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는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 반면에 소프트웨어는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수없이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소프트웨어적 접근을 시도할 때 인프라의 효용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소프트 인프라는 독자적인 시장을 갖고 기업 경쟁력에 크게 기여하는 분야가 될 것이다.
도시 전문가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계급이 모여 혁신적인 도시를 만들고 경제적 번영의 신동력이 된다고 역설한다. 그는 창조도시를 가늠하는 척도로 3T를 제시한다. Talent(인재), Technology(기술), Tolerance(관용)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관용’을 측정하는 지표로 게이지수나 보헤미안지수 등을 쓰고 있다는 점이 자못 흥미롭다.
게이지수는 동성애자가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를 따지는 지표다. 게이 밀집도가 높은 곳은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강한 사회이며, 이러한 개방적 문화가 창조의 기반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예가 하이테크 산업의 본거지인 실리콘밸리다. 창조성이 생명인 이곳은 게이 밀집도가 미국에서 가장 높다.
전 세계 축구팬들을 열광케 할 브라질 월드컵이 곧 시작된다. 브라질 하면 떠오르는 것은 현란한 삼바 축구, 정열적인 리우카니발 등 일 것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여 필자는 브라질의 상징으로 쿠리치바(Curitiba) 시를 지목하고 싶다. 세계적인 창조·생태도시인 쿠리치바는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으로부터 ‘가장 현명한 도시’, ‘꿈의 도시’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특히 신개념의 교통시스템인 BRT(Bus Rapid Transit·간선급행버스)를 정착시킴으로써 ‘BRT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깊다. 10여 년 전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이 도시에 견학을 다녀왔고 서울을 비롯한 여러 광역시에 적용한 BRT 시스템이 그 결과물이다.
교통수요가 늘어나 도로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 기존 도로를 넓히든가 새로운 도로를 깔아야 한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지속 투자로 고정자산의 순스톡(연간 증가분)이 GDP의 3~4%를 넘어가게 되면 추가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도로 신설이 단기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중교통 이용을 감소시키고 오히려 교통 혼잡을 증대시킨다는 분석도 있다. 많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가들이 이러한 상태에 있다. 개발도상국의 사정은 어떠할까? 도로나 지하철을 놓고 싶어도 재원이 크게 부족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진국이나 개도국이나 무슨 대안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유력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BRT 시스템이다. BRT는 기존의 버스 체계에 철도 운용 개념을 접목시킨 것이다. 그래서 ‘땅 위의 지하철’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BRT는 건설비용 대비 서비스 측면의 효용성이 아주 높다. BRT 건설비용은 대략 지하철의 50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브라질의 쿠리치바는 BRT를 통해 도심 혼잡을 해결하는 한편 서비스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도로나 지하철과 같은 하드 인프라에 투자하는 대신 BRT라는 소프트 인프라에 투자함으로써 적은 돈으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한 것이다.
이쯤에서 하드 인프라(Hard Infra)와 소프트 인프라(Soft In�fra)의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하드 인프라는 도로, 철도, 항만, 공항과 같은 물적자산을 뜻한다. 이에 반해 소프트 인프라는 하드 인프라의 효용가치를 높여주는 분야로 도시계획, 교통계획, 조경 및 경관, 환경평가, 건축설계 등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하드 인프라는 공급자 쪽에, 소프트 인프라는 소비자 쪽에 무게 중심이 많이 실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일은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동원되어
야 하고 창조적 미학을 접목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ICT 강국이다. 속도 면에서나 연결성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ITS(지능형 교통시스템) 분야에서 국제적인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현재 BRT 수출의 시작 단계에 있는 우리 엔지니어링 산업은 이미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등지에 수출한 경험을 갖고 있다. 쿠리치바를 벤치마킹하던 나라가 어느새 BRT를 역수출하는 단계에 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의 개발도상국들은 늘어나는 교통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인프라 구축을 서두르고 있는데 재정 문제로 인해 BRT를 선호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에 의한 BRT 프로젝트의 발주 건수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하드웨어는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 반면에 소프트웨어는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수없이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소프트웨어적 접근을시도할 때 인프라의 효용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소프트 인프라는 하드 인프라에 대한 보완적 기능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시장을 갖고 기업 경쟁력에 크게 기여하는 핵심 분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