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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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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회,여항면, 한 여인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첫사랑의 한(恨)

기사입력 2018-12-1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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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의 가슴 속에 담겨 있는 첫사랑은 한 개의 별이다. 그것은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두운 밤에 별처럼 돋아나 여인의 마음을 밝혀주고 있다. 여항면 대산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재구성하였다.

산골 마을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집들이 옹기종기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그 마을 아랫담에 ‘천수’라는 젊은 사람이 예쁜 새색시를 데리고 살았다.

봄비가 새록새록 내리고 있다. 젊은 부부가 봄비 소리를 들으며 낮잠에 깊이 취해 있었다. 젊은 부인은 남편의 얼굴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꿈속의 일이다.

“우리 신랑은 눈, 코, 입이 정말 잘 생겼단 말이야. 저 커다란 코를 봐. 얼마나 힘차게 우뚝 서 있어?”

부인이 남편의 우뚝한 코를 살짝 만지기 위해 손을 살며시 그쪽으로 뻗자, 얼굴이 복사꽃처럼 붉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남편의 콧구멍에서 아주 작고 귀여운 생쥐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부인은 그 일에 호기심이 부쩍 늘었다. 너무도 깜찍하도록 귀여운 생쥐를 조심스럽게 따라 갔다. 그 생쥐가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지는 처마 밑에 서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뒷산으로 올라가고 싶은데 작은 물줄기를 건널 수 없었던 것이다.

부인은 작은 나무 막대기를 하나 다리처럼 놔 주었다. 생쥐는 그 나무를 타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 생쥐는 뒷산 큰 나무 아래에 있는 조그마한 구멍으로 들어갔다. 생쥐를 따라간 부인이 고개를 숙이고 그 구멍을 살며시 들어다보니 그 속에는 엽전이 수북하게 들어 있었다. 부인은 그 많은 엽전을 치마에 싸왔다. 생쥐가 다시 집으로 천천히 돌아오다 물을 건너지 못하자, 부인이 또 작은 나무 막대기로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런데 생쥐가 그 나무를 건너오다, 그만 다리가 뚝 부러졌다. 그 바람에 놀라서 잠이 깨었다. 신랑도 잠이 깨고 부인도 잠이 깨었다.

신랑이 부인에게 먼저 말을 했다.

“여보, 꿈속에 내가 도랑을 건너려하니 물이 많아 건너지 못하고 그 주변을 뱅뱅 돌고 있는데 예쁜 여인이 다리를 놓아주어서 잘 건너갔어. 나무 아래 작은 구명 속에 엽전이 많이 있어 파오다가 다리가 끊어져서 그만..... .”

“어? 나도 당신 비슷한 꿈을..... .”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우리 꿈속에서 본 그 나무 밑으로 가봅시다.”

신랑은 부인을 데리고 뒷산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꿈에서 본 그 나무, 바위가 보였다. 신랑은 괭이를 들고 빠른 동작으로 나무 밑으로 달려가서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다가, 신랑이 귀한 보물을 찾은 것처럼 고함을 질렀다.

“여기다. 작은 구멍이 있다.”

두 사람은 흥분된 마음으로 작은 구멍 앞에 섰다. 꿈에서 본 그 구멍과 흡사했다.

신랑이 괭이로 굴을 조심스럽게 팠다. 괭이 끝에서 쇠 소리가 ‘쟁그랑’ 났다. 흙을 파내자, 그 작은 굴이 커지더니 그 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엽전이 나왔다.

신랑과 아내는 그 엽전을 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온통 웃음이 함박꽃처럼 피어나고 기쁨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 이 많은 돈이 어떻게 이 땅 속에 묻혀 있었을까?”

신랑은 괭이로 엽전을 끌어내고 그의 아내는 가지고 온 보자기에 그 많은 엽전을 담기에 정신이 없었다.

신랑과 그의 아내는 그 많은 엽전을 보자기가 찢어질 듯이 많이 쌌다. 두 사람은 뻘뻘 땀을 흘리며 무거운 보자기를 집으로 옮겨왔다.

부부는 그 많은 엽전을 안방 깊숙이 숨겨 두었다.

