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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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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年 重年

기사입력 2021-02-2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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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래

우리문화센터 함안지부장/본지 논설위원

합천문화대안학교 교장/국문학박사 수료

 

 

80평생으로 본다면 40대가 중년이고 우리의 희망인 100세 시대를 고려하면 50대가 중년이다. 법률적으로 60대가 되면 노인이고 65세가 되면 사회적 보장보험의 혜택을 받는 고령이다.

65

내가 쓴 시 길나서는 중년이다.

골든리트리버 같은 지적인 스타일의 여자가/엉덩이가 터지도록 달라붙은 옷을 입고 간다./반지를 여러 겹 낀 런던 스타일의 여자는/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스타벅스 컵을 든/ 자유로운 젊음이다.//

책을 낀 가식도 아름답고 맑은 여자들....../어느 틈에도 들지 못하는 세월을 살면서/44번 립스틱을 바른 세련된 여자들을 피해/장년의 남자는 시큼한 발효가 가득한/막걸리 집으로 기어든다.//

이 시에서 나는 맑고 당당한 청년의 삶에 끼어들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중년을 막걸리 집으로 기어든다. 라고 표현했다. 머플러를 갖추어 착용하고 허리 꼿꼿이 펴고 내가 젊음을 바쳐 사랑한 거리를 당당하게 즐기라는 것이다.

노인들이 잘 삐친다고 한다. 삐치는 이유는 상대가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리라는 확신과 믿음이 크지만 큰 만큼 실망도 클 때에 이 서운한 감정을 직접 진솔하게 표현하지 않고 감추려할 때 나타난다. 그럼 자신을 이해해 주리라는 확신을 갖는 이유는 상대와의 인간적 관계를 고려할 때 긍정적인 지지를 받으리라는 인간적인 기대가 클 때 일어난다. 그리고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표정으로만 드러내거나 다른 일에 투덜대기도 한다. 그러면 왜 노인이 하필 잘 삐치는 것일까? 그것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지인이나 가족이 자신을 잘 아는 만큼 이해해 주리라는 기대가 있는데 구태여 말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고는 그 서운한 생각이 갈수록 깊어지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차분한 표현의 방법을 생략한 것을 배려하고도 생각하면서 서운해 하는 모순을 갖는다.

그러나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삐치거나 설득력 없는 고집으로 가득하면 단순 고령자인 노인이 되는 것이다. 마치 청년이라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미래의 꿈을 상실한 상태라면 나이에 상관없이 여생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5살부터 시작된 고집이라고 하지만 진리도 바뀌는데 모르는 게 없고, 안 본 게 없다고 생각하는 오만이 주위를 멀게 한다. 새롭게 배우는 것과 바뀔 수 있는 기회의 도전을 포기하고 대중적인 장소에서도 욕설은 늘고,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존재를 과시하려 한다. 노년의 생활은 그냥 바라볼 뿐이라는 고백도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인생의 반환점을 정하지 못하고 지난 세월은 추억으로, 다가올 세월은 한탄으로 보내는 것이다.

시골버스를 타고 맨 뒤에 앉아보면 할머니들은 어김없이 두발이 단정하다. 반면에 할아버지들은 대개 다섯 명 중에 모자를 쓴 두 분, 머리 안감은 두 분, 머리 감은 한 분이다. 노년을 중후한 중년(重年)으로 보내기 위해서 시들어가는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 무디어진 후각, 떨어져가는 미각, 남은 것은 노동으로 인한 통각(痛覺)의 밤을 보내는 것이 서럽다. 그러나 미리 결론을 내리지 말고, 새로운 통계와 대화를 통해 독단적인 진리를 제거하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훈아의 테스형을 부르면서 문답법과 변증법적 논리로 무장한 重年으로 다시 길을 나서는 것이다.

 

세쯤은 평상시에는 노년이지만 교통사고라도 유발하게 되면 고령자가 된다. 건강하면 노년이고 판단력이나 감각기관의 둔화로 인한 결과가 나타나면 고령이 되는 것이다. 60대가 건강하게 혼자 살면 사장님으로 불리고, 병약하게 살아가면 독거노인이다. 아무리 中年이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이 老年으로 부른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重年이라는 탈출구가 하나 있음을 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여 감정이 메말라 있지 않아서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작은 일에도 적극적이면서 자신을 가꿀 줄 알아서 중후만 멋을 풍기는 노년이면 重年의 멋을 지녔다는 평판을 받은 것이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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