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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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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금강산 산골의 다래 이야기

기사입력 2019-08-3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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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술 논설위원

금강산 깊은 계곡에 장안사라는 절이 있어요. 기암절벽, 사철의 변화에 따른 나무들의 변화, 야생화가 만발하는 절이지요.

그 절에는 금강산 골짜기에 사는 부잣집 양반이 10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불공을 드리고 있었어요. 오늘도 그 양반은 장안사 주지 스님과 함께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고 나와 절간 마당에서 금강산 경치를 바라보며 말을 주고받았어요.

“스님, 언제 쯤 저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야, 부처님의 뜻인데요. 소승이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스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10년 동안을 이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있습니다.”

“절에서 오래 동안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보면 부처님의 응답이 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 처사님께도 부처님의 응답이 오실 것 같습니다. 소승의 영감이 그렇게 다가오는 것 같군요.”

양반은 스님의 그 말 한 마디에 10년 동안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분이 되어 아주 가벼운 발걸음이 되어 절을 내려왔어요.

“아, 이제 우리 마누라가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되는구나.”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정말 그 부잣집 양반 부인이 태기가 있어 아기를 낳았어요. 그것도 고추를 단 사내아이를 낳았지요.

그런데 그 아기가 자라면서 이상한 징후를 보였어요. 한 번 울음보가 터지면 동네가 날아갈 정도로 큰 소리로 우는 것이었어요. 거기다가 밥을 먹으면 한 그릇, 두 그릇을 쉽게 먹어댔어요. 더 걱정스러운 것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이 정상적인 아이가 아닌 팔삭둥이, 머저리였어요.

그런 아들을 보는 아버지 되는 양반은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독자 집안에 태어난 아이가 머저리라니 앞으로 가문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고민이 태산 같았어요.

그 소식이 장안사 주지 스님에게 전해지게 되었어요. 스님은 하루 날을 정하여 그 양반 집을 정중하게 찾아갔어요.

“처사님, 10년 동안을 우리 장안사 절에 와서 불공을 드려 귀한 아드님을 얻었는데 참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스님, 어떻게 우리 아들과 가문에 희망을 주십시오.”

스님은 미리 준비한 계획이 있었는지 조용히 눈을 감고, 염불을 하며 부처님과 교감이 통하는 예식을 올렸어요. 얼마 후, 스님은 긴 장삼자락에서 염주 알을 내어 손에 잡고 다시 낭낭한 염불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주 굵은 목소리로 무척 어려운 염불을 하면서 깊은 묵상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잠시 후, 환히 웃는 얼굴이 되더니 부잣집 양반의 눈빛을 빤히 바라보았어요.

“처사님, 그러나 상심 마십시오. 울음소리가 큰 것은 천하를 호령하는 대장부의 기질을 타고 난 것이고, 밥을 많이 먹는 것은 앞으로 힘이 센 장군이 될 기질을 타고 난 것입니다. 영웅호걸이 틀림없습니다.”

스님이 여기까지 아주 밝은 표정으로 말을 했지만 그 다음은 침울한 표정이 되어 어렵게 말을 했어요.

“그런데 이 아이는 증조할아버지의 운을 그대로 이어 받았습니다.”

스님이 머저리 아들을 가리켜 ‘대장부, 영웅호걸’이란 말을 하자, 양반은 정말 오래간만에 얼굴이 환히 밝아졌어요. 그러다가 끝 부분에 증조부 말이 나오자, 양반의 얼굴이 대번에 흙빛이 되었어요.

그 양반의 할아버지는 악착같은 지주였는데, 마른벼락을 맞아 죽었던 것입니다. 양반은 일어나려는 스님의 옷자락을 넌지시 잡고 애원하듯 말했어요.

“스님, 우리 가문을 살려주십시오. 이렇게 애원을 합니다.”

스님은 난처한 듯이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지를 못했어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다가 긴 한 숨을 쉬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 마디 남기고 바람처럼 그 자리를 떠나버렸어요.

“인과응보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처사님의 그 뜻을 저버릴 수도 없구려. 부처님께 시주를 하시고, 도련님을 세 번 장가보내면 액풀이가 될 것 같기는 합니다만.... .”

그 양반은 스님이 다녀 간 후,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어수선 했어요. 아직 아무 생각도 없는 바보 같은 아이에게 세 번이나 장가를 보낸다는 것이 무척이도 어려운 일이였어요.

