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자(본지 문화담당기자)
본지 김양자 문화부 기자가 지난 5월 27일~30일까지 함안문화원(원장 김동균)회원들로 구성된 탐방객 64명 대상으로 실시된 중국역사 문화탐방(진시황제 순례길)에 동행 취재를 했다.
이번 탐방에는 세계적인 한문학자이며 중국역사 전문가인 함안군 법수면 출신 허권수 경상대 명예교수가 같이 참여하여 3박 4일 동안 중국 역사를 해설을 하는 등 의미 있는 행사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양자 기자는 탐방기간 동안 일정별로 동행하면서 심충 취재한 것으로 독자여러분께서는 중국 청도지역 등의 역사와 문화를 본지 지면으로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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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산의 명신에서 단체사진 |
1일 -악천후를 물리치고...
여행이란 설레고 들뜬 마음을 갖게 하여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새벽부터 내리는 비는 문화탐방을 위하여 떠나려는 이들의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것일까? 비가 그쳐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을 시샘이라도 한 것일까? 바람까지 불러서 한바탕 춤사위를 벌인다. 농번기의 수많은 일거리를 서둘러 정리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려는 이들 앞에서 춤사위는 쉽사리 끝을 보려 하지 않는다. 날씨의 심술에 내심 염려하면서도 공항으로 가기 위하여 문화원 마당에 준비된 버스에 오르는 언니 오빠들의 옷차림은 유년시절 소풍을 떠나는 소년 소녀마냥 화사하다. 화사함은 비바람의 춤사위에 우울하게 변해버린 것들을 밝게 해주려는 것 같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을 모습이 그려진다. 기분이 좋을 때는 굶어도 배고픔을 쉽사리 감지 못한다. 간단한 요기로 공복을 달랬을 것이다. 몇날 며칠을 수차례 열고 닫았을 가방의 지퍼는 야무지게 닫혔는지, 야간 공연관람 때 방한을 위해 꼭 챙기라는 점프는 제자리에 잘 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여행 가방을 끌며 비바람의 강렬한 춤사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온 모습은 행복을 마음껏 누리기 위한 모습들이다. 봄날의 비는 농부에게는 소중한 생명수이지만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는 마음을 적시어 자칫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도 소년소녀는 즐겁기만 하다.
군수님과 문화원원장님의 비에 젖은 우울함을 날려버리게 하는 격려와 함께 함안의 아름다운 로고가 새겨진 버스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달려간다. 비는 차창을 눈치 없이 노크한다. 지치는 기색도 없이 노크를 연신 해된다. 공항에서 단정한 차림의 남자 두 분을 만난다. 함안의 자랑스러운 인물, 세계적인 한학자이시며 이번 여행의 문화와 역사, 인문학 해설담당 허수권 박사님과 중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경제와 역사책을 집필하신 박사출신의, 이번 해설이 있는 문화탐방여행을 기획하신 이래호 교수님이 이시다. 옆집 아저씨 같은 차림새에 된장국과 부침개와 막걸리를 좋아할 것 같으나 그분들의 후광으로 짐작하건데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깊음의 샘 같은 느낌을 안겨주는 두 단정한 분들이셨다.
소풍가는 아기돼지처럼 선생님돼지는 숫자를 확인하고 이름을 확인한다. 거듭 확인을 하고 주의사항을 듣는 것마저도 마냥 행복한 소년소녀들이 대답도 잘 한다. 짐 부치는 것도 검색대 통과도 참 잘한다. 아주 착한 소년소녀들이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와 바람이 춤사위를 그치지 않지만 출국장 앞에서 대기중인 소년소녀들은 즐거운 표정이다.
