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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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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연인

기사입력 2021-01-1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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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래-문화대안학교 교장/본지 논설위원

산등성이의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우리의 산속에는 각진 콘크리트보다 추녀의 부드러운 선이 산의 흐름과 어울려 흘러내리는 초가나 기와집이 당연히 어울릴 것이다

중국의 자금성에는 나무 한 그루 없이 건물 사이는 높은 벽으로 단절된 채 거대성만 강조하고 대신 실내는 화려하게 하여 복종을 유발하고 지배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궁궐인 비원, 경회루 등의 정원엔 나무와 호수가 조화를 이루며 자연과 함께 어울리려는 한국인의 정서가 반영된다. 나는 자연인이다, 자연에 산다, 코리아 헌터 등의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다룬 프로그램들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도 한국인의 자연친화 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인디언들은 아이를 키울 때 자주 평원이나 숲속에 홀로 있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는 이유는 자연의 순수와 위대함을 느껴 생명의 존귀함을 가지길 바라는 의도에서이다. 이때 청각은 예민해지고, 자연의 숨소리와 생명을 느껴 자연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것이다. 눈 내린 아침 산길에 짐승의 발자국을 본 일이 있는가. 비로소 이 산속에 같이 살아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중국의 노장사상은 유교의 예치주의에 반대하여 인위를 거부하고 자연적 현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공맹이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지식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판단하고 지식과 격식보다 인간의 본성에 비중을 두는 경향을 띤다. 질서유지를 위한 방안으로 인위적인 교육이 아니라 인간 본성을 존중하고 믿는 것이다.

중국은 험난한 절벽을 깎아 기어이 그 속을 간다. 산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지은 집이나 구름다리가 있어 화면으로 보아도 오금이 저리다. 저런 험난한 공사를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을 예상했겠지만 자연 정복을 명령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내설악과 내금강은 전문적인 산악인만이 접근할 수 있고, 일반인들은 멀리서 보는 것이지 그 속에 기어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지구를 원소들의 우연한 집합으로 구성된 물질로 보고 그 속에 사는 인간이란 영혼의 존재가 아니라 단지 환경결정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 생리적 유기체에 불과하다고 보았고, 종교적으로는 인간에게 자연에 대한 어떤 권한도 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존재하다 사라진다. 프로그램 속에서의 자연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도시에서 병을 얻고 사람들에서 상처를 받고 자연생활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이런 상처를 받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하는 자연의 혜택을 알고 자연인이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우리의 자연인은 유해 짐승을 잡는 것이 아니라 쫓아내듯 자연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질서를 흩트리지 않고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원시인으로 사는 것이 자연인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두 번 자연을 찾는 것에서부터 일주일의 대부분을 자연과 더불어 살며 즐기는 경우에까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두 자연인이다. 그리고 자연인은 모두 행복하고, 도시인은 언제나 불행한 것도 아니다. 자연을 정복하는 대상이 아닌 그저 옆에 두고 싶은 것이다.

 

. 이어령 선생은 우리의 정자 문화를 소개하면서 정자는 강 건너에서 보는 서양의 전망대가 아니라 경치 속에 배치하여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다는 것이다. 그 속에 사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강 건너에서 절벽의 숲속에 있는 정자를 보면 지붕 색상이나 건물 모양이 튀지 않고 자연스레 어울려 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악양루나 와룡정을 볼 때도 직접 정자에 앉아 보는 것도 하겠지만 강 건너에서 정자를 보는 것도 동시에 해 볼일이다. 이런 자연스러움은 또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가구는 표면을 짙은 색으로 칠하지만 우리의 가구는 나무결인 목리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장판과 같은 바닥재의 무늬도 나무결 문양을 디자인으로 선택한 경우가 아주 많다. 궁궐에서도 자연과 어울려 살려는 우리의 의식이 깔려 있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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