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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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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회 칠서면, 제비산을 향해 꿈틀대는 뱀등

기사입력 2018-10-1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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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산은 칠서면 계내리 무계동 뒷산으로 제비가 날아가는 형상을 한 산이다. 이 산에 조선의 대성리학자 주세붕 선생의 묘소가 있다. 이 묘소를 보호하기 위한 풍수지리적 설화를 재미있게 역어 보았다.

칠서의 계내 마을이다.

마을 어귀 주막에 낯선 나그네가 며칠 묵었다. 그 나그네가 마을 사람들에게 큰 얘기꺼리가 되었다. 주로 남자들이 모이면 그 나그네를 화제의 대상에 올렸다.

“이상한 사람이야. 글쎄 술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조선팔도 를 유람한대.” “뭐? 조선팔도 유람?”

“그런데 말이야. 그 사람 눈빛을 보면 그 눈빛이 무섭도록 빛나. 글깨나 읽은 것 같아.”

그런 말이 돌자, 마을에서는 그 나그네가 큰 관심꺼리가 되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글을 많이 읽은 선비들 몇이 주막으로 모여들었다. 마을 선비들은 그 나그네에게 시비를 거는 것처럼 말투를 차갑게 했다.

“이봐요? 여기가 어디라고. 죽치고 앉아 있어.”

나그네가 술잔을 기울이다가 그를 둘러선 얼굴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는 조선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일을 종종 당해 보아서 이런 일들은 예사로 생각했다.

“어허, 조선팔도 떠도는 나그네가 이 마을 선비님들께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방랑하며 풍월을 읊는 재미로 삽니다. ‘청계’라고 합니다.” 그러자 마을에서 학식이 가장 높은 일죽(一竹)이라는 선비가 나그네에게 다가가며 멸시하는 말투로 말을 내 뱉았다.

“지금 당신의 입장을 한 마디로 말해 보게.”

“어허, 선비님들, 성미가 급하시군요. 저가 배운 게 미천해 서 저의 심정은 동혈이거(同穴而居)입니다.”

그 말을 듣자, 일죽(一竹) 선비가 흠칫 놀라면서 그 사람 앞에서 자세를 바로 갖추었다. 말이 아주 공손스러워졌다.

“보아하니, 이런 주막에서 숙식을 하실 분이 아니시네요. 누추하지만 저의 집에서 며칠 묵었다 가시면 어떨지요.”

주변 선비들 모두가 일죽 선비의 태도에 놀라서 눈이 왕방울만큼 켜졌다.

그 일로 인해서 나그네는 일죽 선비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일죽 선비 집에서는 그 나그네에게 귀빈 대접을 했다. 며칠 동안 일죽 선비가 나그네를 푸근하게 쉬도록 사랑방에 잠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사흘이 지나자, 나그네가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일죽 선비와 사랑방에서 술상을 가운데 두고 친구처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서로 형이라고 불렀다.

“일죽 형, 참 고맙소이다. 미천한 나그네에게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해주시다니요.”

“청계 형, 그 깊은 학식을 감히 저가 가까이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사랑방에서 술잔이 돌고 대화가 무르익자, 일죽 선비가 청계 나그네에게 깊은 질문을 했다.

“청계 형은 어인 일로 조선팔도를 유람하시는지요?”

“소생은 사주팔자가 역마살이 끼었답니다. 어느 한 곳에 정을 붙이고 살 팔자가 아니랍니다. 그래서 조선팔도를 떠돌아 다니며 풍월이나 읊고 다니지요.” “주로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요?”

“제가 무슨 공부를 하겠습니까? 주역 나부랭이나 주워서 읽지요.”

“예? 주역을요?”

“ 일죽 형, 내가 일죽 형에게 밥값을 하고 싶소.”

“밥값이라뇨. 청계 형과 이렇게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청계 나그네는 그런 일죽 선비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일죽 형, 내가 조선팔도를 다니면서 풍수지리설을 터득했습니다. 일죽 형 선산을 한번 구경할 수 있을까요?”

“아, 그러셨구나.”

두 사람은 마을 뒷산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청계 나그네는 마을 뒷산을 오르면서 집터, 묘소 몇을 대표적으로 지적하면서 음양의 이치로 설명해 주었다. 일죽 선비는 여태 들어온 어떤 풍수지리설보다 그 청계의 학설이 월등함을 알았다.