며칠 동안 고민에 싸여있던 양반은 꿍꿍이속을 가지고, 그 마을에서 예쁜 딸을 가지고 있는 가난한 박 씨네 집을 찾아갔어요. 그 집은 가난하여 부잣집 양반의 집 논을 소작하고 있었어요.

“박 서방, 자네 딸이 착하고 예쁜데 우리 아들과 혼사를 맺으면 어떨까?”

“아이구! 미천한 제가 어떻게 어르신네 집안과 사돈의 인연을 맺는단 말입니까?”

소작인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착한 딸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어요. 비록 자기는 가난하여 부잣집의 논을 소작하는 처지이지만 착한 딸을 그 바보 아이에게 시집을 보낼 수가 없었어요.

“어르신, 제가 혼자 생각할 일이 아니고, 딸의 에미와 딸의 생각도 들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에이, 사람아! 그것은 나와 인연을 맺지 못한다는 말과 같네. 우리 남자답게 약속하세. 우리 집 아주 좋은 논 열 두락을 자네에게 줌세. 자네가 승낙한 걸로 알고 돌아가네.”

소작인은 밤중에 홍두깨란 말은 들었지만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어요. 솔직히 논, 열 두락이면 이 마을에서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부자가 되는 것이지요. 또 소작인 주제에 고집을 부리다가는 이 마을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날지도 몰라요.

그 다음날, 소작인의 참하고 예쁜 딸은 아주 간단한 혼례식을 치르고 부잣집 며느리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색시가 첫날 밤, 바보 신랑을 보고 질겁을 했어요. 바보 신랑의 울음보가 터지자, 온 집안이 흔들릴 정도였어요. 말이 신랑이지 바보 어린 아이와 함께 산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캄캄했어요.

색시는 날이 새자마자, 옷고름을 물고 맨발에 대문을 박차고 부잣집을 뒤쳐 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퍼지고 앉아 엉엉 울었어요.

한편, 아침나절 이 일을 거울처럼 보고 있던 부잣집 양반은 대청마루에서 양미간 주름을 좁혔다 넓혔다하면서 긴 숨을 내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어요.

“이제 첫 일은 성공이다. 또 한 번의 며느리를 들여와 내쫓아 하겠네.”

양반을 그 길로 마음에 두고 있는 그 마을 너머 어느 집으로 갔어요. 그 집은 마음이 너무도 착한 집이고, 그 집 마누라가 앓아 누워 있어도 약 한 첩 지을 돈이 없는 집이었어요. 그 집의 딸이 효녀이고 착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어요.

양반은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주인 남자와 마주 앉았어요. 그리고는 커다란 돈다발을 먼저 내어놓고 바로 말을 했어요.

“김 씨, 자네 딸이 마을에서 효녀로 소문이 나 있네. 나와 사돈의 인연으로 맺으면 어떻겠는가?”

그 주인 남자는 이미 부자 양반의 속내를 잘 알고 있었어요. 그 부잣집 아들의 액풀이감으로 며느리를 들인다는 것이 마을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 있었어요. 그는 단호하게 거절을 했어요.

“어르신, 우리 딸이 아직 어리고 제 에미가 병석이라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

양반은 벌컥 화를 내며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김 씨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달려들며 고함지르며 말했어요.

“자네 이 사람아, 나에게 빚진 돈이 얼마인가? 여기 더 돈을 들이겠네. 일이 성사된 것으로 알고 가네.” 부자 양반은 더 큰 돈 뭉치를 ‘툭-’ 김 씨의 무릎에 던지며 일어나 가버렸어요.

김 씨는 앞이 캄캄했어요. 여태까지 그 양반의 빚을 지고 있는 것도 많고, 소작 등을 생각하면 도저히 거절을 할 수가 없었어요. 더구나 두고 간 돈뭉치를 보면 이 돈이면 평생을 걱정 없이 살 것 같은 액수였어요.

다음날, 김 씨에 착한 딸은 부잣집 며느리로 가게 되었어요.

두 번째 며느리의 시집살이가 시작되었어요. 두 번째 며느리는 너무도 착하고 성실했어요. 집안의 머슴들 하녀들까지 모두가 두 번째 며느리의 성실한 모습을 칭찬했어요.

“아. 우리 마을에 이런 착한 사람이 있었나?”

그 집 양반은 그런 말이 집안에 떠돌수록 마음이 무거워왔어요. 두 번째 며느리를 쫓아낼 구실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러자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쫓아낼 궁리에 혈안이 되었어요.

