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건화 황광웅 회장님
우리나라 엔지니어링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부쩍 늘었다. 엔지니어들이 해외에서 수행하는 일은 결국 ‘더 나은 삶(the Better Life)’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다. 이것을 우리의 미션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현지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한다는 마음으로 일에 임하자
거센 물살을 헤치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그 힘겨운 여정이 인간의 삶과 닮아서일까. 우리는 연어에게 짙은 연민과 감동, 희망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삶이 막막하더라도 햇살 가득한 날을 꿈꾸며 묵묵히 살아가자는 삶의 교훈을 연어에게서 배운다. 동해안 왕피천에서 태어난 연어는 캄차카반도, 베링해를 지나 알래스카만에서 4년을 보낸 뒤 자신이 태어났던 곳을 향해 2만km에 달하는 대장정에 오른다. 강에서 바다로, 그리고 다시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는 민물고기이면서 바닷물고기다.
우리나라 엔지니어링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부쩍 늘었다. 범세계적인 활동무대를 갖게 되는 날이 그리 머지않은 듯하다. 이처럼 해외사업은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데 인적 인프라의 뒷받침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비유한다면 많은 엔지니어들이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로 확연히 나뉘어 있다고나 할까. 해외 현장에 즉시 투입이 가능한, 다시 말해 기술·경험과 해외사업 수행능력을 동시에 갖춘 멀티 플레이어들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외부인력 보충 등 임시변통으로는 해외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민물과 바닷물을 넘나드는 연어형 인재를 목표로 커리어플랜을 가동시켜야 한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어떠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할까? 해외 부문이 개척기에 있는 기업들은 국내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이 사업을 주관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은 유상원조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무상원조를 담당한다. 올해 ODA 규모는 지난해보다 11% 증가한 2조 2666억 원으로 책정됐다.
이렇듯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의 ODA 규모는 높은 증가세에 있다지만, 아직도 국민총소득 대비 공적개발원조 비율은 0.16%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0.30%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여 나라의 체면이 안 선다. 정부는 내년까지 이 비율을 0.25%로 제고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국내 ODA 재원사업은 대부분 타이드(Tied)로 발주된다. 국내 기업들 간의 경쟁에 의해 사업자가 선정되기에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해외 경험이 일천한 기업들은 진출국의 컨트리 리스크 등 각종 위험을 최소화시키면서 사업 실적(Track Record)을 쌓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해외 부문이 도약기로 넘어가는 단계에서는 다자간 ODA 사업, 즉 국제금융기구(MDB)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미주개발은행(IDB),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5대 MDB다. 이들의 연간 조달시장 규모는 270억 달러에 달하는데 WB와 ADB가 각각 100억 달러를 발주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2011년 기준 13억 3000만 달러로 5% 수준이다. 우리의 파이를 크게 키울 수 있는 풍성한 시장이다.
MDB 시장은 발주처 및 현지파트너와의 네트워크가 중요한 마케팅 요소다. 공개된 정보 하에서 공정한 게임이 이루어지는 만큼 기술-가격종합평가방식(QCBS) 등 선진형 평가방식에 맞춘 수주 전략이 필요하다. 이후 외국 정부의 재정사업과 기획·개발(Developer)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면 해외 부문은 성숙기를 구가하게 된다.
지역별 특성에 맞는 마케팅 전략도 강조하고 싶다. 예를 들어보자. 전 세계에서 개발협력 수요가 가장 큰 지역은 어디일까? 그중 하나가 남아시아 지역이다. 세계인구 4명 중 1명이 이곳에 사는데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400달러에 불과하다. 남아시아 개도국들의 성장잠재력은 아주 크다. 2000년대 들어 이 지역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8.7%로 동남아시아의 4.8%를 크게 웃돌았다. 이에는 두 가지 강점이 작용한다. 첫째는 지정학적으로 중국, 인도, 아세안 등 고성장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어 경제회랑의 역할이 기대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풍부한 노동력과 잠재적인 구매층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를 높게 평가한 골드만삭스는 BRICs를 이을 차세대 신흥국가 ‘넥스트 11’에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얼마 전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가 수주한 방글라데시 SASEC 도로 사업도 이러한 경제적, 지정학적 흐름 속에서 ADB가 발주한 프로젝트다. 향후에도 이 지역에 대한 WB와 ADB의 원조는 각종 인프라 구축에 집중될 것이고 후속사업들이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남아시아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한 대표적인 예다.
우리 엔지니어들이 해외에서 수행하는 일은 결국 ‘더 나은 삶(the Better Life)’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다. 이것을 우리의 미션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현지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한다는 마음으로 일에 임하자.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머물다 간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만큼 우리 엔지니어의 가슴을 뜨겁게 해주는 일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진정한 성공자다.