문화원에서 출발 전 약간 구푸러진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아들의 배웅을 받던 어르신을 보았다. 먼저 차에 올라 차창 밖을 살피던 나는 그분께 첫눈에 꽂혀버렸다. 내 옆자리로 안내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여행 내내 그 분과 짝이 된 것은 행운이었다. 그분에게서 일찍 떠나버린 친정부모님의 모습이 그려지는져 한번이라도 더 부축해 드리고 식탁에서는 부드러운 고기 한점이라도 더 골라서 올려드리렸다. 여행 가방은 작았지만 지팡이를 짚고 가방을 이동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만 가득하였다. 그분 가방과 내 것을 양손에 잡고 밀고 나가며 기내로 가져 갈 것인지 짐으로 붙일 것인지 선택하시라 했더니 짐을 붙이겠다 하시어 함께 서서 도와드렸다. 짐표를 드리며 ‘잃어버리지 않게 잘 넣어두세요.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내 가방을 찾을 수 있는 증명이 됩니다’ 라고 했더니 ‘여행하며 받는 것들을 집에 가면 모아두는 곳이 있다’ 라고 하신다. 목에 건 여행자 이름표 비닐 안에 넣도록 도와 드렸다. 검색대 통과하는 것과 통과 후 출국장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지 말고 끝자락이 내 앞에 지날 즈음 나가면 되는 것 까지 안내를 하고 출국게이트 옆자리를 찾아 기다리시도록 말씀드렸다. 여든여섯의 노구는 문화원에서 실시하는 중국문화탐방이 평생에 첫 해외여행이란다. 문화원 덕분에 해외여행까지 하게 된 것을 시작부터 돌아올 때 까지 수시로 감사하다고 하시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않으셨다. 여행 내내 한번도 뒤쳐지거나 지친기색도 없었다. 아주 다부지고 건강하신 분이셨다. 작은 체구이지만 강인한 체력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농장 일을 하기 위해 오가며 걸었던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하신다. 농장까지의 걸음을 세어보니 ‘만보’였다는 것이다. 연세에 비하여 세월이 주는 흔적도 깊지 않았다. 젊은 시절 ‘야무진 귀염둥이라는 말씀을 많이 들으셨을 것 같다’라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셨다. 탑승을 기다리며 지연되는 동안 옆자리에 앉은 문화원 가족에게 음료도 제공하시는 멋진 분이셨다.
멈추지 않는 비바람은 항공사마다 노선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렸다. 결항이 된 곳도 있고 출국게이트가 바뀌어져 버리거나 노선에 따라 좌석이 달라지는 혼란까지 발생하여 출국이 순조롭지가 않았다. 우리는 30분 지연이 되었으나 다음 비행기는 결항이 되었다는 소식까지 듣는다. 노선에 따라 비바람은 대형 문어처럼 꼬리를 제멋대로 휘두르는 것 같았다. 애타게 기다리던 마음은 이륙과 함께 안심이 되었다. 창공을 박차고 올라 구름을 벗어나며 서해해상을 지날 즈음 춤사위는 서서히 기운을 잃어간다. 청도공항은 밝은 햇살을 펼치며 우리는 반겨주었다. 이른 아침 집 떠나온 소년소녀들은 비행기 지연이 주었던 불안과 비좁은 좌석의 공간에서 지칠 것 같기도 한 데 씩씩한 모습으로 청도공항을 나와 맑은 햇살에 감사를 하며 현지가이드의 안내를 침착하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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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돔 위에서 |
비행기 지연은 청도 도착 후 점심식사를 바로 하도록 하였다. 대륙의 첫 맛은 기름으로 목욕재계한 음식들이다. 원탁을 가득채운 기름진 음식은 매콤하고 새콤한 겉절이와 된장찌개를 그립게 했으나 시장이 반찬이라 맛나게 먹는다. 졸음이 어깨를 짓누를 즈음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도시유적지이며 천년의 역사를 지닌 즉묵고성을 방문한다. 섬세한 조각이 새겨진 돌기둥과 춘추전국시대의 건축양식이 재현된 것을 살핀다. 돌기둥속의 조각된 것들이 살아서 뛰쳐나올 것 같음을 진정시키고 중국에서 살기 좋은 10대 도시 중 한 곳인 위해시의 행복문을 향해 달려간다. 위해시는 한국교민이 많은 곳이며 한국기업체가 있는 곳이다. 한국관광객이 연간 백만명에 이르는 곳이라고 한다. 행복문을 통과 하면 커다란 한꺼번에 50여명이 올라 갈 만 한 돔이 나타난다. 돔형의 조형물위에는 중국 각 지역에서 사용하는 각종 서체의 ‘복’글자가 돔의 조형물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서체를 마음껏, 다지듯 밟는 동안 복을 가득 받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소년소녀들은 가족에게 나누어줄 복까지 챙겨 주머니에 넣는다. 서서히 첫날의 어둠이 대륙을 찾아오고 붉은 색 매듭모양의 등과 호박등 모양으로 만들어진 가로등이 거리를 밝혀줄 때 호텔에서 여장을 푼다. 퇴근길을 요란스럽게 하는 오토바이의 소리나 행렬이 없다. 아름다운 도심을 위하여 영업용 외에는 이용정지를 시켰다는 것이다.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로 성큼 달려가는 모습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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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목고성-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도시 유적지 |
2일 - 장보고와 명신. 중국에 대한 오해
