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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1 15:45

  • 기획특집 > 군민마당

우리 마을의 보물

기사입력 2015-05-1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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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 쪽으로 가다보면 함안휴게소 입구부근에 지금은 폐교가 된 아담한 학교가 보인다. 이 학교 뒤편으로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덕현, 덕촌으로 불리어 오다가 언제부턴가 덕재로 불리게 되었는데 지금도 이십여 호 중에서 크고 작은 재실이 4채 있다.

이 마을에는 보물로 여기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보물은 마을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청심정이라고 불리는 큰 우물이다.

이 우물은 깊이가 어른 키만큼 되고 넓이가 양팔을 벌려도 닿지 않을 정도이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도 넘치지 않으며 가뭄에도 줄지 않은 채 수백년 간 일정한 양이 변함없는 것이 꼭 우리 마을의 훈훈한 인심과도 같다. 옛날 냉장고가 없던 시절 한여름에는 막걸리 병을 이곳에 담가 두었다가 차게하여 마시기도 하고 아이들이 등목을 하는가 하면 겨울철에는 김이 날 정도로 따뜻하여 이곳에서 세수와 빨래를 하는 등 마을 주민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또 우물 옆에는 이백년이 넘은 노령의 회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인 냥 우두커니 서있다. 그 뿌리에서는 약물이 나와 이물을 먹고 사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건강하고 장수해왔다고 한다. 지금도 동동주나 동치미, 메주 등을 담글 때에는 항상 이 우물물을 사용하고 있다.

두 번째 보물은 백년도 넘은 장학계이다.

옛날 선견지명이 있던 함안 조씨, 진양 정씨, 남양 홍씨, 재령 이씨 문중의 네 어른이 모여 후손들에게 배움의 미덕을 가르치고자 장학계를 만들어 책을 구입 후학양성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그 당시 교재들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의 격변기를 거치며 모두 없어졌지만 장학계의 정관과 결산서가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리마을에서 지금도 매년 동짓날에는 ‘장학계 마감일’이라고 하여 결산회의를 가지고 선현들의 공덕을 기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 마을에서 꾸준히 공무원과 선생님이 이어져 배출되는 것은 선현들의 장학계 정신을 이어받아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글을 빌려 지난날 산자락에서 추석에는 그네 뛰고 설이면 자치기 하며 천진난만하게 뛰놀던 죽마고우 출향 벗들에게 안부와 함께 전하고 싶다. “개미같이 부지런하고 벌떼처럼 단결하는 우리 마을”을 옛 어른들께 부끄러움 없이 잘 지켜나갈 테니 그대들은 고향의 소중한 보물과 추억을 부디 잊지 마시기를.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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