부부는 땀에 흥건히 젖은 옷과 몸을 깨끗이 씻고 아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으로 두 사람은 마루에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여보, 우리 저 돈으로 무엇을 할까요?”

아내는 남편의 그런 말이 나오자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꼭 해주시겠다면, 이 손가락에 예쁜 반지 ..... .”

“허허허. 내가 그것은 이미 생각하고 있지요. 옷이랑 금비녀랑은 벌써 마음속에 준비했어요.”

신랑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아내는 평소 같지 않게 얼굴이 붉어지며 온 얼굴에 웃음이 붉은 복사꽃처럼 피었다.

그 다음날부터 신랑은 그 많은 엽전으로 자기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일을 하나씩 해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일을 함부로 추진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마을에서 아직 젊은 나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부잣집을 짓고 살면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시기심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미움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그는 돈의 쓰임새가 많아졌다. 아내에게 값비싼 반지를 사주고 화려한 옷도 사 주었다. 그 자신도 아주 품위가 있는 옷을 사서 입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마을 사람들이 샘을 낼 것이 걱정되어 산에 나무 하러 가고, 들에 농사짓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만’이라는 남자가 무서운 눈초리로 그들 부부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는 얼굴도 미남이고 키도 큰 남자로 ‘천수’와 친한 친구였다. 그는 갑자기 부자 행세를 하는 ‘천수’를 시기했다.

그는 이제 노골적으로 그를 보면 시비를 걸었다.

“야, 천수야, 무엇이 그리 돈이 많아? 마누라가 저렇게 좋은 옷을 입고 다니고, 너는 이 마을에서 보기 드문 고급 바지도 입고 다녀.”

“야아, 내 돈 가지고 내 옷 사 입는데 ‘강만’ 네가 무슨 관섭이야?”

“뭐? 네 돈? 맞다. 그러나 천수야, 이 자식아, 주변의 가난한 친구도 생각해야지.”

그때부터 ‘강만이와 천수’ 두 사람은 앙숙이 되었다.

서로가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미움의 골이 깊어져갔다. 밤에 만나면 서로를 몰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을 정도로 미움이 극에 달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키도 크고 얼굴이 미남인 강만이가 아주 사람이 달라졌다. 그는 돈을 잘 쓰는 천수를 친근하게 대했다.

“어이 천수야, 우리 저 멀리 뒷산에 나무하러 가자.”

평소 그렇게 자기를 헐뜯던 강만이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자, 천수는 그 것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 그러자. 정말 오래간만에 강만이랑 나무하러 가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나무 지게를 지고 뒷산 멀리로 나무를 하러 갔다. 두 사람은 옛날처럼 농담도 주고받았다.

평소 같지 않게 친근하게 대하는 그 강만이 이상하였다.

“어이, 강만아, 뒷산 나뭇골에서 나무를 하자. 너무 멀리가면 그 무거운 나무를 지고 오려면 무겁잖아.”

“에헤 천수야, 여기 나무보다 뒷산을 넘어가면 황토밭이 나오지. 그곳의 나무가 불살도 좋고 나무가 너무 좋아.”

두 사람은 뒷산을 넘어 황토밭이 나오는 곳에까지 갔다. 그곳에 나무 지게를 내리고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나무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무를 하는 척 하던 키 크고 힘이 센 ‘강만’이의 눈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먹이를 본 호랑이 눈처럼 살기가 돌았다. 그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들고 열심히 나무를 하는 천수 뒤로 갔다. 천수의 뒤로 천천히 다가가서 그 무거운 돌로 천수의 머리를 힘차게 내려쳤다.

열심히 나무만 하던 천수는 “으윽"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앞으로 꼬꾸라져 버렸다. ‘강만’은 이미 몰래 준비해간 괭이로 황토밭을 아주 깊게 파고 그 친구를 묻어버렸다. 너무도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하늘에 태양, 주변의 나무들 그리고 새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했다.

그는 빈 나무지게를 지고 다른 길로 둘러서 마을로 돌아와 버렸다. 그날 오후, 그 친구의 아내가 ‘강만’을 찾아왔다.

“우리 그이 오지 않았어요. 어떻게 되었나요? 함께 나무하러 간다든 데요?”