어느 추운 겨울날, 며느리가 차가운 강가에 나가서 빨래를 하여 머리에 이고 들어오는 데 시어머니가 그 며느리 뒤통수를 쥐어박으며 구함을 질렀어요.

“야 이년아, 네 신랑이 네 방에 있는 누릉지를 모두 먹어치우고 배탈이 났다. 너는 이제 누룽지도 아깝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구박을 주기 위해 밥을 주지 않고 누룽지를 대신 주었지요. 며느리가 그 누릉지를 방구석에 두었는데 바보 신랑이 먹은 것이지요. 그 뒤로는 시어미니는 며느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어요.

며느리는 이제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어 배를 채울 일이 막막했어요. 그 며느리는 배도 고프고, 팔자가 한스러워 뒷산으로 올라가 양지쪽 다래나무 아래에 가서 다리를 펴고 엉엉 울었어요. 며느리의 그 뜨거운 눈물이 다래나무 뿌리에 스며들어갔어요.

얼마가 지났을까요.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그 엄동 추위에 다래나무에 먹음직한 다래가 주렁주렁 열렸어요.

며느리는 너무도 배가 고파 그 다래를 한 개씩 입에 넣었어요. 허기를 면할 수 있었고, 온 몸에 힘이 솟아나고 얼굴에 화색기가 돌았어요.

그 다음날 아침,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얼굴색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굶어 사는 년이 어떻게 저리 얼굴색이 좋을까? 아마도 도둑질을 해 먹는 것이 분명해 더 눈을 밝히고 감시를 엄하게 해야지.”

그러던 어느 날 동지가 되었어요.

며느리는 굶어가며 새벽 일찍 일어나 팥을 갈아서 동짓 팥죽을 쑤었어요. 며느리는 하도 배가 고파서 품속에 몰래 숨겨 놓았던 다래 몇 알을 입에 넣었어요.

부엌 구석에서 이를 몰래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불쑥 튀어나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어요.

“네 이년아, 조상에게 올리기도 전에 팥죽을 네 년의 입에 먼저 넣다니.”

“아닙니다, 어머님, 제가 입에 넣은 것은 뒷산에서 따온 다래입니다.”

“이년 봐라. 이 동지섣달에 다래가 있다니 말이 되나. 이년 봐라. 잘 되었다. 이번에 톡톡히 혼쭐을 내어야겠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입을 벌리고 그 입에다 펄펄 끓는 팥죽을 마구 퍼 넣었어요. 그러자, 며느리의 바알간 혀가 뜨거운 팥죽에 데어 대번에 하얗게 변해버렸어요. 며느리는 아파서 펄쩍펄쩍 뛰다가 부엌 바닥에 뒹굴기까지 했어요.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를 보고 기다렸다는 듯이 고함을 질렀어요.

“네 이년, 도둑년 우리 집에서 나가라.”

며느리는 도둑년이란 누명을 쓰고 갈 곳이 없어, 뒷산 다래나무 아래로 갔어요. 며느리는 그곳에서 그 날 밤 모진 추위에 뒹굴다 얼어 죽었어요.

다음날, 마을 사람들이 그 일을 알게 되었어요. 모두 뒷산으로 올라가 며느리를 양지쪽에 장사를 지내주었어요.

다음 해, 그 무덤에서 다래나무 한 그루가 돋아났는데, 그 잎사귀들이 며느리의 혓바닥처럼 하얗게 된 것이었어요. 뜨거운 팥죽에 덴 그 혓바닥처럼 하얗게 된 다래나무 잎이 바람결에 하늘거렸어요.

그 후, 어느 날이었어요.

양반 집 마님이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요. 뒷산 양지쪽에 아주 맛이 있는 다래가 주렁주렁 열렸다고 했어요. 양반 마님은 당장 머슴들에게 시켰어요.

“여봐라. 빨리 뒷산에 올라가서 그 맛있다는 다래를 몽땅 따오너라.”

머슴들이 따온 향긋한 산내음이 나는 다래를 보자, 양반 집안 식구들이 둘러 앉아 맛있게 먹었어요. 그런데 그 아래를 먹자 모든 식구들이 혀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 이리저리 구르며 어쩔 줄을 몰랐어요. 그날부터 그 양반집 식구들은 혀가 불처럼 뜨거워서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요즘도 다래나무는 그 절반이 하얀 나뭇잎을 바람에 날리며 무언간 원망스러운 손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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