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함성중학교 교장 강형중
나는 하루 꼭 한번 정해진 코스로 산책을 즐긴다.
처음에는 그냥 운동 삼아 걸었다. 살도 좀 빼고 건강도 좀 살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절감하고 있다.
길을 걸으며 나는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게 가장 큰 슬픔은 아마 걸을 수 없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나이가 들고 병들어 걸을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일까?
손에 잡힐 것만 같은 저 풍경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봐야만 한다면 그것은 서글픈 일임이 틀림없다.
길 위에서 나는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다.
걸으며 내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나무나 새나 풀벌레, 그리고 하늘과 별과 바람이 모두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
그것들은 마치 식구처럼 나의 일상이 되고, 나의 마음에 식구처럼 자리하고 있다. 걷는다는 것은 다만 다리로 하는 공간 이동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 자신을 성찰하고 됨됨이를 점검하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슴속이 더부룩한 정도로 끼어있던 어둡게 꿈틀거리던 갖가지 소름끼치는 격정들, 혹은 자포자기와 불길함, 과장과 두려움과 뒤틀림과 같이 삶을 짓누르고 있는 중력으로부터 한 발 한 발 멀어지는 징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나온 내 삶의 자취를 돌이켜보니 건성으로 살아온 것 같다.
주어진 남은 세월을 알차고 참되게 살고 싶다.
이웃에 필요한 존재로 채워져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철 따라 꽃은 피고 진다.
나무가 옷을 벗는 계절이 되면 길 양 옆에서 하늘을 뒤덮을 듯이 무성한 나무들이 작은 바람에 우수수 잎을 떨어트리고 있다.
흙에서 난 것들이 그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건 아무도 못말린다.
저 지는 잎들이 어찌 섭리만으로 저리도 황홀하고 표표하게 몸을 날릴 수 있겠는가?
걸으면서 풍경은 대상이 아니라 마음이 된다.
빠른 속도로 지나치면 풍경은 사라지는 대상이 되지만,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면 풍경은 마치 꽃송이처럼 가슴에 내려와 새롭게 피어나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다.
길가에 이름없이 자란 풀 한포기라도 나름대로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이제 걷는 것이 즐거움이고 걸으면 나는 맑아지고 경건해지기도 한다. 걸음은 삶의 오만을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내게 소원이 있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도 걷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