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숙(본지 기자)
바람의 어원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란다.
자립명사로는
기압의 변화 따위에서 비롯하는 공기의 흐름이란다.
오늘 나는 의존명사로 바람과 만나고 싶다.
방금 전 톡이 날아왔다.
“오늘 날씨 너무 좋네요.”
“그러네요. 바람나기 딱 좋은 날이네요.”
아침에 늦잠 자는 바람에
남편 출근 배웅을 이불 속에서 하고
불어나는 살덩이 바람에 아침을 굶고
전혀 계획에 없던 점심 호출 바람에 지갑을 열고
어쩌다 보니
남편 퇴근시간 딸랑거리는 바람에 종종 거리고
그래도 울 엄마 손맛을 닮는 바람에 뚝딱 된장찌개 끓여
수고한 남편 밥그릇에 사랑 한 숟가락 얹어 퍼주었더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는
‘한 그릇 더’를 외치는 바람에
밥상머리 수고로움이 싹 사라지고
그놈의 폰에 눈 고정하고
누구랑 글 만남을 하는지 실실 웃다가도
간간히(간질간질 재미있는 마음) 마누라 얼굴 쳐다봐주는 바람에
이 남자랑 계속 살아야겠다며
아주 평범한 일상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런데 말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쳐지는 눈꺼풀 바람에
쳐진 꺼풀 제거 수술을 하고
젊어 함부로 몸 노동을 한 바람에
고관절이 아프고
저리고 뻣뻣해지는 고관절 바람에
그 흔한 등산 동아리도 가입하기 어렵고
남들 다 거치는 갱년기에
한 번쯤 먹어본다는 호르몬, 영양제 모르고 살아온 바람에
초고도비만으로 몸뚱이는 둥글넓적하고
초고도비만 바람에
뇌경색에 고혈압 환자가 되고
머릿속 지우개 바람에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삶을 살더라도
내 인생에 별난 바람 한번 나고 싶다
햇살 좋은 날
부드럽게 감싸는 바람으로 마냥 행복해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주는 머릿결 바람으로
가슴 뭉클해하고
‘너 참 이쁘다’는 감언이설 헛바람에도
눈에 힘주며 우쭐해하고
‘너 참 사랑스럽다’는 달달한 사탕발림 바람으로
벌렁벌렁 심장이 널뛰듯 설레고 싶고
‘연애 한번 해볼래요?’
플라토닉 어쩌고 하는 마음을 볼 수 없는 글 바람에도
콩닥콩닥 가슴 두근거려 보고프다
새벽 싸한 공기 중에
따스하고 포근한 입김으로 만나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쫑알거리는 말에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말에 내 편이 되어
쓰다듬어주고, 토닥여주고, 위로해주고
온종일을 함께 있어 마냥 좋고, 신나고, 행복하여
눈물 찔끔 떨구고프다
잠자리 들기 전 혹여 내 맘 들킬까?
함께했던 추억들을 꺼내보고
‘한 번 더’ 사랑고백하고 서둘러 흔적을 지우고는
내일 새벽 만남을 약속하며 잠자리에 들고프다
나는 그분의 안에 그분은 내안에 고이 품고
세상을 다준대도 바꾸지 않을 찐한 바람 한번 나고 싶다
그리고
그 바람 안에 내 남은 인생을 넣어두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 3장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