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난 2019년 11월 14일 건립된 좌상과 생가를 최근 한파를 무릅쓰고 투어를 했다.
넉넉잡아 둘러보는 시간이 2시간 안쪽이다. 먼저 고향 군북면 사무소 바로 옆에 있는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만우(晩愚) 조홍제(趙洪濟)의 좌상(坐像)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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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 조홍제 회장 좌상 |
만우의 좌상은 면사무소 옆에 작은 뜰처럼 가꾸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502㎡(152평)의 넓이의 작은 정원 가운데 자리한 만우(晩愚) 조홍제(趙洪濟)의 좌상(坐像)은 생전의 모습대로 먼 미래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앉아 있었다.
그가 앉은 자리의 위치가 지리적으로 군북면의 가장 중심의 자리라고 하니, 그는 영혼이 되어서도 고향 마을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이 겨울 햇살에서도 더욱 광채를 띄는 것도 그런 의미이리라.
좌상이 자리한 뒤쪽으로는 면사무소의 청사가 든든하게 버티고 좌상을 보호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품위 있는 한복(韓服)을 입은 자세로 지팡이를 잡고 안경을 쓴 그의 시선이 북서쪽으로 두고 있었다.
그의 기업 철학은 그가 앉은 바로 옆의 공적비에 밝혔듯이 기업이 이윤을 창출할 적에 선비 정신을 그 철학으로 삼았다. 그의 오른쪽 무릎 아래에는 두꺼운 책 5권을 동(銅)으로 제작하여 포개어 두었다.
만우가 평소에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은연주의 표시이리라.
그러나 고향 마을의 만우 좌상을 찾은 길손의 눈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것이 하나 마음속에 거품처럼 떠다녔다. 그것은 좌상이 위치한 자리가 좌상을 찾는 사람들에게 포근한 정서를 주는 곳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꽃이 피는 나무가 우거지고, 그 꽃나무에 새들이 찾아와 지저귀며, 개울의 물소리 졸졸거리는 공원 같은 곳에 위치한 곳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모든 사람들이 찾아와 벤치에 앉아 여유 있게 담소를 나누는 자리라면 홀로 앉아 계시는 만우도 외롭지 않고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좌상 아래 대리석에는 그가 일생을 살아온 일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공설운동장 부지 제공, 서울 향우회관 건립, 군북 초등학교, 군복 중학교 등 육영 사업에 거금을 출연한 것 등 많은 공적을 적어두었다. 6·10만세 운동 주도로 옥고를 치른 독립투사이기도 했으며, 기업 이익을 취하면 그 이익이 정당한 이익인지를 생각하는 견리사의(見利思義)를 생각한 선비정신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효성그룹의 창업주 만우(晩愚) 조홍제(趙洪濟)의 생가
그의 생가 위치는 군북면 동촌리 신창마을이다.
주변에 민가가 없고 한적한 시골의 들판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면적이 4,043㎡(약1,200평)로 시골학교 작은 운동장 정도의 넓이로 보면 될 것 같다. 본 생가 건물과 독립된 여신문(如新門) 건물로 되어 있었다. 여신문은 본가의 북쪽에 독립되게 지어진 것으로 보아 아마 집안의 조상을 모신 사당으로 보였다.
생가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담장은 우리나라 전통의 토담으로 시골의 선비처럼 깔끔한 자태였다. 그 토담을 따라, 은행나무, 느티나무, 목련나무, 대나무 숲이 수채화의 배경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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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 조홍제 회장 생가 |
만우는 생육신의 한 분이신 어계(漁溪) 조려(趙旅) 선생의 후손답게 정절곧은 선조의 정신을 이어 받아 생가의 건물이 단아하고 겸양의 미를 갖추고 있었다. 추녀, 기둥 그리고 지붕 등에 흐르고 있는 고택의 미는 만우의 겸손과 성실함을 보는 듯했다. 본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사랑채로 보이는 건물이 엄숙하게 엎드리고 있었다. 본채가 선비처럼 의젓하게 앉아 있고, 사랑채가 겸손한 나그네 모습으로 본채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대문간이 허용과 겸손의 자세로 열려 있었다.
