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래-문화대안학교 교장/본지 논설위원
머슴의 농사능력은 쟁기질로 판단하였다. 깊이를 일정하게 갈려면 힘을 바탕으로 한 조절능력이 있어야 한다. 힘 조절에 실패하면 쟁기의 보습이 땅에 박혀 버린다. 차진 논을 가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한 손으로는 소를 다루면서 하루 500평 정도의 논밭을 가는 능력을 보여야 좋은 머슴으로서의 대우를 받았다.
흙에 닿아 땅을 긁는 보습의 벳은 박달나무나 돌로 만들다가 이후 철기로 대체하였다. 철기의 사용은 능률과 시간 절약의 혁신적 발명이었다. 철기의 벳은 더욱 깊게 갈 수 있다는 것은 농작물의 뿌리가 잘 내리게 하여 생산증가로 이어지는 중요한 발명이었다. 이후 1963년 대동공업이 국내최초로 동력경운기를 개발하였고 1970뇬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경제부흥의 계기가 되었다. 쟁기로 갈면서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 수천 년을 외치다가 드디어 인간의 수십 명 능력을 가진 경운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추석 때뿐만 아니라 농악이 있는 자리에는 언제나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는 긴 깃발을 내리우고 있었지만 호미와 괭이에 의존한 채 도구 발달은 더디고 더뎠던 것이다.
1마력은 한 마리의 말이 가지는 힘으로 알려져 있는데, 10마력의 경운기라면 고구마 30kg 50포대를 옮길 수 있으니 인간의 노동력 25명분을 해결하는 힘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피로 누적으로 쉬어야 하지만 경운기는 계속할 수 있는 기계의 특성을 반영하면 50명분의 노동을 해치울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그간 경운기는 논밭 갈기, 양수기, 분무기, 탈곡, 수송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 위대한 발명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트랙터로 논을 갈고 이앙기로 모를 심고 드론으로 농약을 살포하고 다시 트랙터로 수확을 하니 소가 씩씩거리며 쟁기질하는 모습이나 무논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써레질하는 농부의 모습은 전설이 되었다.
경운기가 논길을 달리는 모습은 낭만적이다. 그런데 경운기 사고가 잦고 그 사고의 7% 정도는 사망사고이다. 장년층의 사고는 힘은 있지만 요령이 부족한 귀농인에게 많이 발생하고, 노인층 사고는 요령은 있지만 힘이 없어서 발생한다. 경운기는 4륜 구동도 아니고, 자동차처럼 파워핸들이 아니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밭길에서 핸들이 돌아가 버리면 배나 갈비뼈를 치고, 이런 사고가 중상으로 이어 지는 경우가 많다. 로터리를 칠 때 후진하다가 다리를 다치는 경우가 많고, 밭두렁을 넘을 때나 경사지에서 전복사고가 많고 사고가 난 뒤에도 시동이 꺼지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는 것은 괴물이 죽지 않고 끝까지 덤비는 것과 같다. 구조적으로 동력전달 장치인 벨트가 노출되어 있어서 손가락이 끼어 절단되기도 한다. 그래서 넓지 않은 토지의 일은 관리기가 담당하는데 작은 것은 여성들도 충분히 안전하게 다룰 수 있다. 조금 더 넓은 토지는 작아진 트랙터가 담당을 하니 수천 년을 기다려 농민의 손발이 되어준 경운기는 역사의 유물이 될 초입에 있다. 시골의 경운기 수리점은 거의 폐업상태이거나 휴업상태이고 트랙터 판매 기업의 서비스센터에서 이를 수향하고 있다. 농촌체험 농장에서는 가끔 소달구지를 태워 낭만적인 농촌 여행을 기획하고 있지만 대부분 트랙터가 기차처럼 끌고 다니고 있으니 그 중간에 끼인 경운기의 역할은 보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경운기시대가 저물고 있는 이때 우리학교에는 경운기 조형물을 세울 것이다. 25명분의 노동력을 감당하는 모습을 표현하여 수천 년을 괭이와 삽으로 농업을 운명으로 사신 분께 위로와 이 기적의 기계를 발명한 분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훗날 이 조형물은 경운기의 위대함을 증언할 것이다.
경운기는 모두 주황색으로 만들어져 있다. 하늘의 붉은 태양과 땅의 황토를 섞으면 주황색이 되는 만큼 하늘과 땅 사이에 살아가는 인간을 뜻할 뿐만 아니라 활력과 에너지를 상징하는데, 이제 주황색이 빛이 바래고 있을 즈음에, 그 틈을 선연한 빨간색의 트랙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농민을 위해 산 경운기 너의 50년을 기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