일죽 선비의 선산에 오자, 청계 나그네는 묘소 주변을 한참동안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아주 무겁게 한 마디 했다.

“일죽 형, 선산의 위치는 참 좋습니다. 좌청룡 우백호의 기본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선친의 묘소 방향이 약간 잘못 되었군요. 혹시 후손 중에 누구 불구가 있나요?”

“아니? 청계 형? 그걸 어떻게? 저의 큰아들이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발을 절뚝거리고 다닙니다.” “그러시군요. 일죽 형, 선친의 묘소를 동으로 조금만 옮기시지요. 그러면 집안에 서서히 좋은 일이 많을 것입니다.”

일죽 선비는 그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청계 선비를 대하는 태도가 더욱 극진해졌다.

집으로 돌아온 일죽 선비는 청계 선비에게 아주 귀빈 대접을 하였다. 집안 하인들에게 명령하여 좋은 반찬 좋은 술은 푸짐하게 준비하게 하였고, 그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사랑방에 있던 이부자리를 비단 이불로 바꾸게 하였다.

며칠이 지났다.

일죽 선비는 이런 풍수지리대가에게 꼭 한 곳을 보여야 할 곳이 있었다. 어느 날 일죽은 아침밥상을 물리고 나서 아주 조심스럽게 청계 나그네에게 말했다.

“청계 형, 청계 형의 혜안을 만난 것이 저로서는 일생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꼭 한 곳을 보여드릴 곳이 있습니다. ”

“그게 혹시 묘소와 관계되는 일인가요?”

“그렇습니다만?”

“일죽 형! 제가 비록 조선팔도를 방랑하지만, 아무 곳에나 가서 묘소를 보아주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청계 나그네는 아주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일죽 형, 나도 이제 이곳에 편안하게 쉬었으니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정처 없이 떠가야겠군요.”

그 말을 남기고 청계 나그네는 자기의 짐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일죽 선비는 섭섭하고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만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

일죽 선비는 그런 청계 나그네를 보고 있다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청계 선비의 소매를 부여잡고 억지로 자리에 앉게 했다.

“청계 형, 가실 때에는 가시더라도 이별주는 해야지요.”

잠시 후, 진수성찬의 술상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술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일죽 선비는 아주 정중한 자세로 청계 선비에게 술잔을 올렸다. 그 술잔의 술이 청계 나그네의 목으로 넘어가자, 일죽 선비는 청계 나그네 앞에 꿇어앉았다. 그리고 일죽 선비는 아주 정중하게 청계 나그네에게 큰절을 하였다.

그 급작스런 일죽 선비의 행동에 청계 나그네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서 일죽 선비를 바로 앉게 했다.

“일죽 형, 이게 무슨 일이오.”

“청계 형, 간곡한 부탁이오. 제가 부탁하는 곳 묘소 한 곳 만 더 보아주십시오.”

그러자, 청계 나그네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조용히 물었다.

“허어, 그 참, 대체 누구의 묘소인가요?”

그러자, 일죽은 몇 번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의 먼 선조 되시는 주세붕 선생의 묘소입니다.”

“예? 주세붕 선생의 묘소?”

“예, 그러합니다.”

“조선의 대성리학자 주세붕 선생의 묘소라면 감격스런 마음으로 보아드리지요.”

두 사람은 아주 뜨거운 우정의 마음으로 손을 잡았다.

며칠 후, 두 사람은 무계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청계 나그네는 산 정상에 올라 이리저리 눈길을 돌리며 산세를 살펴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산세를 꼼꼼이 살피다 주세붕 선생의 묘소 앞에 갔다. 그는 산세를 보고 감탄을 했다.

‘연비설(燕飛說)을 지닌 묘소로구나. 제비가 날렵한 몸짓으로 날아오르는 형성이구나. 내가 여태 보아 온 묘소 중에 과히 천하 명당이로구나.’

청계 나그네는 묘소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무릎을 꿇고 주세붕 선생의 묘소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청계 나그네는 묘소 참배를 마치고 일죽 선비를 향해 아주 흡족한 말로 묘소 자리를 칭찬했다.

“일죽 형, 이보다 더 좋은 묘소는 없소. 이 자리는 조선의 명당입니다. 자자손손 영예로울 것입니다.”

