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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하(화가/전 경남도립미술관 관장) |
화가
나는 이 직업의 비생산성으로 부터 기인된 오해와 그 服屬된 삶속의 존재에 대해 아직도, 아무런 부정의 여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 평생, 누리고 지켜야할 직업으로 선택한 길이 주변의 염려와 함께 우월적 자만의 자존감으로 허세 좋게 버텨왔으니 말이다.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낯 선 이미지나 우연히 획득한 모티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연유로 화면에 표출 되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그림을 그리며 여태껏 잘도 살아 왔다.
어쩌면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시각각으로 보고 듣고 부딪히는 상황에 대한 순응, 아니면 대처하면서 만나게 되는 삶의 경험들의 응축이 내 작업의 단초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대가 없는 화폭과 마주하며, 나는 그렇게 ‘함안’에 살고 있다.
아무 연고도 없이, 그저 지근거리에 고향을 두었다는 까닭으로 ‘산인면 신산리 산익마을’에 작업실을 두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공기를 호흡하며, 그 땅을 밟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舊師로부터 교외의 창고 같은 작업실에서 願없이 그림 그려 보았으면 하는 恨 담긴 푸념에 담보된 영향이 없었다면 무슨 염치로 이 호사의 사치를 피해 갈 수 있을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창고 같은 작업실을 마련하였고, 여태껏 3년여 동안을 ‘함안’에 살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내 이웃들은, 한 평생을 같이 살아 온 듯, 가슴 따스한 미소로 인사한다. 또, 매일 낯선 이처럼 환대한다. 나는 그렇게 더불어 살아 갈 채비를 하였고 조심스럽게 언젠가는 마쳐야 할 ‘우리’를 함께 준비하며 살고 있다.
참 조용하고 따뜻한 마을이다.
결국 나는 더불어 일원이 된 그들과 함께 복잡다단한 삶의 그 편린들을 다양한 형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낸 3년, 나는 참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많은 것들을 마주하며 ‘그래, 그 때 그렇게 살았었지’라는 숱한 생각들을 하곤 했다.
연로하신 할머니들을 통해 수년전 곁을 떠나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 먹먹해지기도 하고, 누님처럼 따뜻한 정 느끼게 한 이웃과의 영원한 이별의 안타까움도 있었고, 지난 밤 제사 후 마련한 이웃끼리의 조찬 또한 잊고 지냈던 덤의 행복이었다.
나는 몰랐다. 참 오랫동안 사람 냄새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짧지 않은 지난 날, 나름대로는 교육현장에서, 예술행정의 현장에서, 그리고, 지금껏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 문화, 역사, 정체성 등등을 앞세우며 진정 내가 소중히 여겼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 온 것이다. 깊은 고뇌는 물론 적은 관심조차 두지 않았든, 아니면 변화와 변혁에만 의탁하여 미래에로만 향한 내 욕구로 인한 그 판단의 오류가 이제 가슴 따뜻한 이웃들의 情들로 歸還하게 되는 듯하다.
한 개인이 세상을 인식하는 심적 표상은 우리 마음속을 이미 점령한 전제 조건과 일반적인 것들 일 것이다. 결국은 마주하여 경험하지 않은 인식은 자신의 변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이제 나를 변화 시킬 수가 있는 것은 내가 호흡하고, 마주하며, 느끼는 것, 이 곳 ‘함안에서의 일’ 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선택한 ‘함안’에서 그렇게 그림 그리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