현지가이드는 조선족3세였다. 조선족3세라는 명함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어 발음이 또렷하고 표현력은 아주 정확했다. 안내에 대한 설명도 청산유수였다. 100여년전 조상들이 고국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야만 했고 험지에서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역경과 고난을 구구절절 듣지 않아도 짐작은 할 수 있다. 외세가 밀려오는 일제강점기에 짓눌리어 살길은 막막하고 자식은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배우게 할 수 도 없었던 과정은 고국을 떠난 이들이나 떠나지 못한 이들이나 매한가지이고, 민초들 고난의 삶은 거기가 거기라 하겠지만 타국생활은 더 힘들었을 것 아닌가. 돌밭에서 자란 풀의 생명력은 신비에 가깝다. 낯선 땅 불모지에서 대를 이어가는 동안 조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며 눈물로 지센 날도이 많았을 것이다. 텅 비고 외톨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마음은 가슴속에서 아픔으로 남아 후세가 제대로 성장 발전해 주기만을 바라고 바랐을 것이다. 그 후손이 고국에서 온 이들을 맞이한다. 더 살갑게 안내하며 조상들과 고국의 추억을 찾아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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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인이 세운 법화원 |
인터넷과 네티즌들은 군중심리에 의하여 무더기로 이유 없는 반항을 하고 거침없는 언어구사로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에 의미도 가치관도 없이 흡수된 사람들은 군중심리에 의해 ‘중국 유커’라고 하면 눈살 먼저 찌푸린다. 잘못된 선입관은 공존. 공익과 상생의 근간을 흐트러지게 할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청도는 공항이 있으니 어련히 정리되고 깨끗할 수밖에 없겠지, 공항을 벗어나면...’라는 생각은 초전박살 나버렸다. 거리의 정리와 절도 있는 조경의 모습과 넓은 도로의 청결함은 우리와 버금가거나 우수한 모습이었다. ‘붉은 빛줄기가 흐르는 아래에서 웃통을 벗고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물고 잡담을 하거나 카드로 소일하는 모습이 펼쳐지겠지’ 라는 것은 나만의 기우였다. 당연히 ‘황사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라는 생각은 부끄럽게 다가왔다. 황사나 미세먼지 걱정으로 머프를 목에 두른 사람은 나 혼자였다.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미세먼지나 휴지조각이 뒹구는 것은 볼 수 없었다. 성장속도가 빠르다는 플라타너스나무들이 방풍림이 되어 고속도로 주변을 지켜주며 강한 바람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한다. 이파리의 반짝거림은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속사포 같은 모습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저들의 언어는 우리에게, 우리의 언어는 저들에게 속사포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을 서로 시끄럽다고 아우성이다. 대화는 환경과 문화와 생활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문화의 다름이 오해를 안겨주었을 뿐이지 저들이나 우리나 상대가 들을 때 시끄럽기는 매한가지이다.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청소를 해 둔 것처럼 깨끗한 거리 모습이 좋았다. 우리가 탑승 한 버스는 차선을 조금만 스쳐도 이상한 음을 발생시켜 모두를 긴장시키게 하며 안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맑고 투명한 날씨의 따뜻함 속에서 차창 밖을 살피는 동안 기다리던 허권수교수님의 특강이 시작되었다. 조용하고 침착하며 소탈함뿐인 교수님의 강의는 모두의 정곡을 찔렀다. 문화는 학문과 어우러질 때 바르게 정립이 된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훈련적인 생활을 하며 나라와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바른 정립자세로 정치를 해야 나라가 바로 된다. 내실을 중요시하는 중국인을 우리는 이전처럼 대하면 안 되고 우리들이 지금껏 고착시키다 시피 한 생각으로 밀고 나간다면 우리는 나태와 도태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라사랑의 절심함과 젊은이들의 건강한 사고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표현이었다. 탁월한 식견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열 개를 알아도 세 개만 말할 정도로 조용하고 침착하였다. 교수나 박사라는 타이틀로 상대나 관중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모습도 전무하였다. 검소함과 소박함으로 채워진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청빈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언행과 탁월한 박식함의 소유자이셨다. 관광이란 ‘놀고먹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여 삶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으로써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 점은 보고 깨닫는 것’이라는 말씀을 깊이 세겨둔다.
