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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1 15:45

  • 기획특집 > 함안단상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왔으나 봄 같지가 아니하다)

기사입력 2016-03-2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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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중

 

(전 함성중학교 교장)

어느덧 3월이다. 실질적인 한 해의 시작이다. 1월과 2월동안 워밍업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힘껏 달려볼 일이다.

활짝 열어젖힌 창문으로 어느새 봄 내음이 한 겨우내 어둡던 방안 구석구석까지 스며든다.

완연한 봄이다.

언제 이 땅에 그렇게 매서운 추위의 겨울이 있었는가 쉽게 눈부신 햇살이 온 세상에 쏟아지고 있다.

살아간다는 건 곧 나이 든다는 것이지만 자신이 나이 들어 간다는 사실을 늘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달릴때는 모른다. 하지만 늘 달리기만 할 수는 없다.

멈추고 싶을때도 있고, 멈추어야 할때도 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어느만큼 와 있나 돌아보고 앞으로 또 어떻게 갈길을 갈 것인가 내다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있듯이 봄이 왔으나 봄이 봄 같지가 않다.

나라 경제가 어렵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으며, 성인은 물론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우리 청소년들이 실업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4·13총선이 겹쳐 모두들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왠지 봄을 기다리는 마음도 해가 갈수록 덜하다. 은퇴한 남자들이 일없이 서성이다 보면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다’는 노랫말이 딱 내 처지란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 아내를 돌아보니 상냥했던 웃음은 간데없고 말끝마다 냉기가 흐른다. 밥상 차려주는 표정은 왜그리 퉁명한지, 현직 시절 지은 죄(罪)가 많으면 홀대를 당한다지만 내가 뭐 대단한 죄를 지었다고. 친구 보증 서주다 얼마 손해 본거, 무식하다고 몇 번 소리지른거, 잠시 한눈판 거…… 그게 다이다.

대한민국 사내라면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

나도 할 말은 있다. 몸 바쳐 가족 먹여 살렸건만 이제 와서 집에서는 찬 밥 신세가 된다니! 아내는 더 할 말이 많단다.

몸 바쳐 애들 다 키웠는데 늙어서 남편까지 돌봐야 하나. 이런 말을듣자니 늙은이의 주책이 늘어지더이다. 대부분 은퇴한 뒤 집에 틀어박혀 아내만 쳐다보며 세 끼 밥만 꼬박꼬박 받아먹는 남편을 ‘삼식(三食)’이라며 비아냥거린다. 일식, 삼식은 퇴직하며 돌아온 남편들이 집에서 몇 끼 먹느냐 이다. 젊어서 권위적이고 위압적이었던 남편에 대한 은근한 복수의 측면도 엿보인다.

나이가 드니 요새는 화도 잘 나지 않는다. 분노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불이며, 그러한 감정들은 바람일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불은 재로 스러지기 직전의 불일 것이며, 이제 남아 있는 바람은 잔잔한 미풍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 남은 생이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야겠다.

삼식(三食)이 세 끼 되지 않으려면 부엌부터 장악하고, 가족 먹여 살리느라 꾹꾹 눌러뒀던 꿈 보자기 펼치시라,

기차는 달리고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고.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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