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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군 참전용사 회고록-30

임판문(1932년생) 지내시는곳 : 법수면 사정길

기사입력 2017-05-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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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판문

전쟁이 나던 해 나는 스무 살이었다. 김해 구포로 피난을 갔다. 나는 키가 큰 편이라 차출돼 붙잡혀 가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함께 뺨을 맞는 등 곤욕을 치렀다. 총만 쏠 줄 알면 전방으로 끌려가던 시대였다. 구포에서 총쏘는 연습을 일주일 간 하고 강원도 홍천을 거쳐 압록강까지 올라갔다.

1·4후퇴 중공군이 밀고 내려오는 바람에 경기도 시흥까지 밀려 났다. 미2사단 38연대 화랑대대로 편입되어 여러 전투에서 사투를 벌였다.

압록강에서 팔을 다쳐 병원에 입원했는데 한국병원에서는 팔을 잘라야 한다고 했고 미군 병원에서는 자르지 않고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미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바람에 팔을 자르지 않고 치료할 수 있었다. 정상적이지는 않지만 보기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어서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대구에서 제대했다.

중공군이 많은가? 미국의 실탄이 많은가? 할 정도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아 하루하루가 고달픈 날들이었다. 살아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들이 계속됐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던 어느 날 강원도 철원에서 포로로 잡혀 소나무 밑에 숨어 있는데 포탄이 터져 귀가 안 들리게 됐고 팔과 다리에는 온통 포탄 자국이 남아 있게 됐다.

23세 때 결혼하여 슬하에 3남 1녀를 두고 있다. 나라에서 주는 1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집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내가 죽은 뒤에 아내에게 절반이라도 그 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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