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형 중
(전 함성중학교 교장)
요즘 잘 아는 지인들로부터 전화나 어떤 장소에서 ‘식사 한 번 합시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인사 치레적인 빈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이었으면 한다.
식사는 단지 영양을 섭취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누구에게 또는 누가 나에게 ‘함께 식사 합시다’라고 할 때 ‘함께 영양이나 섭취 합시다’라는 말이 아닌 것처럼 가족이 식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식사는 하나가 되는 자리이다.`밥그릇 따로, 먹는 사람 따로’이지만 한자리에서 함께 먹으면 쉽게 하나가 된다.
인간은 식사를 같이 함으로써 상호간의 장벽을 헐고, 음식을 먹고 있는 순간만은 체면도 권위도 소리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약간의 음식 예절만 지키면, 음식을 씹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만인이 평등하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사’가운데 가장 즐겁고 사랑스런 일이다.
‘밥이 보약(補藥)이다. 그러니까 밥 때 놓치지 말아라. 하시던 옛. 어른들의 말씀을 많이 듣고 자랐다.
옛 어른들은 끼니를 거르지 않고 밥 한 공기만 잘 먹어도 그것이 곧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 여겼다.
그러나 밥을 거르면 건강을 잃을까 하는 걱정도, 이제 다 옛말이 됐다.
요즘같이 밥이 아니어도 먹을 것이 풍족한 시대에는 건강해지기 위해서 단식(斷食)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밥은 단순이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밥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기본이 되는 주식(主食)이고, 그것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몸과 더불어 마음까지 구성한다.
밥이 아니면 ‘밥 먹은 거 같지 않다’고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강한 힘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까지 ‘보배로운 약〔補藥(보약)〕이다.
요즘 특히 안타까운 것은 온 가족이 옛날처럼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즐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우선 가족 구성도 그렇고, 각자 시간이 다르니 한자리에 모여 오순도순 식사하는 풍경이 그리워지는 시대다.
한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밥은 나눠 먹어야지 혼자 먹는 식사는 마치 사료를 먹는 것과 같다.
가족을 식구(食口)라 하듯 식탁에서 아버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녀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들의 취미가 무엇이며,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서로 이해하는 통로가 사라진 것이다.
오늘 저녁, 아니 꼭 저녁이 아니라도 끼니 때를 선택해서‘함께 먹는 밥 한 끼의 힘’을 경험해 보길 바란다.
‘가정의 달’인 5월에는 미쳐 생각하지 못한 고마운 분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겠다.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부모님과 학업과 취업 때문에 고달픈 자녀들과, 묵묵히 응원을 보내는 선후배나 은사님과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나누며 감사와 위로를 건네 보자.
분명 더 없이 특별한 보약(補藥)이 될 것이다.
식사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 마음을 열고 왕래하는 사랑의 통로다. 나도 이 글을 맺으면서 좋은 사람들에게 밥 한 끼 하자고 연락해 봐야겠다. 식사 한 번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