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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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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기사입력 2019-04-2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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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숙(본지 기자)

 

 

 

어릴 적

부잣집 너른 마당

빨간 흙먼지 땟국물이 까매지면

가난한 굴뚝 보글보글 연기 피워놓고

시장기 가득한 막내딸년 찾아 나선 우리엄마

 

육성회비 기한 훌쩍 넘긴

꼬질꼬질 책 보따리 허리춤 억지루 묶어

부지깽이 우물가까지 휘두르며 보내놓고

10리길 으스름달밤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사람을 홀려 잡아간다는

고갯마루 넘어 외딴집 산지기 막내딸년

커다란 눈이 겁에 질려 기절할까

남폿불 헛기침으로 마중 나온 우리엄마

 

어쩌다보니 멀리도 시집 왔네

벼르고 벼르던 친정나들이

행여 마음 다칠세라

당신 아랫목 내어주고 차디찬 윗목에 쪽잠으로

여러 날 전부터 돌돌 말아놓은 쌈짓돈

남의 집 맏며느리 막내딸년 가난한 보따리

더듬더듬 콕콕 찔러 넣으시던 우리엄마

 

“야 너 보고 싶어 못 가시는 것 같어”

고통스러워 어서 가고 싶었을 터인데

입술과 혓바닥 까만 딱지가

그립다 보고프다 말을 막아 버리고

지 할 짓 다하고 오는 괘씸한 막내딸년

거친 숨 몰아쉬며 기다리던 우리엄마

 

하얀 눈이 천국 길로 이어지고

천국 가시는 길 잔치라

문상객의 발길이 나라님 조금 모자란 고을님 호상이라

그렇게 천국길 가시고

이듬해 외딴집 길목 양지바른 무덤가에

당신 쏙 빼닮은 막내딸년 마중 나온 우리엄마

 

뽀얀 할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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