일제강점기시절 조선족이라는 명칭을 부끄럽게 얻었다면 신라시대에는 신라인들이 중국으로 잡혀가거나 이주 한 것이 있었다. 신라방으로 불리운 곳이다. 신라인의 집단 거주지, 신라방으로 불리며 살던 곳이 지금은 코리아타운이라고 불린다. 코리아타운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기까지 힘든 민초들의 생활과 극심한 고난을 회상해 볼 수 있다. 맑고 투명한 날이면 완도나 목포 즈음에서 중국의 적산이 보이고 저 곳에 건너가 보고 싶은 생각의 간절함이 자의와 타의에 의하여 물을 건너가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충동을 억누르다가 새로운 땅으로 도망치듯 갔을 수도 있다. 그 간절함은 물과 친하게 해주었고 물에서 놀며 퍼덕거리던 것이 수영을 잘 하게 해주어 물속에서 50리를 헤엄쳐도 숨가빠하지 정도였다고 하니 그 중 한 사람이 장보고다. 장보고가 중국으로 달려가 해상을 장악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고 해석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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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보고 해상기행 방문 기념비 |
당나라 시절 전라도 완도바닷가 출신 장보고의 용감무쌍함은 싸움의 고수가 되어 군의 장수가 되고 무역항을 일대로 바다를 장악하는 듯 했으나 결국은 욕심의 과욕이 그를 파멸시켜버리니 과욕이란 독약일 뿐이다. 장보고와 신라인을 위한 법화원과 장보고 기념관이 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자랑스러움으로 다가와 신라방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정쟁의 희생자이기도 하고 미래를 향한 선구적이며 선각자이기도 한 그들의 삶에 대한 행보를 더듬으며 선조들의 목소리가 산과 들과 바다에서 들려오는 것을 느껴본다.
코리아타운의 건너편 우뚝 솟은 적신 꼭대기에는 해상을 지키는 명신이 자리하고 있다. 적산의 명신이 보여주는 거대하고 우람한 자세 앞에서 저절로 감탄이 쏟아지듯 나온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거대한 명신의 그림자만 보아도 악한 무리는 범접을 못할 것 같았다. 바다와 마을을 내려다보는 명신의 모습과 그림자까지도 등대가 되어주고 바닷바람을 막아 풍랑을 잠재워 준다고 믿었을 것이다.
명신의 보호 속에서 우리는 불로초의 대명사 진시황제를 찾아간다. 불로초는 자신이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면 되는 것이지 풀떼기나 희귀한 음식을 먹어서 된다면 나도 불로초 찾으러 갈 것이다. 민심을 살피기 위하여 전국곳곳을 순행한 것은 칭찬 하고도 남을 일이다. 오늘날에도 애국과 애민 정신이 없다면 민심을 살피는 일은 뒷전이며 자신의 영화만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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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형 뮤지컬을 보기 위해 |
어둠과 함께 자연물이 쇼의 배경이 되어 주는 화하쇼, 중국 무술 영화속에서 보았던 하늘을 나는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관을 이루는 화하쇼를 관람하기 위하여 달려간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시작되는 위해시의 초대형뮤지컬 화하쇼는 커다란 선박이 객석이 되고 자연과 주변의 경관을 무대와 소품으로 최대한 활용한 스펙타클한 쇼다. 객석이 된 선채가 무대를 따라 원위치가 될 때까지 돌면서 화려한 쇼를 보여준다. 하늘을 날며 날개 짓을 하는 거대한 새와 선녀의 무희, 산꼭대기에서 폭포수가 관객을 덮칠 듯 쏟아지고 호수를 박차고 오르는 용과 거북, 무희들의 쉴 사이 없는 화려한 춤, 거대한 선박의 조용한 움직임, 끊이지 않는 관객의 탄성은 엄청나고 거대하며 웅장함 앞에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하는 쇼였다. 내용에 대한 자막에 한글설명이 없었다는 것이 사뭇 아쉬었지만 배우들의 동작으로 어렴풋이 이해는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설명이 곁들여지지 않더라도 스펙타클함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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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보고 동상앞에서 단체사진 |
3일 - 개 짖음은 알람, 바다위의 대교
이틀을 묵었던 숙소를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새벽녘 골목길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닝콜이 울리기도 전에 개가 먼저 우리의 잠을 깨우는 것이다. ‘우리 동네나 중국이나 개 짖는 소리는 똑 같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가방정리를 한다. 첫날 점심 식사부터 기름으로 목욕한 음식들이 산더미처럼 원탁을 채웠지만 호텔의 조식은 기름단장이 덜했다. 식용유를 만들기 위해 미국 콩을 수입하고 콩 재배를 많이 하는 중국인가 싶었다. 우리의 단백 시원한 맛이 생명인 국물과 달리 국물조차 기름터널을 통과하고 나왔는지 국물 위로 기름이 수영을 하고 있었지만 무사여행을 위하여 먹는다.
