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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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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생으로 사는 꼰대

기사입력 2020-07-3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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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래-문화대안학교 교장/본지 논설위원

 

한때 법정 스님은 기거할 오두막과 밥그릇 그리고 밤에 책을 볼 등잔 등의 최소한을 두고 나머지는 버렸다. 이를 담은 법정 스님의 수필에 쓴 ‘무소유’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화두처럼 번져갔다. 그런데 이를 실천하며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모두를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별적으로 버린다. 그리고 완고한 고집을 부리며 자기자랑만 늘어놓는다. 왕년의 영화에 빠져 자기 칭찬에 여념이 없다. 모두를 버리는 무소유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만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자신의 귀찮음과 무능을 무소유로 포장한다. 젊은 시절에 가졌던 돈에 대한 열망도 그대로다. 비아그라를 든 성욕도 그대로이면서 입으로는 버렸다고들 한다. 버리려면 제대로 버리든지 버리는 시늉만 하면서 고상한 ‘법정’인 체한다.

남과 자신을 비교할 때는 근거 없는 우월성을 가지고, 상대에 대한 비판은 많아도 자신을 위해 성찰하는 후속 조치는 없다. 모든 분야에 얇고 넓은 상식으로 모르는 게 없지만 정작 아는 것은 얇아서 지식으로는 쓸모가 없다. 더구나 객관성을 상실한 정보에 대해 지나친 확신으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는 게 없고 모르는 것도 없다는 비아냥거리는 지적을 받으면서 대화의 상대로부터 기피를 당한다. 그럼에도 내 멋대로 사는 인생이라 자랑한다. 이쯤 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뜻대로 하세요’이다. 이 작품은 형과 아우 간의 권력 분쟁을 다룬 것인데, ‘뜻대로 하세요’는 상대에 대해 요구도 않고 변화도 기대하지 않는 포기의 심정이고, 스스로는 염세적인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 젊고 진취적인 사람들은 더 이상 기대함이 없이 침묵하며 꼰대들과의 관계를 포기해 버린다. 만약 신에게 ‘당신의 뜻대로 하세요’라고 간구했다면 경외의 심정으로 복종을 다짐하는 것이겠지만 꼰대에게 말하는 ‘당신의 뜻대로 하세요’라는 말은 더 이상을 기대할 수 없는 포기와 절망을 선언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부호를 뜻하는 ‘재벌’은 영어로는 ‘chaebol'이고, 꼰대는 ‘ggondae'이다. 우리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고유명사처럼 영어로 바꿀 수 없을 때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거나 존재하는 독특한 것이다. 꼰대는 단순히 자신의 개별적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이 너무 커서 상대를 억압하고 제압하려는 속성이 가지고 있어서 융화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는다. 이 꼰대가 의미 번역되지 않고 우리말 발음 그대로 영어로 표기하는 것은 혹시 우리나라가 꼰대의 발상지가 되지는 않는지 걱정스럽다.

인생의 끄트머리를 여생이라고 한다.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회복하기 힘든 절망적 건강상태에 빠지는 순간부터 여생이 되고, 삶의 의욕을 포기하고 절망의 빠지는 순간부터도 여생이 된다. 그렇다면 재미있는 드라마 1년을 보고 끝나면 덩달아 제 인생도 1년이 지나가 버리고, 어떤 이는 노래경연프로그램인 미스터 트롯이 끝나고 나니 할 일이 없고 의욕도 없다면 여생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뉴스 방송은 하루에서 서너 번을 본다. 새로운 사건이 없으면 리딩 아나운서의 원고는 하루 종일 조사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인데 이를 볼 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뉴스 방송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이 된다는 착각을 가지는 것이다. 자신을 새롭게 할 시도나 시험이 없어 긴장도 없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훈수들기를 계속한다면 스스로 여생의 시간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100세를 살면서도 여전히 집필과 강연으로 바쁜 김형석 교수는 말한다. 행복하고 존경스러운 노년이 되기 위해서 표정은 밝게 하고 모두에게 정중하며 자신을 새롭게 개발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일본의 60대 여성을 대상을 한 조사에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공부를 시작하고, 취미 생활을 계속하며,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람이다. 꼰대의 탈출은 납골당 같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현재에 있으며, 과시를 위한 고집이 아니라 자기계발을 위한 수용에 있다. 도구를 가지고 놀면서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도구를 만드는 열정이어야 한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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