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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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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연쇄

기사입력 2021-03-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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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래-문화대안학교 교장/본지 논설위원

 

  

세상에서 형태를 갖춘 것은 언젠가는 없어진다. 영원한 시간대에 오르면 모두가 이 되고 없던 곳에서 다시 생겨나는 것이 의 이론이다. 그리고 생명체가 수명을 다하면 어김없이 박테리아가 부패를 시작하여 우주의 원소로 분해해 버린다. 가축은 도축하여 사람이 주로 먹지만 사람이 먹지 않고 버린 것이나 방치한 것은 오소리나 까마귀가 나선다. 오소리는 동작이 민첩하지 못해 천적에 쫓기면 죽은 체하는데, 민첩하지 못한 너구리도 죽은 체하고 이는 죽은 것을 먹지 않는다는 천적의 특성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른 동작으로 사냥할 능력이 없는 오소리는 동물의 사체를 먹어 생존하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굴을 파고 살아가는 두더지, 너구리나 오소리 등은 야행성이지만 낮에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묻어둔 동물의 사체도 사람들이 보는 대낮에 파서 옮기는 오소리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 시각이 좋지 앉지만 후각이 매우 발달하여 땅에 묻어준 동물의 사체를 파서 먹기도 한다. 굴을 파기 위해서 습지보다는 산지를 선호하고 그 개체도 많아서 죽은 개를 사흘쯤 방치하면 뼈만 남기고 없어져 버리거나 제 몸무게가 10~16kg 정도이니 작은 사체는 통째로 물고 가 버린다. 동작이 느린 오소리로는 살아있는 동물을 공격하여 사냥할 엄두가 나지 않아 민첩한 개를 아주 싫어한다. 그러나 개가 죽고 나면 먹어 치워 자연을 청소한다. 모두가 살아있는 것만을 사냥하여 먹는다면 자연의 여기저기에 동물들의 사체가 뒹굴고 있을지 모른다. 살아있는 것을 사냥하여 먹는 맹수와 죽은 것만을 먹는 청소부 같은 동물이 역할을 나누어 공존하면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약속은 신의의 기반이 된다. 로마시대의 시민들은 약속을 한 번하려면 선사시대부터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카피돌리누스 언덕에서 데려온 돼지를 날카로운 바위에 힘껏 내리쳐 단번에 죽이면서 맹세를 했다. ‘주피터 신(하느님)이여, 만약 약속을 어기면 신께서 돼지를 죽인 것처럼, 로마를 내리쳐 멸망하게 하소서라고 했으니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나라의 멸망을 감수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한 것이다. 무인들이 칼로 팔에 상처를 내어 형제를 결의한다거나 그 피를 타서 함께 마셔 피를 나눈 형제의 결의를 하기도 했다. 부패의 고리도 굳은 약속으로부터 시작한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비밀을 유지하고 결과의 공유를 생각하며 유쾌한 부패의 밤을 함께 한다.

그런데 이런 견고한 비밀의 밤이 어떻게 탄로가 나는가? 누가 본 적도 없고 누구도 비밀을 발설한 적도 없는데도 말이다. 어느 한쪽이 비밀을 누설하면 자신도 피해를 보는 것은 당연하니까. 결국은 꼬리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개가 꼬리치듯 좋은 기분과 뇌물을 전달하는 것이 첫 단계이다. 그런데 쥐꼬리는 감출 수 있어도 청탁의 규모가 크거나 뇌물의 액수가 큰 소꼬리는 감출 수 없는 것이다. 뇌물을 제공한 쪽에서 자금이 빠져나간 공간이 커서 드러나거나, 청탁을 받은 쪽에서는 결과가 상식 밖으로 의외의 경우로 드러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동물은 꼬리를 가지고 있다. 지렁이도 꼬리를 가지고 있고,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원생동물은 하나의 세포로 된 원시적 동물로 기생충학에서는 원충에서도 꼬리가 있고, 정자와 박테리오파지에도 동물체의 꼬리와 비슷하여 머리와 반대부분에 있는 이것을 미부라고 한다. 환형동물이나 곤충은 항문이 몸의 끝에 있어 꼬리와 몸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는 것도 있다. 꼬리는 수중이나 공중에서 운동기관으로 역할을 하는데, 새의 꼬리는 비행할 때 균형을 위해, 소꼬리는 몸통의 쇠파리를 쫓을 수 있을 만큼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존재해야 할 것이 아부나 부패에 사용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인간세계에 부패가 시작되면 부패의 냄새를 말끔히 치울 오소리가 없는데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한 채 연결된 부패의 고리는 성공했다는 쾌재를 부르면서 연쇄를 계속한다. 비밀유지와 성공을 위해 부패의 연쇄는 질기지만 감추어지지 못한 꼬리에 굳은 약속은 부패하고 그 냄새는 치솟고 마는 것이다.

 

본지 박상래 논설위원께서 지난 314일 별세하셨습니다.

고 박상래 논설위원은 7년간 본지 칼럼을 연재하시면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나 마지막 칼럼을 연재하시고 독자들 곁을 떠났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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