만우 생가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양반집 구조를 살려 사치스럽거나 장식을 위주로 한 일체의 건축 기법을 배제하고 목조 건물이 지니는 단아하고 담백함을 최대한 살린 건축 양식이었다.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우의 후손 조현준 회장, 조현상 총괄 사장이 글로벌 시대, 한국 경제의 견인차적 역할을 하는 훌륭한 기업인으로 성장시킨 것은 이 단아하고 고풍스런 한옥의 정서에 자란 만우 선생 후덕한 성품의 결과이리라. 굳이 현대교육철학으로 설명을 하자면 잠재적 교육과정(潛在的敎育課程)이 후손들에게 적용된 것이리라 생각해 본다.
우리가 여가의 시간에 고적을 찾는 것은 그를 통해 현재 생활의 여유를 찾고 생기를 충전함에 있을 것이다. 만우의 생가를 찾는 것도 일상의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의 풍요함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만우 생가의 풍수지리적 의미를 잠시 살펴보았다. 우리 지방 남강에는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아주 엄청난 비밀 같은 전설이 하나 있다. 푸른 남강, 그 강 가운데 묘하게 생긴 커다란 바위 하나가 물에 동동 떠내려 갈 듯이 묘한 모습으로 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모진 바람, 홍수에도 꿈적하지도 않고 그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고 있다.
이 바위의 수면 아래에는 세 개의 발이 뿔처럼 솟아 세 곳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 뿔이 가리키는 쪽 주변 20리(8km) 이내에서 큰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오랜 옛날부터 전해해오고 있었다. 그런 풍수지리설이 예언해 주듯이 삼성, 효성, LG, GS의 창업주들이 남강의 솥바위를 중심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의령 삼성의 이병철, 함안 효성의 조홍제, 진양 LG, GS의 구인회가 솥바위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동심원 안에 태어난 것이다.
기자는 전설을 생각하며, 그 주술 같은 마력에 빠져 가슴 설레는 기분으로 만우의 생가 터 안, 이 곳 저 곳을 살펴보았다. 만우의 영혼이 있다면 그의 기(氣)라도 받아 내 삶의 활력소가 될 것 같은 기분으로 생가의 건물, 나무, 풀 한 포기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가 마른 목을 추겼을 우물 안도 내려다보았다.
그가 생전에 밟은 발자국을 따라, 그가 평소에 내쉬던 숨결을 따라 생가의 구석구석을 밟아보니, 만우의 기(氣)가 나의 호흡 속에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만우의 생가 터에 내리는 반짝이는 겨울 햇살이 나에게 무언가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으며, 뜰에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들 위에서 지저귀는 까치, 산새소리에서 만우의 기침 소리가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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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바위를 중심으로 북쪽 의령군 정곡면에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남쪽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는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 동남쪽 함안군 군북면에는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 생가가 위치한다 |
만우 생전, 그리고 만우의 후손이 베푼 나눔의 온정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있다. 군북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조홍제은공불망비(趙洪濟恩功不忘碑)’, 군북면 사무소에 있는 ‘만우(晩愚) 좌상(座像)’은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평소 만우의 거룩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재경향우회가 스스로의 성금을 모아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만우 생가는 이병철 생가, 구인회 생가와 더불어 경남의 그룹 총수 관광 코스로 개발되어 있다. 만우 생가도 주차장 등의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가까이 KTX 군북역과 중부내륙 고속도로, 남해 고속도로, 중부내륙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신축년 흰 소해를 맞이하여 효성그룹 만우 조홍제 창업주 생가를 찾아 ‘부자氣 받기’로 이곳을 찾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탁월한 경영능력과 기업가 정신을 통해 코로나19로 어려운 난국을 헤쳐 나가는 지혜와 쉼의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진주시의 LG생가와 의령군의 삼성 창업주 생가와 함께 팸 투어로 개발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정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