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건화 황광웅 회장님
엔지니어로서의 기술 역량의 필요성은 절대 인정하지만, 미래 우리 산업의 인재상에 부합하려면 낯선 분야에 대한 접근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특정 악기를 잘 연주한다고 해서 훌륭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통합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시대는 엔지니어들에게 끊임없는 배움과 변신을 요구한다.
미래의 공장은 로봇과 컴퓨터로 채워지고 셰퍼드 서너 마리와 사람 한 명만 근무하게 될 것이다. 셰퍼드는 도둑이 공장 설비를 뜯어가지 못하게 경비를 선다. 사람이 맡는 일은? 개밥을 챙겨주는 일이다. 공장자동화가 완벽한 수준에 이르면 생산 현장에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를 풍자한 이야기다.
『노동의 종말』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진단한다. “우리는 지금 공장자동화라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노동의 종말은 문명화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도 있고, 동시에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정신의 재탄생을 알려주는 신호일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실업자가 2억 명으로 늘어났고, 그 증가추세는 진정될 줄 모른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로 압축되는, 눈부신 기술진보가 야기할 마이너스 효과가 본격화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블루칼라가 공장자동화 물결로 먼저 타격을 입었다. 뒤를 이어 컴퓨터가 인력을 대체하면서 화이트칼라가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금융권을 사례로 들어보자. 30년 전까지만 해도 은행, 증권, 보험회사들은 모든 일을 수작업으로 처리했다. 이후 컴퓨터가 도입되어 수작업이 점차 전산화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컴퓨터는 사람이 하는 일을 보조하며 충직한 하인 역할을 해주던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더욱 지능화된 컴퓨터는 사람들을 직장 밖으로 밀어내기에 이른다. 예전에 20~30명이 떠들썩하게 근무했던 은행 점포가 지금은 열 명 남짓한 작은 점포로 변했다. 장부작성, 입출금, 자금이체 등의 일들이 거의 모두 컴퓨터로 넘어갔다.
이에 비하면 우리 엔지니어링 산업은 컴퓨터의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대에 머물러 있다. 엔지니어들이 수행하는 일을 대신하기에는 컴퓨터의 지능화 수준이 아직은 미진하기 때문이다. 고도의 지식산업이라는 특성이 단단한 보호막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는 여전히 CAD(Computer Aided Design) 수준에서 엔지니어들의 작업을 도와주는 충직한 도우미일 뿐이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없다. 디지털 기술의 진화 속도는 아주 빠르고 광범위하다. 이미 많은 산업 안에서 컴퓨터는 사람이 하던 일의 상당 부분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엔지니어링 산업의 경우도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시대의 큰 물결을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3D프린팅 기술이 변혁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3D프린터는 3차원의 설계도면에 그려진 대로 한 층씩 재료들을 쌓아 올려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기계이다. 그 적용 범위는 엄청나게 넓다. 설계도면만 있으면 각종 생활용품은 물론 자동차 부속품, 스마트폰, 바이오 장기, 예술품 등을 만들어낼 수 있고, 산업용 로봇과 결합시킬 경우 거대한 구조물도 프린팅할 수 있다. 이러한 3D프린팅 기술은 18세기 중엽의 산업혁명을 능가하는 거대한 변혁을 몰고 올 수 있다. 제조업을 시작으로 건설업, 지식서비스 산업이 차례차례 그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3D프린터의 상용화 시점을 2020년경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때 나는 변화의 수혜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낙오자가 될 것인가? 변화의 수혜자가 되려면, 컴퓨터가 범접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커버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특히 미래의 유력한 비즈니스 모델인 PMC(Project Management Consultancy)에 합당한 인재로 자신을 키워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PMC 업무를 주도하는 리더인 PMP는 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력은 물론이고 법경행(법률, 경제·경영, 행정) 능력과 창조성, 소통, 이해조정 등의 인문학적 능력까지도 겸비한 ‘통합적 사고력의 소지자’이어야 한다.
‘하이테크 하이터치’라는 말이 있다. 디지털화가 심화될수록 사람 냄새가 그리워지고 인간 고유의 능력들이 높게 평가받는다는 뜻이다. 인간이 지닌 통합적인 사고력이야말로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고 미래 엔지니어들의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엔지니어들의 현 모습은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전문화 내지 분업화가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전체 흐름을 보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다. 그림 그리기에 비유한다면, 토끼 눈이나 다리를 그리는 실력은 탁월하나 토끼의 전체 모습은 그릴 줄 모른다고나 할까. 일종의 기술 편식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엔지니어로서의 기술 역량의 필요성은 절대 인정하지만, 미래 우리 산업의 인재상에 부합하려면 낯선 분야에 대한 접근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특정 악기를 잘 연주한다고 해서 훌륭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통합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시대는 엔지니어들에게 끊임없는 배움과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