‘강만’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나 짐짓 아주 걱정스런 말투로 친구의 아내를 대했다.

“글쎄요. 아직 오지 않았던가요. 그 친구와 나무하러 가기는 함께 갔는데요. ”

강만은 능청맞게 말을 했다.

“저기요. 뒷산 너머까지 함께 가기는 했지만 돌아올 적에는 각자가 오기로 했어요.”

부인은 그길로 집에서 기르는 개를 데리고 뒷산을 헤매었다. 그날 오후,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부인은 개를 데리고 산을 헤매었지만 신랑의 빈 나무지게만 찾고 신랑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몇 달을 그렇게 하다 부인도 지쳐 차츰 그 일을 포기했다.

그 뒤로 강만은 친구, 천수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부인 혼자만 있는 집에 종종 드나들었다. 그 집에 드나들면서 은근히 그 여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몇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드디어, 강만은 본격적으로 천수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다.

어느 날 오후, 해가 기울자, 부인이 노을을 보고 울적해 하고 있었다. 강만은 가까이 접근해서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듯이 말했다.

“친구는 이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이 넓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어떨까요?”

부인은 강만의 말을 듣자,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다음날에도 강만은 줄기차게 부인을 설득했다.

두 사람은 그 뜻이 통하여 부부로 인연을 맺고 함께 살게 되었다.

그들 부부는 모아 둔 엽전으로 양지 녘 빈터에 집도 새로 짓고 논밭도 많이 사서 부자로 살았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 사이에 아이도 태어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그런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하는 것 같았지만 부인의 가슴 속에는 항상 별처럼 떠 있는 한 영혼이 있었다. 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어느 봄날, 봄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뒷산의 황토물이 마당에까지 붉게 흘러들어왔다. 너무 진한 황토물이라서 붉은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부부는 마루에서 그 황톳물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강만이가 우연히 실없는 말을 했다.

“어이구, 황톳물이 꼭 사람의 핏물 같구나.” 부인이 그 말을 받아서 힘없이 한 마디 했다.

“당신이 어찌 피를 보았단 말이오.”

강만은 그만 그 순간 깜빡하고 말았다. 십 여 년 전에 자기가 돌로 쳐 죽인 천수가 머리에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엉겁결에 그만 그 말을 하고 말았다.

“실은, 십년 전에 천수 그 사람, 내가 돌로 쳐 죽였지. 그때 황토밭에 저런 붉은 핏물이 흘렀어.”

부인은 손발이 바르르 떨렸지만 억지로 참고 강만에게 다가 가서 아주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기야, 우리 사이에 아이도 있다. 당신도 고백을 하네. 그런데 그 장소가 어디야? ”

‘강만’은 아차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도 있는데 이제 무엇을 숨기랴 싶었다.

“뒷산 너머 황토밭이야. 그 곳에 가면 아직도 그때의 그 돌덩이가 황토에 묻혀 있을 거야.”

부인은 하염없이 내리는 봄비를 보면서 가슴 속으로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나절, 부인은 ‘강만’ 몰래 뒷산을 넘었다. 강만이 말한 대로 붉은 황토밭이 나왔다. 이리저리 찾아 헤매든 부인은 작은 소나무 밭 근처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의 그 둥근 돌덩이가 작은 바위 아래 숨겨져 있었다.

부인은 그 바위 아래에 숨겨져 있는 둥근 돌덩이를 작은 보자기에 쌌다. 그 순간부터 부인은 복수하는 마음으로 눈빛이 시퍼렇게 이글거렸다.

“이 돌덩이로 사람 머리를 쳐 죽여?”

부인은 그 길로 돌덩이를 머리에 이고 관가로 갔다.

“사또님, 이 돌로 ‘강만’이가 저의 전 남편 ‘천수’를 쳐 죽여 황토밭에 묻었습니다.”

그날로 ‘강만’이는 관가에 붙들려갔다.

부인은 그 고래등 같은 부잣집에서 나와 옛날 남편과 초라하게 살던 그 집으로 가서 혼자 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기구한 운명을 다독이기 위해 그를 ‘열녀’라고 부르게 되었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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