연태산 자락 아랫마을 독일이 점령했던 유럽풍의 거리를 걸으며 일제 강점기 때 그들이 남긴 우리나라 건축물들을 떠 올려보았다. 거리와 맞닿은 해안의 조경과 조형물의 깨끗함과 줄지어 선 건물의 서구적인 모습에 놀라고, 인천대교와 광안대교에 버금가는 청도의 상징인 34km 길이의 잔교를 보면서 다시 놀란다. ‘저 길을 자전거타고 돌아오면 68km.... 네시간 정도 걸리겠네’라고 중얼거려보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주려고 삼겹살과 김치찌개로 파티를 한다. 마지막 밤을 편히 보내기 위해 간단하게 발 맛사지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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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태산 해안과 유럽풍 거리 |
4일 - 올림픽공원의 조각상
세기공원에서 올림픽출전 선수들의 조각상을 보았다. 섬세한 표현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딱 좋았다. 강인한 표정, 탄탄한 근육, 승리를 위한 굳은 눈빛, 종목마다 갖추어야 할 선수들의 체력과 체격, 메달을 입에 문 선수의 섬세한 치아배열, 경기신호를 잘 듣기 위한 귀모습의 정확도와 세밀한 주름의 정교함까지 정확한 표현력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곳곳에 대륙의 통 큰 모습과 기질이 드러나 있었다.
“우리의 천적은 중국이다. 중국은 급성장중이다. 우리는 일본이 비행기를 만들 때 리어카도 못 만들었다. 중국을 폄훼하지도 말아야겠지만 경계도 하지 말아라, 삶과 우주는 돌고 돈다. 앞서지만 뒤처리를 조금 못하는 것이 중국의 현재모습이지만 우리도 그러한 때가 있었다. 급성장한 우리가 조금 숨 돌린다고 큰 소리 친다면 인해전술로 저들이 다가올 때 묻히게 된다.” 허권수 교수님과 이래호 박사님, 김동균 원장님의 공통분모가 되는 말씀들이었다. 세분 말씀의 공통분모에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미래들에게 바른 가치관을 세워주는 것이 급하다는 생각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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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공원내 올림픽 출전 선수상 앞에서 김양자 기자 |
15억 중국과 5천만 한국이 대결하자면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지혜로움과 선견지명이 따라주어야 한다. 그래도 작은 고추는 맵다. 식당에서 중국고추의 길이에 기절할 뻔 했다. 우리네 아삭이 오이고추보다 더 길었다.
‘중국이 우리보다 백배나 크다 할지라도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하지 않았나?
매운맛을 보여줍시다.‘
이번 여행을 위하여 노심초사하시고 적제적소에 깊이 있는 말씀으로 보듬어 주신 김동균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차량제공을 해주신 군수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조용하나 강한 힘의 소유자 허권수 교수님, 무덤덤한 것 같으나 즉석 실물영상제작의 달인이신 이래호 박사님, 알찬 특강으로 중국에 대한 인식과 안목을 바꾸게 하고 도전의식을 심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존경합니다. 멋진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