“청계 형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두 사람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면서 이런 저런 묘소에 얽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산 중턱을 내려오던 청계 나그네의 눈길이 마을 앞산에 잠시 머물렀다.

그 순간, 청계 나그네는 입술이 파래지면서 손발을 바르르 떨었다. 숨을 거칠게 쉬던 청계 나그네는 그만 숨을 멎을 것 같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풍수지리설에 도통한 사람들에게만 오는 감각이 그의 명치를 때렸다.

“일죽 형, 큰일났소.”

“왜? 청계 형, 어디 몸이 아픈가요?”

“저, 저 맞은 편 산 이름이 혹시 사(蛇)등이나 뱀등이 아니 오?”

“아니? 청계 형, 그걸 청계 형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요?”

잠시 후, 현란스런 마음을 바로 잡은 청계 나그네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목소리를 가다듬어 일죽 선비에게 말했다.

“일죽 형, 잘 들으시오. 저기 마을 앞의 저 뱀등은 그 기 가 엄청나게 무섭군요. 뱀이 먹이를 찾아 꿈틀꿈틀 기어오 르는 것 같은 저 형상의 기는 아주 무섭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손발을 부르르 떨었다. 풍수지리설에 도을 통한 사람에게만 오는 독특한 감각이다.

“일죽 형, 저 뱀이 꿈틀거리며 제비산으로 건너오면 그 뱀의 기가 제비알, 제비새끼, 제비를 잡아먹게 된답니 다. 후손에게 아주 흉한 일이 생깁니다.”

“예? 뱀등의 기가 제비산을 넘본다고요?”

일죽 선비는 청계 나그네의 그 말을 듣고 정신이 아찔했다. 청계 나그네 앞에서 말까지 더듬거리며 어찌 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였다.

“청, 청계 형,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글쎄요. 하늘의 기를 거스를 수는 없지요.”

두 사람은 제비산 중턱에 있는 작은 바위 위에 앉았다.

일죽 선비의 눈은 꿈틀꿈틀 기어가는 듯한 뱀등에만 꽃혀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 무서운 뱀등의 기를 막을 수 있는지에만 골몰했다.

그러다 청계 나그네가 한숨을 쉬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이 쉽지가 않네요.”

“방법?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죽 형, 참 어렵긴 하지만요. 저 뱀의 기운이 이쪽 제비산으로 건너오지 못하게 하면 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요?”

청계 나그네는 눈을 지긋하게 감고 길게 숨을 내쉬며 힘없이 말했다.

“ 저 뱀은 물을 싫어하는 뱀입니다. 제비산과 저 뱀등 사이에 저수지 늪을 만들어서 저 뱀이 이곳 제비산으로 건너오지 못하게 하면 됩니다.”

청계 나그네는 그 말을 남기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주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는 일죽 선비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아주 짧은 말 한 마디를 남겼다.

“일죽 형, 하늘의 기를 거스르는 일들은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 화가 저에게 올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대성리학자의 묘소를 제가 보아드렸다는 것만으로 영광입니다.”

청계 선비는 그 말을 남기고는 바람처럼 휑하니 그곳을 떠나버렸다. 일죽 선비도 놀랐다. 청계 나그네가 그렇게 냉정하게 자리를 떠날 줄을 몰랐다.

그 다음날, 일죽 선비는 문중 사람들을 재실에 모이게 했다. 그는 그간의 일들을 소상하게 문중 사람들에게 말해주었다. 문중 사람들은 일죽 선비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다. 그중 나이가 많은 어른이 나서며 일죽에게 물었다.

“이 사람아, 앞산과 뒷산 사이에 저수지, 늪을 만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리고 그 ‘청계’란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는가?”

일죽 선비는 그 동안 자기가 청계와 함께 지낸 일들을 문중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말했다. 일죽이 평소에 문중 사람들에게 워낙 믿음성이 있어서 문중 사람들도 일죽의 말에 동의를 했다.

다음날부터 그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깊게 땅을 파는 것보다 주변의 물줄기를 끓여 들여 늪을 만드는 일이라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오래지 않아 뱀등과 제비산 사이에 물이 잔잔하게 고인 늪이 완성 되었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은 그 늪을 잘 보존하였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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