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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한국의 폼페이, 말이산 고분군』을 보고 나서

기사입력 2021-11-3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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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좌(함안 출신)

내 고향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삼기동 908번지는 능으로 둘러 싸인 마을이다.

어릴적 우리집 밭들이 다 능을 끼고 있어 일하다 지치면 능에 기대어 쉬셨던 할아버지가 문득 그립고, 능 주변에 돌이 많아 겨울비 오고 나면 퉁실퉁실 불어 있는 도롯이 많아 두손 호호 불어가며 주워 오면 요리 잘 하셨던 울 어머니.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무우 채랑 초무침 해 주시던 그 시절 그 맛도 그립다.

당시 내고향 함안 땅이 그렇게 비옥하고 넓은 땅인지도 천문학이 발달하여 고분군 돌에다 새긴 천문도가 있는지도 몰랐고, 함안 예곡리에 있는 고인돌 8호에 좀생 별이 새겨져 있는 지도 몰랐다.

아라가야에 기마 문화가 발달한 것도 우리의 아라가야 토기 몇 점을 보관하고 있는 일본박물관 관계자들 말에 의하면 일본 토기장이들이

이를 복원 할려다 실패한 불꽃 모양의 토기와 사슴 뿔잔의 그 예술적인 미적 감각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 가치가 얼마나 소중 한지도 모른채 67년을 살아 오던 어느날 1116일 화요일밤 10시에 방영한 ‘KBS 역사스페셜방송을 시청하고 가슴이 두근 거렸고, 함안 아라가야의 후손이라는 자긍심마저 들었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그도 그럴것이 우리 증조부(이시흠)님께서 말을 타고 달리시면서 활을 잘 쏘셔서 벼슬까지 하셨다는 말씀을 들은적이 있다.

어릴적에 얼핏 설핏 들은 이야기였기에 이해와 공감을 갖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조금은 이해 되는 기마 문화와 <말이산>이란 이름의 뜻이

<우두머리산>이라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죽어서도 별자리를 보는 영원한 지배자로 남고 싶어 했던 최고 수장의 무덤 그 수장의 마음을 다 이해 할 수 없지만 그 당시 문화를 상상 하면서 말이산 고분군에 다시 가보고 싶다.

아라가야의 기마 문화와 토기문화이 이어 고구려의 영향으로 만든 무게가 50kg 되는 말 갑옷을 만들어(현재 김해 박물관에 보관) 적진에서 말의 목과 가슴을 보호하며 싸웠을 당시 수 많은 말들의 그 갑옷이 스치는 소리에 적군들도 두려워 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 놀라운 지략과 지혜에 노년의 여자인 내가 전율을 느끼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철판 하나하나에 사포질을 하고 옻칠을 해서 200도 고온에서 30(복원 과정에서 밝힘)을 구워 열에 강하게 해서 불이 붙지 않도록 말에게 입혔다하니 그 수고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말의 목 가리개를 만들때에 철판 하나 하나에 구멍을 뚫어 사슴 가죽으로 연결하여 만들었고, 몸통가리개도 372개의 철판을 연결 해서 만든 그 섬세함에 또 한번 놀랐다.

그 갑옷을 복원시켜 함안 승마 공원에 있는 말들 중에 제주도 한라말이 맞을것 같아서 입혀 보니 딱 맞았다. 그 갑옷의 무게를 잘 견뎌 잘 걷고 잘 뛰는 것을 보니 당시의 지혜로운 손 재주와 치밀한 솜씨를 엿 볼 수 있었다.

아라가야의 기마문화로 인해 당시의 기마병이 적군을 제압 하기에 충분 했으리라 짐작 해 보면서 오늘 날 말이산 고분군을 발굴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역사를 엿 볼 수 있도록 탐방 보도한 관계자 분들의 노고에 참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시간을 내어 어린 손주 둘 데리고 할미가 태어난 곳의 역사를 설명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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