가 있다. 이것이 한국식 나이다. 왜 한국식 나이가 되었나?
세는 나이는 과거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썼던 나이 셈법이다. 중국은 196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만 나이를 쓰는 것이 정착됐고, 일본은 1902년 관련 법령을 개정해 만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세는 나이를 쓰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그래서 한국식 나이다. 외국인들은 세는 나이를 코리안 에이지(Korean Age)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3년 3월 1일생이 있다. 2022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할 때, 세는 나이는 10세가 된다. 만 나이로 계산하면 8세, 연 나이로는 9세가 된다. 세는 나이와 만 나이는 2살 차이다. 생년월일이 같은 외국인과 한국인이 있을 때, 나이 계산을 해 보면 한국인이 최고 2살까지 나이가 많다. 동갑 나이에 한국 사람이 형님 소리 들을 일이다. 다른 모든 나라는 만 나이를 쓰는데 한국만이 무엇 때문에 나이가 많은 셈법인 세는 나이를 고집하는 것일까.
동몽선습(童蒙先習)에서는 ‘장유(長幼)는 선천적으로 질서 지어진 순서다’고 하여 나이에 따라 서열을 정했다. 명심보감에는 존경되는 세 가지, 삼달존(三達尊)이 있다. 조정에서는 벼슬,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덕, 마을에서는 나이를 말하고 있어 나이만 많으면 마을에서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 조선시대는 나이 70세 이상 연로한 문신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기로소(耆老所)가 있었다. 지팡이도 나이에 따라 사회적인 허용 범위가 달랐다. 나이 50세는 가정에서, 60세는 마을에서, 70세는 나라에서, 80세는 임금님 앞에서 지팡이를 짚어도 될 나이로 허락이 되었다. 모두가 나이가 들어야 사람대접을 받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문화도 한국식 나이에 한몫을 해 왔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했다. 삼강오륜에서는 장유유서가 있다. 윗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형님, 어르신, 선생님, 나리 등의 호칭으로 공손히 대해야 한다. 윗사람에게 물건을 두 손으로 준다. 인사도 아랫사람이 먼저 한다. 식사예절, 문안인사, 세배 등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갖추어야 할 예절은 끝이 없다. 나이 적은 사람은 윗사람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하니, 어찌 한 살이라도 나이를 더 먹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도 예의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는 자랑할 일이다.
필자도 젊은 시절에 하루빨리 어린 나이를 탈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냈다. 그 좋은 청춘이 항상 어린 나이로 보였다. 막상 나이가 들어보면 나이 든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섭섭한 일이 더 많다. 이젠 한 살이라도 적은 나이로 살고 싶다. 대선 공약에서도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는 후보가 나온다. 세계적인 추세에도 맞고, 만 나이를 쓰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